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순규 기자]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참사 이후 한국 축구가 긴 홍역을 앓고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오는 22일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과 홍명보 전 국가대표팀 감독 등 13명을 증인으로 불러 감독 선임 과정과 축구협회 운영 전반을 점검하는 청문회를 연다. 국회는 청문회의 목적으로 협회의 운영 실태를 살피고 정상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을 제시했다.
정치가 스포츠 행정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회원국 축구단체의 독립성을 중시하는 이유도 스포츠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릴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감독 선임의 공정성과 협회 운영의 투명성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임계점을 넘어선 상황에서 국회가 문제를 점검하는 것 자체를 무조건 정치 개입이라고 몰아붙이기도 어렵다.
중요한 것은 청문회가 누구를 불러 세우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확인하고 어떤 개선책을 남기느냐다. 이 과정에서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손흥민과 황희찬을 참고인으로 신청했다가 하루 만에 철회한 일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역 선수들을 국회로 부르는 것이 경기 준비와 소속팀 일정에 부담을 주고, 자칫 청문회가 인기 선수들을 앞세운 정치적 무대로 변질될 수 있다는 비판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임 의원도 "협회와 국가대표팀, 해외 축구 시스템을 경험한 현역 선수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다"며 신청 배경을 설명한 뒤, 당의 의견과 선수들의 경기 일정 등을 고려해 철회했다.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청문회를 만들기 위한 취지였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따라서 참고인 신청 철회는 현실을 고려한 합리적 판단으로 존중할 수 있다. 하지만 철회됐다는 이유만으로 처음의 문제 제기까지 ‘정치쇼’나 ‘선수 소환 이벤트’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출석 방식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어도, 선수들의 현장 경험을 축구 개혁에 반영하자는 취지까지 잘못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축구는 행정가들만의 책상 위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선수들은 대표팀 운영과 소집 과정, 훈련 환경, 의무 지원, 코칭 시스템, 국제대회 준비, 유소년 육성 구조를 몸으로 경험하는 당사자들이다. 협회가 만든 제도가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무엇이 선수들의 경기력을 돕고 무엇이 방해하는지를 가장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선수들이다.
그런데 한국 축구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선수들의 목소리는 대부분 비공식적인 면담이나 언론 인터뷰에 머물러 왔다. 제도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통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선수를 위한다면서 정작 선수에게 묻지 않는다면 이는 ‘신발 주인에게 발의 불편함을 묻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박지성 K-축구혁신위원회 공동위원장도 축구협회 행정에 직접 관여한 적이 없어 청문회에서 할 말이 없다며 불참 의사를 밝혔다. 청문회 당일 유소년대회 일정도 겹친다. 이영표 위원 역시 불참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판단도 존중해야 한다. 다만 축구 개혁을 논하는 자리에 행정 책임자들의 해명만 넘치고 선수와 지도자, 팬의 경험이 빠진다면 개혁의 설계도는 한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선수들의 의견을 듣는 방법이 반드시 국회 출석일 필요는 없다. 비공개 간담회와 서면 질의, 익명 설문조사, 선수협의체 구성, 은퇴 선수와 현역 선수의 분리 면담 등 부담을 줄이면서도 현장의 목소리를 확보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핵심은 ‘불러 세우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듣는 것’이다.
축구협회 개혁은 회장이나 감독 몇 사람을 교체한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의사결정 절차를 바로잡는 동시에 선수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고, 그 의견이 정책 개선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고사성어에 ‘겸청즉명 편신즉암(兼聽則明 偏信則暗)’이라는 말이 있다. 여러 사람의 말을 함께 들으면 밝아지고, 한쪽 말만 믿으면 어두워진다는 뜻이다. 축구 행정가와 정치인의 목소리만으로 한국 축구의 미래를 설계해서는 안 된다.
임오경 의원의 참고인 신청은 철회됐다. 그러나 선수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까지 철회된 것은 아니다. 신청 과정의 미숙함은 비판할 수 있지만, 현장 당사자의 경험을 개혁에 담으려 했던 의도의 순수성까지 훼손해서는 안 된다.
한국 축구의 주인은 행정기관도, 국회도 아니다. 경기장을 뛰는 선수와 축구를 사랑하는 국민이다. 선수를 위한 축구를 말하려면 먼저 선수에게 물어야 한다. 그것이 정치쇼가 아닌 진짜 청문회를 만드는 길이며, 한국 축구 개혁이 출발해야 할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