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우지수 기자] 정유 4사가 미국·이란 전쟁 직후 석유제품 가격을 담합하는 등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직접 담합 규모만 14조2000억원으로 파악돼 산업계 파장이 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6일 HD현대오일뱅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 등 정유 4사는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HD현대오일뱅크 가격결정부서장은 구속 기소됐고 같은 회사 책임매니저·법무실장과 GS칼텍스 국내영업 부문장은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 판단에 따르면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는 전쟁 발발 직후 석유제품 가격 인상 시기와 폭을 사전에 합의했다. 두 회사의 직접 담합 규모는 14조2000억원으로 산정됐다. 여기에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이 이를 추종해 가격을 올린 파급 효과까지 더하면 경쟁제한 효과가 26조원에 이른다. 다만 두 회사의 추종 행위는 의식적 병행행위로 판단되면서도 현행 공정거래법상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어서 담합 직접 기소 범위에서는 빠졌다.
유통 관행도 도마에 올랐다. 정유 4사는 자영주유소와 전량구매계약을 맺고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일방적으로 정한 가격으로만 석유제품을 공급받도록 한 혐의를 받는다. 타사 제품을 취급하면 매출액의 10~30%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이탈을 막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부분은 4개 법인이 모두 기소됐다. HD현대오일뱅크와 GS칼텍스는 공정위 현장조사 정보를 미리 파악해 자료를 삭제한 조사방해 혐의도 받는다.
정유사들은 국내 판매가를 싱가포르 현물시장 지표인 몹스(MOPS)에 연동해 정할 뿐 담합은 없었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이에 검찰은 몹스가 20원 이상 떨어졌을 때도 가격을 올리거나 동결한 사례가 많다며 기계적 연동 주장을 반박했다. 가격 산정 방식의 자율성 여부가 재판의 쟁점이 될 것이란 시각이 나온다.
이번 기소는 정유업계가 2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시점에 나오며 부담을 키웠다. 정유 4사는 올해 1분기 재고평가이익 등에 힘입어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됐다. 중동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정제마진이 확대된 결과다. 업계는 이를 유가 변동에 따른 착시로 규정하며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에 따른 내수 손실이 누적 3조원대에 이른다고 호소해왔다.
이에 정부는 정유업계의 손실 보전을 위해 6개월 기준 4조2000억원 규모의 예비비를 편성했다. 여기에 대규모 담합 기소가 더해지면서, 세금으로 손실을 보전받는 정유사가 정작 유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렸다는 여론이 형성될 경우 손실 보전 논의가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업계 안팎에서 제기된다.
정유업계는 지난 2011년에도 주유소 확보 경쟁을 제한한 원적관리 담합으로 434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대형 담합 사건은 회사 차원의 지시·관여를 어디까지 입증하느냐에 따라 처벌 수위가 갈리는 만큼 법인 책임을 놓고 장기전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는 공소 내용을 파악하며 대응 방향을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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