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손원태 기자] "수많은 지뢰를 만들어 놓고 서로 핑퐁을 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김남근 의원의 일갈이다. 서울회생법원의 회생절차 폐지 결정 이후 홈플러스를 둘러싼 청산 시계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지만, 최대주주(MBK파트너스)와 최대채권자(메리츠그룹)의 경영진들은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은 골든타임 앞에서도 책임 공방만 주고받았다. 정치권이 이들 경영진을 한자리에 모아 긴급운영자금(DIP) 지원을 촉구했으나 돌아온 것은 유체이탈식 화법과 무거운 침묵뿐이었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9일 오전 8시 국회에서 '홈플러스 회생을 위한 MBK파트너스-메리츠 경영진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김광일 MBK 부회장, 김중현 메리츠화재 대표, 조주연 홈플러스 대표가 참석했다. 민주당에서는 을지로위원회 소속 민병덕 위원장을 비롯해 박희승·김남근·권향엽·이훈기·송재봉 의원이 대거 나서 이들을 압박했다.
홈플러스는 법정 관리 1년 4개월 만인 지난 3일, 법원이 요구한 운영자금 2000억원을 마련하지 못해 청산 위기에 직면했다. 법원이 제시한 즉시항고 기한은 이달 20일까지로, 이제 남은 시간은 단 일주일 남짓이다. 이 기간 내에 자금을 확보해 항고하지 않으면 회생절차는 최종 폐지된다.
현재 매장 62곳을 담보로 잡은 최대 채권자 메리츠와 대주주 MBK는 수개월째 대치 중이다. MBK는 메리츠에 2000억원 규모의 자금 투입을 요구하는 반면, 메리츠는 김병주 MBK 회장의 개인 연대보증 없이는 1000억원을 별도로 투입할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법원의 청산 결정 이후에도 양측이 조율 없이 일주일을 허비하자 을지로위원회가 중재에 나선 것이다.
민병덕 위원장은 모두발언에서 "(즉시항고 기간) 20일까지 해법을 찾지 못하면 입점 업체 등 1만3000여명의 노동자와 지역상권 홈플러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10만명에 이르는 민생이 무너진다"며 "그간 홈플러스를 통해 얻은 수익과 향후 잃게 될 사회적 신뢰를 고려하면 MBK와 메리츠가 감당 못 할 금액이 아니다"고 사회적 책임을 재차 요구했다.
그러나 정치권의 기대와 달리, 간담회장은 시종일관 무거운 침묵만이 가득했다. 회의 시작 직전 김광일 MBK 부회장과 김중현 메리츠화재 대표, 조주연 홈플러스 대표가 차례로 모습을 보였으나 취재진의 질문에는 모두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이들은 간담회장에서도 나란히 배석했으나, 모두발언이 진행되는 내내 서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김광일 MBK 부회장은 "홈플러스 일로 많은 분이 고통을 인내하고 있다"면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입장을 밝혔다. 김중현 메리츠화재 대표도 "실질적 해법이 나왔으면 좋겠다"며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짧게 말했다.
조주연 홈플러스 대표는 "회생 기간을 거치는 동안 많은 분께 어려움을 드려 죄송하다"며 "회사는 1만명이 넘는 직원과 협력사 직원, 많은 사람이 함께 일한다. 잊지 말고 지원 부탁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비공개로 전환된 간담회에서는 고성이 흘러나오는 등 감정 싸움이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간담회 직후 김남근 의원은 "MBK와 메리츠 모두 국민을 속이며 핑퐁 게임을 벌이고 있다"며 "1000억원의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지뢰를 깔아놓아 사실상 자금이 집행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착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즉시항고 기한마저 일주일여 남겨둔 홈플러스는 그야말로 첩첩산중의 위기 속으로 내몰리고 있다. 홈플러스 매장 곳곳은 이미 납품이 끊기면서 자체 브랜드(PB) 상품으로만 매대를 채운 상황이며, 이마저도 납품 대금을 받지 못한 일부 협력사는 기존에 공급했던 상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물류업체도 대금 미지급으로 홈플러스 물품 배송을 일부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송 중단에 따른 고객들의 결제 취소도 잇달아 발생해 카드업계도 리스크 관리에 들어갔다. 홈플러스는 일부 매장에서 전기요금과 같은 공과금도 제때 내지 못해 단전되기도 했다. 6월 기준 홈플러스 임직원들의 임금 체불 규모도 332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홈플러스는 최근 퇴직자들에게 자금 부족을 이유로 6월 중순 퇴직자의 퇴직급여와 회사 부담 퇴직금 지급이 지연될 수 있다고 공지한 상태다.
민병덕 위원장은 "MBK와 메리츠에 분명히 경고한다"며 "책임 공방은 끝났다. 운영자금인 2000억원을 마련하고 결자해지할 때까지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국회가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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