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이중삼 기자] 해외건설의 공식이 바뀐다. 정부가 단순 시공 중심 수주에서 벗어나 기술과 글로벌 금융을 앞세운 투자개발사업 중심으로 산업 구조를 재편한다. 중국과 튀르키예의 거센 추격 속에 향후 5년간 해외건설의 경쟁력을 다시 세우기 위한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선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제5차 해외건설진흥기본계획(2026~2030년)'을 수립했다. 해외건설촉진법에 따른 법정계획으로 지난해 말 발표한 새 정부 해외건설 정책 방향을 구체화한 첫 중장기 로드맵이다.
◆ 중국·튀르키예 추격…해외건설 체질 바꾼다
정부가 체질 개선에 나선 배경에는 급변한 해외건설 시장이 있다. 과거에는 시공 능력과 가격 경쟁력이 수주의 핵심 경쟁력이었지만 최근에는 사업 기획과 투자·운영을 결합한 투자개발사업 비중이 확대되는 추세다.
글로벌 건설사들은 개발·운영을 통해 장기적인 수익을 확보하는 사업 모델을 확대하고 있는 반면 국내 기업들은 도급형 사업 비중이 여전히 높은 편이다. 여기에 중국과 튀르키예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면서 기존 방식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향후 5년간 해외건설을 기술력과 글로벌 금융을 기반으로 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핵심은 단순 시공을 넘어 개발과 투자·운영까지 참여하는 사업 구조를 확대하는 데 있다.
우선 국내 기업이 경쟁력을 보유한 현수교·초고층 건축·침매터널 등을 기반으로 설계·조달·시공(EPC)은 물론 운영·유지관리까지 수행하는 전주기 패키지 사업을 지원한다.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데이터센터·소형모듈원전 등 신규 사업도 발굴한다.
철도와 공항 등 한국형 인프라는 신호·통신·보안·운영 시스템까지 포함한 패키지 상품으로 육성하고 한국형 도시개발 법·제도와 인공지능(AI) 기반 서비스를 접목한 'AI 시티' 수출도 추진한다. 탄소포집·활용·저장(CCUS)·바이오매스 등 전략기술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사업 기획부터 운영까지 총괄하는 PM 기업도 세계적 수준으로 육성할 방침이다.
투자개발사업 확대를 위한 금융 지원도 강화한다. 정부는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와 민간 기업이 함께 투자하는 기업매칭펀드와 해외 국부펀드·국책은행이 공동 참여하는 국가별 전략펀드 등을 조성한다. 글로벌 디벨로퍼인 맥쿼리와 스미토모 등과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다자개발은행 협력 전담 조직도 신설해 국내 기업의 해외 투자개발사업 참여를 지원할 계획이다.
민관 협력 체계도 확대한다. 정부와 공공기관·기업·협회가 함께 전략적 경제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고위급 경제외교와 연계해 중동 등 핵심 인프라 프로젝트 수주를 지원한다. 중소·중견기업은 공적개발원조(ODA)와 MDB 사업을 활용해 해외시장 진출 기회를 넓히고 인프라 금융과 PM 전문인력 양성도 병행할 계획이다.
◆ 기술·금융 앞세운 수주 전략…첫 무대는 미국
정부는 기본계획 발표에 그치지 않고 투자개발 전략을 실제 수주로 연결하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첫 무대는 미국이다.
국토부는 5일부터 9일까지 김이탁 제1차관을 단장으로 한 '한미 협력 수주지원단'을 미국 워싱턴 D.C에 파견한다. 미국 에너지부와의 장관급 협의를 통해 발굴한 협력사업을 구체적인 수주로 연결하고 양국 인프라 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행보다.
수주지원단은 미국 에너지부가 제안한 네바다주 리튬·붕소 플랜트 건설사업 업무협약 체결을 지원하고 미국 농무부와는 인디애나주 블루 암모니아 플랜트 사업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미국 주택도시개발부와 세계은행도 방문해 도시개발과 교통·에너지 인프라 분야 협력 방안을 협의한다.
김이탁 차관은 "미국의 핵심 공급망 플랜트 건설에 우리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을 강화하겠다"며 "특히 글로벌 금융이 연계된 투자개발사업을 적극 발굴해 양질의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고 우리 해외건설 산업의 체질 전환을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 대우건설, 美 부동산 개발사업 본격화
건설사들도 기존 도급형 사업에서 벗어나 개발과 투자 역량을 확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표 사례가 대우건설이다.
대우건설은 최근 미국 뉴저지주 버겐카운티에서 추진되는 '팰리세이즈파크 주거개발사업' 투자를 최종 확정하며 약 20년 만에 북미 부동산 개발시장에 재진출했다. 총사업비는 2억9100만달러(약 4374억원) 규모로 지상 18층·540가구 규모 공동주택과 근린생활시설·주차시설 등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이번 사업은 기존 해외 수주와 사업 구조부터 다르다. 대우건설은 미국 현지 투자법인 '두사이'를 통해 뉴욕 부동산 개발사 타마레스와 공동 시행사(Co-GP)로 참여한다. 양사는 이달 말 합작법인 설립과 토지 매입을 마친 뒤 잔여 인허가와 투자자 모집 절차를 거쳐 2028년 착공할 계획이다. 이후 약 32개월간 공사를 진행해 2031년 준공한 뒤 운영을 거쳐 매각할 예정이다.
기존 해외 도급사업이 시공을 맡아 공사비를 받는 구조였다면 이번 사업은 시행 단계부터 직접 참여해 개발이익을 함께 확보하는 투자개발사업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정부가 이번 기본계획에서 제시한 투자개발 중심 해외 진출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는 평가다.
대우건설은 팰리세이즈파크 사업을 시작으로 미국 내 개발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텍사스 프라스퍼 복합개발사업도 본격 추진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60년 역사의 해외건설 산업·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패러다임 전환 필요' 보고서에서 "최근 세계 건설시장은 발주처 요구의 복잡성과 다양성 확대·금융 연계 프로젝트 증가·경쟁 심화·발주 방식 변화 등 다차원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며 "기업의 지속 가능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기존 경험과 역량을 넘어서는 혁신적 거버넌스 체계의 재구축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한편 김윤덕 국토부 장관도 지난 1월 국토부 산하기관·유관단체 업무보고에서 "해외건설 수주 환경이 단순 도급에서 투자개발로 전환되고 있다"며 "한국 기업도 변화에 맞춰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