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정인지·안디모데 기자]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따른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개표소 봉쇄 시위가 3주째 이어지면서 시민 불편도 커지고 있다. 변경과 취소로 공연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물론, 시위대의 고성과 욕설, 방치된 쓰레기 등으로 불안감과 피로감을 호소하는 시민들도 늘고 있다.
◆ "공연 보러 갔는데 시위만 봐"…장소 변경에 취소까지
27일 공연업계에 따르면 지난 20일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서울파크뮤직페스티벌은 시위 여파로 공연 장소를 변경했다. 당초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공연을 88호수수변무대와 우리금융아트홀로 나눠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관람객들은 입장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취업준비생 이모(27) 씨는 "좋아하는 밴드를 보기 위해 오래전부터 예매했는데 개표소 봉쇄 시위로 무대가 갑자기 변경됐다"며 "보고 싶었던 밴드 공연이 1000명가량 수용할 수 있는 작은 공연장으로 옮겨져 공연 시작 40분 전부터 줄을 섰지만 결국 입장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페스티벌이 3개 무대를 오가며 관람하는 방식이라 이동할 때마다 시위대 옆을 지나야 했다"며 "혹시 돌발 행동이 벌어질까 불안했다"고 했다.
직장인 장모(27) 씨도 "시위가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공연 당일까지도 핸드볼경기장을 점거하고 있어 답답했다"며 "좋아하는 밴드를 보러 갔지만 공연장이 축소되면서 결국 관람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다리는 내내 부정선거와 재선거 주장을 들어야 했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시위대가 가까이 다니는 모습도 불편했다"며 "공연이 끝나고 밤이 되니 시위 참가자가 더 많아져 두려운 마음에 공원을 한참 돌아 귀가했다"고 했다.
내달 4~5일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가수 박서진의 콘서트는 전면 취소됐다. 소속사 장구의신엔터테인먼트는 지난 22일 SNS를 통해 "공연 운영 및 제반 여건을 검토한 결과 공연을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지난 13~14일 핸드볼경기장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넥슨 메이플스토리 쇼케이스'는 경기 고양시 킨텍스로 장소를 옮겼다.
시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향후 공연 일정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27~28일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에는 가수 박창근이, 케이스포돔(KSPO DOME)에는 그룹 투어스(TWS) 공연이 예정돼 있다. 핸드볼경기장에는 내달 17~19일 동방신기 유노윤호 공연, 같은달 31일부터 8월2일까지 밴드 엔플라잉 공연이 예정돼 있다.
수개월 전부터 공연을 예매한 관람객들 사이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X(옛 트위터)와 네이버 블로그, 유튜브 등 SNS에도 관련 글 수백건이 올라와 있다. "시위대가 많을까 걱정된다", "분위기가 좋지 않아 동행을 구해야 하나 고민된다", "올림픽공원에 간다고 하니 택시기사가 시위 가냐고 묻더라" 등 내용이 이어졌다.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는 지난 16일 입장문을 내고 "단순 관람객 불편 문제를 넘어 공연장 운영이 사실상 멈추는 '셧다운' 우려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 텐트촌 된 올림픽공원…고성·욕설·쓰레기에 몸살
올림픽공원에 나들이 나왔다가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시위가 23일째 이어지고 있는 이날도 핸드볼경기장 주변에는 텐트와 모기장 수십개가 설치돼 있었다. 곳곳에는 은박 담요와 매트리스, 침낭 등이 나뒹굴고 있었다. 간이 책상에 천을 둘러 만든 기저귀갈이대도 눈에 띄었다.
지난 24일에는 휴대전화로 시위 현장을 촬영하던 30대 외국인 여성에게 일부 참가자들이 다가가 "미국인이다. 부정선거를 아느냐"고 말을 걸었다. 여성은 손사래를 친 뒤 자리를 떠났다.
공원을 찾은 시민들은 시위대가 참정권을 요구하는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장기화된 시위에 따른 불편은 별개의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시위대의 고성과 욕설, 폭행 장면을 목격하며 불편을 느꼈다는 이들도 많았다.
직장인 최다은(31) 씨는 "강동구에 사는 이유 중 하나가 언제든 올림픽공원 나들이를 갈 수 있단 점이었는데 시위가 시작된 뒤로는 반 포기 상태"라며 "시위 참가자로 오해받기 싫고 소음도 심해 전처럼 찾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반려견과 함께 러닝을 하던 30대 여성은 "매일 공원을 뛰는데 갈수록 너저분해진다"며 "뛰다가 고함을 듣고 놀란 적도 많다"고 전했다. 강동구에 거주하는 50대 여성 정모 씨는 "천막과 모기장이 보기 좋지 않고, 산책하다 고성을 듣고 돌아가니 기분이 개운치 않다"며 "그렇다고 나가달라고 할 수도 없어 그냥저냥 버티며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시위 장기화에 따른 방치된 쓰레기도 문제다. 핸드볼경기장 인근에는 일반·플라스틱·캔·유리·종이 등으로 나뉜 분리수거함과 종량제 봉투가 설치돼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은 각 출입구에 모인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자원봉사자는 "분류를 해놓으면 공원 측에서 오전 3차례, 오후 3차례 수거한다"며 주말에는 횟수가 더 늘어 오전과 오후 각각 4~5차례 정도 가져간다"고 말했다.
공원 내 조경·미화 사무실 인근에는 흰색 쓰레기봉투가 3~4m 높이로 쌓여 있었고 음식물로 추정되는 악취도 풍겼다. 한 공원 미화원은 "시위 이후 쓰레기가 엄청나게 늘었다. 말도 못 한다"며 "공연 한 번 열릴 때와는 차원이 다른 정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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