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샛별 기자] 배우 박지연이 '참교육'을 통해 데뷔 21년 만에 여느 때보다 강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배우의 길을 오래 걸어오며 지칠 때도 있었지만 묵묵히 이겨낸 박지연이다. 그렇기에 '참교육'의 흥행과 함께 뒤따르는 호평은 뜻깊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박지연에게는 지금의 인기보다 더 고마운 게 있었다. 바로 박지연의 화제를 누구보다 기뻐한 주변 사람들이다.
박지연은 최근 서울 마포구 <더팩트> 사옥에서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극본 이남규, 연출 홍종찬) 공개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 중 자신의 아이만을 위해 학교와 교사를 압박하는 극성 학부모 우진 엄마 역을 맡아 5회를 이끈 그는 작품과 캐릭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달 5일 10부작 전편 공개된 '참교육'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며 무너진 대한민국의 교육 현장을 지키기 위해 창설된 교권보호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교권보호국'(이하 교권국)이라는 신선한 설정을 내세워 교육 현장의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피해자의 편에서 서서 무너진 학교를 재건하는 인물들의 통쾌한 행보를 담았다.
작품 공개 후 가장 뜨거운 반응을 이끈 건 단연 박지연이었다. 5회를 본 시청자들은 우진 엄마의 행태에 크게 분노했다. 그리고 이를 연기한 박지연의 연기는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박지연은 작품이 잘될 거라는 기대보다 자신이 작품에 누가 되지 않았는지만 걱정했다고 털어놨다.
"너무 잘돼서 기뻐요. 우진 엄마 덕분에 배우 박지연까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사실 저는 작품이 공개되기 전까지 '내가 잘했을까'라는 걱정밖에 없었어요. 공개된 뒤에도 제 연기보다 부족했던 부분만 계속 보이더라고요."
이번 작품으로 홍종찬 감독과 벌써 네 번째 호흡을 맞췄다. 홍 감독은 당초 3회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정선영 교사(이상희 분) 역할을 염두에 두고 박지연을 떠올렸지만, 결국 우진 엄마를 제안했다. 선한 이미지가 강했던 배우에게는 의외의 선택이었지만, 박지연은 오히려 그 지점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그는 "감독님께서 내 새로운 모습을 꺼내고 싶었던 것 같았다"며 "비슷한 역할을 반복하기보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게 나 역시도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의외였던 건 악역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작업이었다는 점이다. 평소에는 큰 소리를 낼 일이 거의 없던 그였지만 우진 엄마는 분노를 기본값으로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촬영이 끝난 뒤에도 개운하기보다 찝찝한 감정이 오래 남았다.
박지연은 "소리를 질러야겠다고 계획한 건 아니었다"며 "불안과 분노가 기본적으로 깔린 사람이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표현됐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상대 배우를 더 극한까지 몰아갈 수 있을지 계속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첫 촬영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카페에서 최지선을 향해 처음 분노를 터뜨리는 장면이었다. 리허설에서 준비한 감정을 모두 쏟아냈고 현장 스태프들이 놀랄 정도였다. 홍 감독 역시 만족감을 드러냈고, 그 순간 비로소 자신이 준비한 방향이 맞았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어 김무열과 촬영한 날도 마찬가지였다. 무서웠다는 김무열의 반응과 아이처럼 즐거워하던 스태프들의 모습은 큰 응원이 됐다. 심지어 이남규 작가 역시 작품 공개 후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인물을 표현해 줘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전해왔다.
뿐만 아니라 몇몇 스태프들은 이후로도 박지연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단다. 박지연은 멋쩍은 듯 이야기했지만, 그 웃음의 의미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오랜 시간 지켜본 배우의 새로운 도전에 대한 대견함과 뿌듯함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부담감도 책임감도 클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참교육'은 허구지만 현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였기에 조심스러웠다. 이에 실제 학부모들의 사례를 찾아보고 다큐멘터리도 찾아봤다. 홍종찬 감독이 직접 보내준 맘카페 게시글은 우진 엄마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됐다.
박지연은 우진 엄마를 괴물처럼 그리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인물이라도 시청자가 '왜 저렇게 됐을까'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가스라이팅조차도 처음부터 계산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으로 설정했고, 관계가 틀어질수록 본성이 드러나도록 감정을 설계했다.
"처음에는 '정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실제 글을 보니까 생각이 달라졌죠. '우리 아이 식사 지도도 선생님이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글이었는데, 그걸 보면서 우진 엄마는 악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아이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그 사랑이 너무 이기적으로 표현된 인물이었던 거죠."
특히 최지선 선생님 역을 맡은 송시안과의 호흡에는 많은 시간을 들였다. 갈등을 연기할수록 배우들끼리 신뢰가 있어야 더 자유롭게 감정을 쏟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촬영 전부터 따로 만나 식사를 하고 작품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관계를 쌓아갔다.
"시안 배우가 이번 에피소드의 중심이잖아요. 같이 많이 이야기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배우끼리 유대감이 있어야 극 안에서는 더 치열하게 부딪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정말 열심히 하는 친구라 저도 많이 응원하면서 촬영했어요."
작품이 공개된 뒤 가장 큰 조력자는 남편이었다. 배우인 남편은 오랜 연인 시절부터 늘 대사를 맞춰주던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첫 악역인 만큼 더욱 적극적으로 캐릭터를 함께 만들었다. 인터폰 앞에서 소리치는 장면도 두 사람이 함께 고민한 결과였다. 박지연은 "남편이 빌런 역할을 많이 해봐서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다. 특히 어느 지점에서 본성이 드러나면 좋을지 같이 고민하고 연구해 줬다"며 "작품이 공개된 뒤에도 날 다잡아주고 있다. 일례로 SNS 알람이 계속 와서 차기작 대본에 집중을 못 하니까, '지금 중요한 건 다음 작품'이라며 알림도 직접 꺼줬다"고 전했다.
그렇게 완성한 우진 엄마는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통했다. "욕을 많이 했다"는 반응이 이어졌지만 그는 오히려 그 말이 가장 기뻤다. 현실적으로 그려낸 인물이었기에 가능한 반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5년 데뷔한 박지연은 어느덧 배우 인생 20년을 넘겼다. 연극과 단편영화, 독립영화와 매체를 오가며 쉼 없이 달려왔고, 때로는 슬럼프도 겪었다. 좋아서 시작한 연기가 어느 순간 증명해야 하는 일이 되면서 힘에 부치기도 했다.
그는 "올해 초 슬럼프가 크게 왔다. 나 스스로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계속 인정받아야 하는 것 같아서 힘들었다"며 "그런데 '참교육'이 공개되고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시는 걸 보면서 '그동안 잘 버텨왔구나'라는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함께 기뻐해 준 건 무엇보다 동료 배우들이었다. 오랜 시간 같은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기에 그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육아로 잠시 연기를 쉬던 친구가 "너 같은 배우가 잘돼야 한다"며 눈물로 응원을 전했을 때는 박지연 역시 한참을 울었단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다시 한번 눈물을 보인 박지연이다.
여기에 이상희에 대한 고마움도 덧붙였다. 박지연은 "일단 나라면 절대 지금의 정선영 선생님 모습이 나오지 못했을 터다. 그만큼 언니가 연기한 정선영 선생님은 임팩트 있었다"며 "그리고 무엇보다 고마운 건 언니가 촬영장에 가는 날이면 항상 '지연이 잘하고 갔나요?'라며 날 챙겼다는 점이다. 내게도 종종 전화를 걸어 '너 잘하고 있대. 그러니 걱정 마'라며 격려를 해주곤 했다"고 전했다.
그렇기에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모든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박지연이다. 과거 찍었던 단편영화를 기억한 감독이 새로운 작품을 제안했고, 차곡차곡 쌓인 시간들이 결국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화려한 수식어보다 성실한 배우라는 말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저는 아직도 과대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아요. 너무 큰 기대는 안 해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대신 어떤 작품이든 그 인물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배우, 믿고 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보내주신 관심은 좋은 연기로 꼭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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