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순규 기자]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홍명보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홍명보 감독은 29일 오전(한국시간) 대표팀 베이스캠프인 멕시코 사포판 과달라하라의 ‘치바스 베르데 바예’에서 귀국 직전 기자회견을 열고 전격 사퇴를 발표했다. 이로써 온갖 특혜 의혹과 공정성 논란 속에 출범했던 ‘홍명보호 2기’는 본선 무대 조기 퇴장과 함께 내년 1월 계약 종료를 7개월 앞두고 씁쓸한 종말을 고했다.
홍 감독은 약 1분 40초 동안 읽은 공식 입장문을 통해 "대한민국 축구를 사랑하고 응원해주시는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오늘 국가대표 감독직에서 물러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감독이라는 자리는 결과 앞에서 어떤 설명도 있을 수 없는 자리"라며 "국민 여러분께서 기대하셨던 결과를 끝내 보여드리지 못했다. 그 책임은 모두 감독인 저에게 있다"고 고개를 숙였다. 기자들의 질문은 받지않고 자리를 떴다.
한국 축구는 이번 대회에서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등 이른바 ‘황금 세대’를 앞세워 통산 세 번째 원정 16강 그 이상을 노렸으나, 모두 1승 2패에 그치며 32강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다. 본선 1차전에서 체코를 2-1로 꺾으며 기분 좋게 출발했으나, 개최국 멕시코에 0-1로 무너진 데 이어 반드시 비기기만 해도 되었던 남아공과의 최종전에서 0-1로 무기력하게 패한 것이 치명타였다.
조 3위로 '와일드 카드' 32강 진출에 희망을 걸었으나 모든 '경우의 수'가 소멸되면서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됐다. 최종 성적은 참가국 48개국 중 34위다. 이는 한국 축구 역사상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이후 44년 만의 역대 최저 순위다. 아울러 28년 만의 조별리그 2득점 이하, 36년 만의 2경기 연속 무득점이라는 수치스러운 기록도 함께 남겼다. 이로써 홍 감독은 세계 축구 역사상 최초로 동일한 감독이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에서 두 번(2014년 브라질, 2026년 북중미)이나 탈락하는 불명예의 주인공이 됐다.
2024년 7월 부임 당시부터 홍 감독은 선임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 문제로 축구 팬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부임 직후 코칭스태프 구성 과정에서의 잡음과 수석코치의 재택근무 논란 등 시종일관 시스템의 허점을 노출했다. 아시아 예선 과정에서 거둔 성과 역시 상대 팀의 퇴장이나 부상 등 전술 외적인 행운에 기댄 결과였다는 비판이 본선 무대에서 고스란히 증명됐다.
특히 남아공전 패배 이후 현지 고지대 기후와 선수들의 심리 상태로 책임을 돌리는 듯한 발언을 해 여론의 매를 벌기도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타 국가들의 경기 결과에 따른 ‘9가지 경우의 수’ 시나리오에 생존을 걸었으나, 끝내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홍 감독은 "지난 2년 동안 ‘이 선택이 대한민국 축구를 위한 선택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왔고 판단의 기준은 언제나 한국 축구였다"고 소회를 밝히면서도,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귀국길에 오르기 전 사퇴를 확정 지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로 맞이했던 한국 축구의 전성기는 이번 북중미 참사와 사령탑의 중도하차로 인해 폐허 위에서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야하는 처지로 접어들게 됐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월드컵 후 사퇴를 표명한 바 있다.
홍 감독의 계약기간은 2027년 1월에서 2월 초 사이에 열리는 AFC(아시아축구연맹) 사우디아라비아 아시안컵까지였다.
◆ 홍명보 감독 사퇴 입장문 전문
안녕하세요. 먼저 대한민국 축구를 사랑해주시고 언제나 대표팀을 응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오늘 저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직에서 물러나고자 합니다. 대표팀 감독이라는 자리는 제게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감독을 맡기로 결정한 순간부터는 다른 이유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맡겨진 책임을 끝까지 다하는 것, 그것이 제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저는 늘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이 선택이 대한민국 축구를 위한 선택인가’. 대표팀에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도, 선수를 선택할 때도, 훈련을 준비하고 경기를 치를 때도 그 질문만큼은 놓지 않았습니다.
모든 판단이 늘 옳았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 모든 판단의 기준만큼은 언제나 한국 축구였습니다.
감독이라는 자리는 결과 앞에서 어떤 설명도 있을 수 없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설명보다 책임을 말씀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기대하셨던 결과를 끝내 보여드리지 못했습니다. 그 책임은 모두 감독인 저에게 있습니다.
끝까지 함께해 준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 지원 스태프, 그리고 대표팀을 위해 묵묵히 헌신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오늘 대표팀 감독이라는 자리를 내려놓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축구를 향한 마음까지 내려놓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 대표팀이 다시 국민 여러분의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팀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