[취재석] 오월의 기억은 한여름에 핀다…5·18 민주묘지 백일홍의 사연


전국 청년들 추모 뜻 담아 심은 나무들

전남광주시 5·18 민주묘지 후문 일대에 백일홍이 꽃을 피우고 있다. /김승일 기자

[더팩트ㅣ전남광주=김승일 기자] 7월의 볕이 짙어진 5·18 민주묘지 후문에는 백일홍이 분홍빛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뜨거운 햇살 아래 가지마다 피어난 꽃들 사이로 전국 청년회의소 지부 이름이 새겨진 기념비가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은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여름 풍경이지만 이 나무와 비석에는 26년 전 광주의 역사를 전국에 알리려 했던 청년들의 뜻이 담겨 있다.

이곳 5·18 민주묘지 후문에 백일홍 꽃동산이 조성된 것은 2000년이다. 5·18민주화운동 20주년을 맞은 해였다.

당시 박경일 전(前) 북광주 청년회의소(이하 북광주 JC) 회장은 5·18을 기리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당시 전국의 청년회의소 지부를 직접 찾아다녔다고 말한다.

그는 20일 <더팩트> 전남광주제주취재본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전국 387개 지부 모두에게 사업의 취지를 설명하고 참여를 설득하는 것이 무척 어렵고 난감한 일이였다고 회상했다.

그 당시 5·18이 법적·사회적으로 민주화운동의 이름을 되찾아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일부에서는 '광주사태'라는 왜곡된 표현이 남아 있던 시기였다.

사정을 잘 모르는 일부 지역에서는 5·18 희생자들을 향해 '빨갱이'라는 모욕적인 표현도 자주 들렸다.

그럼에도 박 회장과 북광주 JC 회원들은 폭동이나 소요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시민들의 항쟁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어려운 길을 선택한 것이다.

나무도 5·18 20주년이라는 의미에 맞춰 당시 수령이 20년가량 된 백일홍을 골랐다고 한다. 나무의 나이와 5·18의 세월을 포개 놓은 셈이다.

수많은 나무 가운데 백일홍을 택한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

오랫동안 꽃을 피우는 백일홍에 추모와 기억의 의미를 담았다. 한 계절 피었다가 금세 지는 꽃이 아니라 오랜 시간 꽃을 보여주는 나무처럼, 5·18의 희생과 정신도 오래 기억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렇게 도움의 손길이 모여 5·18 민주묘지 후문과 구(舊)묘역 일대에 백일홍 300여 그루가 심어졌다. 나무를 줄지어 심는 데 그치지 않고 백일홍이 어우러진 꽃동산을 조성했다.

곁에는 사업에 참여한 전국 청년회의소 지부의 이름을 새긴 기념비도 세웠다.

기념비에 빼곡히 적힌 지부 이름은 단순한 후원 명단이 아니었다. 광주의 아픔을 광주만의 역사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전국 청년들의 약속이었다.

북광주 청년회의소가 2000년 4월 말 5·18 민주화운동 2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비를 세웠다. 기념비에는 당시 사업 추진을 도운 전국 청년회의소 387개 지부가 적혀있다. /김승일 기자

현재는 도로 확장 등의 이유로 면적이 조금 줄어들어 100여 그루 남은 백일홍 꽃동산을 볼 수 있다.

당시 전국 청년회의소 지부를 설득해 마련한 사업비는 약 6700만 원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부족한 경비에는 박 회장이 사비를 보탰고, 광주시 북구도 사업을 지원했다. 결과적으로 전체 사업 규모는 1억 원을 훌쩍 넘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분명한 것은 한 사람의 제안으로 시작된 일이 전국 청년회의소와 지역사회의 참여를 끌어냈다는 점이다.

물론 백일홍 꽃동산 하나가 '광주사태'라는 왜곡된 이름을 '5·18민주화운동'으로 바꿨다고 말할 수는 없다.

5·18의 진실을 밝히고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기까지 유족과 생존자, 시민사회, 학계, 언론계 등 수많은 이들의 오랜 노력이 있었다.

북광주JC의 사업은 그 거대한 흐름 속에 놓인 하나의 실천이었다.

그러나 작은 실천이라고 해서 의미까지 작은 것은 아니다.

전국 387개 지부가 참여한 꽃동산 조성은 5·18을 전국의 역사로 확장하는 데 힘을 보탰다. 광주 밖의 청년들이 5·18의 이름과 의미를 마주하고, 각자의 지역으로 돌아가 그 뜻을 전하는 계기도 됐을 것이다.

최근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거나 희생자를 조롱하는 혐오 표현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오랜 세월 바로 세운 역사를 가벼운 말로 흔들려는 시도도 여전히 이어진다.

그럼에도 백일홍은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꽃을 피운다.

만개한 꽃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고, 5·18을 올바른 이름으로 알리려 했던 청년들의 마음을 말없이 전한다.

올여름 5·18 민주묘지를 찾는다면 후문에 핀 백일홍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았으면 한다. 그 꽃 아래에는 오월의 진실을 전국에 알리려 했던 청년들의 약속이 여전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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