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올해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히던 영화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목숨 걸고 외계인과 맞서는 인간들의 처절한 사투는 긴장감과 공포심을 심어주고, 이 과정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액션 시퀀스는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하나의 장르로 규정지을 수 없지만 오직 극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영화적 체험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오랜 기다림에 보답하는 나홍진 감독의 '호프'다.
오늘(15일) 개봉하는 '호프'(감독 나홍진)는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 분)이 동네 청년들로부터 호랑이가 출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온 마을이 비상이 걸린 가운데 믿기 어려운 현실을 만나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작품은 '추격자' '황해' '곡성' 등을 통해 완성도 높은 미장센과 독창적인 연출력으로 자신만의 색을 공고하게 보여줬던 나홍진 감독이 무려 10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자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과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테일러 러셀, 카메론 브리틴이 출연해 제작 단계부터 전 세계의 관심을 받았다.
또한 한국 영화 중 역대 최고 수준의 제작비(약 700억 원)가 투입됐고 제79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이름을 올리면서 연일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던 '호프'다. 그러면서도 칸영화제에서 본 이들의 호불호가 엇갈린 반응, 스크린에 걸리는 영화들의 러닝타임이 계속 짧아지고 있는 와중에 내놓은 약 2시간 40분에 달하는 완성본은 흥행 측면에서 현실적으로 우려되는 요소이기도 했다.
이렇게 그 어느 작품보다 이유 있는 기대감과 왠지 모를 걱정이 동시에 자리한 상황에서 공개된 '호프'는 차도 한복판에서 죽은 소를 들여다보는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과 성기(조인성 분)를 비롯한 동네 청년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단순히 먹이 사냥이 아닌 정체 모를 갈퀴 자국과 함께 살갗이 징그럽게 찢겨있는 걸 본 한 청년은 해술(임현식 분) 아저씨의 말을 빌려 "호랑이가 벌인 짓"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범석은 주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마을로 향하고 성기와 친구들은 숲속으로 사냥을 나선다. 그러나 이미 거의 모든 건물이 부서지고 날아가고 뚫려있었고 곳곳에는 피범벅이 된 채 주민들이 죽어있는 등 동네에는 정체 모를 험한 것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를 마주한 범석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실체 모를 무언가를 계속 쫓다가 마침내 외계인을 마주한다. 이후 뒤늦게 합류한 호포항 순경 순애(정호연 분)와 함께 그를 제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산속으로 향한 성기와 친구들도 대수롭지 않게 주변을 둘러보다가 우주선과 또 다른 외계인을 보고 맞서 싸우기 시작한다.
완성본을 다 본 입장에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는 이들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지점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껏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맛을 볼 수 있는 한국 영화임이 틀림없다는 점에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게 될 듯하다. 그리고 이를 극장에서 관람해야 다채롭고 신선한 재미와 체험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겠다는 인상도 강렬하게 남는다.
영화가 시작되고 약 60분 동안은 황정민의 원맨쇼다. 극 중 인물들에게도 그리고 이를 보고 있는 관객들에게도 아직 정확하게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외계인을 쫓아 동네를 사방팔방 뒤지는 범석의 모습만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언제 어디서 무언가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부터 범석과 주민들의 티키타카로부터 비롯된 예상치 못한 웃음, 건물이 날아가고 차가 시원하게 내달리고 쉴 새 없이 총을 쏘는 등 눈을 뗄 수 없는 시퀀스들이 더해져 지루할 틈이 없다.
그리고 작품은 성기와 청년들이 있는 숲속으로 배경을 옮겨 예상치 못한 순간에 튀어나와 인간들을 공격하는 외계인들과의 사투를 보여준다. 이후 성기는 자신을 구하러 온 범석 성애와 따로 또 함께 힘을 합쳐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데, 이 과정에서 성기를 연기한 조인성은 광활한 숲속에서 말을 타고 내달리거나 달리는 차에 매달려 총을 쏘며 짜릿함을 선사한다.
쉽게 말해 '호프'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외계인들과 맞서 싸우는 호포항 주민들의 이야기다. 다만 외계인을 단순히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들을 공격하는 종족으로만 그려내지 않고,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사연을 부여한다. 그리고 이는 곧 관객들이 인간들의 편에서만 이야기를 바라보기보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이 이성적인 선택을 했더라면'이라는 질문과 함께 이상한 여운을 느끼게 하는 장치가 된다.
1980년대에 외계인을 떨어뜨리고 Sci-fi 액션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를 녹여낸 만큼 볼거리가 확실하다. 또한 이야기가 챕터로 나뉘는 듯 뚝뚝 끊기는 구간이 두 개 정도 있는데 이 지점이 오히려 긴 러닝타임 속에서 관객들이 한숨 돌릴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 가운데 예고편이 공개된 후 가장 말이 많았던 크리처들의 비주얼과 이들의 움직임은 단순히 퀄리티가 좋거나 아쉽다고 단정 짓기 어려운 부분이다. 외계인들이 대낮에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 따로 놀면서 왠지 모를 이질감으로 시선을 빼앗기기도 하지만,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보는 이들에 따라 진입장벽이 다를 테니 끝까지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다면 몰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또한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하는 듯한 결말로 마무리되지만, '호프'만을 놓고 본다면 굳이 외계인 캐릭터에 할리우드 스타들을 캐스팅했어야 됐는지에 의문이 남는다.
'곡성'에 이어 '호프'로 나홍진 감독과 재회한 황정민은 60분가량을 홀로 이끌면서 자신의 저력을 제대로 과시한다.
조인성은 압권이다. 덥수룩한 수염으로 거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는 말을 타고 달리면서 한 손으로 총을 쏘고, 달리는 말에서 차로 넘어가 거기에 매달려 외계인과 대적하는 등 강렬한 액션신을 제대로 책임지며 대체 불가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조인성과 처음 호흡을 맞춘 나홍진 감독이 꺼낸 그의 새로운 얼굴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여기에 음침한 분위기로 후반부를 책임지는 음문석을 비롯해 임현식 이상희 황석정 등이 힘을 보태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그동안 본 적 없는 결의 한국 영화로 돌아온 나홍진 감독이다. 집요함과 지독함으로 하나하나 찍어내고 이어 붙인 장면들의 향연은 그 자체로 극장의 존재 이유를 알려준다. 물론 더 많은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된 것과 달리 확장되지 않은 채 마무리된 점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지만 압도적인 시청각적 체험만은 확실하다. 작품의 제목처럼 그의 '호프'가 담긴 '호프'가 침체된 극장가의 희망이 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15세 이상 관람가이며 러닝타임은 156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