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호의 월드컵 파일] 1986년에도 이렇진 않았다...남아공전 패배에 '참담'


25일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3차전 한국-남아공전 관전기

한국의 캡틴 손흥민이 25일 남아공과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최종 3차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된 뒤 동료들과 호흡이 맞지 않아 안타까워하고 있다./몬테레이=신화.뉴시스

[더팩트 | 최순호 전 국가대표]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경기를 봤다. 전혀 걱정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한 경기였다. 아마 대부분의 전문가나 축구 팬들 또한 마찬가지였으리라.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이 35계단이나 아래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상대로, 비기기만 해도 32강에 오르는 상황에서 이토록 무기력한 경기를 펼치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25일 열린 남아공과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최종 3차전은 잘하면 2골 차 이상 승리, 아주 못해도 비기는 것쯤은 당연히 가능할 것으로 믿었다. 경기도 포천에서 축구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김희태 선배와 후배들의 경기를 보며 기분 좋은 덕담을 주고받으려 했던 기대도 내 마음을 가볍게 부풀렸다.

그러나 결과는 0-1 패배였다. 실점한 사실보다 득점을 전혀 올리지 못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그것도 2경기 연속 무득점이다. 역대 최고의 멤버로 구성됐다는 대표팀의 진면목이 맞는지 눈이 의심스럽다. 한국의 월드컵 도전사를 통틀어 봐도 이처럼 충격적인 결과는 쉽게 찾기 힘들 것이다. 상대가 세계적인 강팀도 아니고, 국내외 모든 전문가는 물론 인공지능(AI)조차 한국의 낙승을 점친 경기에서 허무하게 무너지다니, 마치 꿈속의 일만 같다.

결국 철저하게 준비되지 않은 팀의 민낯이 가장 중요한 외나무다리에서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무릇 국제 대회에서 경기를 치를 때는 상대가 강팀일 때, 비슷한 전력일 때, 혹은 약팀일 때를 상정한 맞춤형 경기 플랜이 명확히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는 그런 유기적인 전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조별리그 1, 2차전과 마찬가지로 수비 안정화라는 기본 틀만 둔 채 선수 이름표만 바꿨다. 그것도 한국 축구의 상징이자 에이스인 손흥민을 벤치에 대기시키는 악수를 뒀다. 그렇게 해서 대체 바뀐 게 무엇인가. 킥오프 후 조심스레 눈치를 살피던 남아공 선수들의 기세만 단숨에 살려준 꼴이 되지 않았는가.

경기가 끝난 뒤 한국과 남아공의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몬테레이=신화.뉴시스

선수 기용을 떠나 손흥민을 그렇게 대우해서는 안 된다. 슈퍼스타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와 존중이 보이지 않았다. 손흥민이 아무리 전성기만 못하다고 한들, 그가 그라운드에 서 있는 존재 자체만으로 상대 수비진에 주는 위압감은 다른 선수들의 기량 이상이다. 게다가 정신적 지주인 '캡틴'이 후발 주자로 밀려 고개를 떨구는 상황에서, 남아 있는 선수들의 사기와 응집력이 온전히 오를 리 만무하다. 선수들의 호흡은 전혀 맞지 않았고, 선제골을 내주고 끌려가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고집스럽게 똑같은 전술을 유지하는 벤치의 모습은 아무리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냉정하게 말해 상대가 골 결정력이 부족한 남아공이었기에 0-1 패배로 막아낸 것이다. 조금만 짜임새 있는 강팀을 만났더라면 세 골 차 이상의 참패를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경기였다. 한국 축구가 처음으로 세계 무대에 이정표를 세웠던 1986년 멕시코 대회에서도 우리는 이런 무기력한 경기를 하지 않았다. 당시 디에고 마라도나가 버티던 '우승국' 아르헨티나와의 1차전(1-3 패)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역사적인 월드컵 1호 골을 터뜨렸고, 불가리아(1-1 무), 이탈리아(2-3 패)를 상대로 대등하게 맞싸우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지금처럼 풍족하고 체계적인 대표팀 지원 환경이 아니었음에도, 당시의 우리 선수들은 세계적 강호들을 상대로 매 경기 골을 터뜨리며 한국 축구 고유의 매운맛과 끈기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축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홍명보 감독을 비롯한 후배 선수들의 선배로서 대한민국 축구 팬들에게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이다.

모든 경기를 다 잘할 수는 없다. 스포츠의 세계에서 매번 이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참담한 패배라는 결과론을 떠나,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무전술과 무기력함이 왜 본선 무대에서 발생했는지 그 과정은 반드시 뼈아프게 되짚어봐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쳐야지, 이 처참한 실패를 다시는 되풀이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