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유성은, 치열한 11년 웅크림 끝에 다시 켠 '빛'


11년 만의 신보..알앤비 디바서 싱어송라이터로
우여곡절 딛고 '가장 유성은다운' 궤도 재진입

유성은이 지난 18일 3번째 미니 앨범 The Meteor Is Glowing을 발매했다. 보컬리스트로서의 색채가 더 짙어졌을 뿐만 아니라 싱어송라이터로 도약하는 유의미한 청사진을 보여주는 앨범이다. /제이지스타

[더팩트 | 정병근 기자] 가수 유성은이 기나긴 정체기와 방황 그리고 우여곡절을 지나 마침내 더 깊어지고 단단해진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펼쳐냈다.

치열한 가요계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유지하며 생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론 본인의 상황이, 또 때론 주변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예상치 못한 긴 공백기가 발생하고 이는 대중과 거리를 멀어지게 만든다. 유성은 역시 이러한 뼈아픈 성장통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그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았다.

지난 18일 발매한 3번째 미니 앨범 'The Meteor Is Glowing(더 메테오 이즈 그로잉)'은 유성은이 11년 만에 내놓은 앨범 단위의 결과물이자, 미니 2집 이후 단절된 가수 유성은의 시간을 다시 이어주는 매개체다. 더 유의미한 건 보컬리스트로서의 색채가 더 짙어졌을 뿐만 아니라 싱어송라이터로 도약하는 유의미한 청사진이라는 점이다.

유성은의 지난 궤적은 화려한 시작과 아쉬운 정체기를 모두 관통한다. 2012년 Mnet 슈퍼보컬 서바이벌 프로그램 '보이스 코리아'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대중의 뇌리에 강렬하게 각인된 그는 2013년 미니 1집 'Be OK(비 오케이)'를 통해 블루스, 알앤비, 팝을 아우르는 걸출한 여성 보컬리스트의 탄생을 알렸다.

이어 싱글 'Healing(힐링)', '어차피 한번은 아파야 해', 그리고 '마리화나'까지 연달아 발매하며 자신만의 짙은 소울과 알앤비 정체성을 확고히 다졌다. 특히 2015년 발매한 싱글 '마리화나'에서 유성은은 그루브한 블루스의 끈적함과 몽환적이고 소울풀한 느낌을 완벽히 버무려내 대체불가한 보컬리스트로서의 역량을 뽐냈다.

그러나 그해 10월 발매한 미니 2집 이후 가수 유성은의 시계는 느리게 흘러갔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싱글 한 곡 정도를 발표하거나 OST, 리메이크 음원에 참여하는 데 그쳤다. 음악 예능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긴 했지만, 본인의 음악적 서사를 오롯이 담아낸 앨범 단위의 활동은 전무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3년 오랜 시간 함께한 뮤직웍스를 떠나 새 출발을 도모했으나, 제대로 된 지원조차 받지 못한 채 회사가 폐업하는 불운까지 겹쳤다.

그 시간 동안 결과물을 낼 수 없었음에도 묵묵히 보컬에 깊이를 더하고 곡 작업 능력까지 키운 유성은은 지난해 6월 지금의 소속사 제이지스타에 둥지를 틀고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그리고 다시 1년여가 더 지나 내놓은 이 앨범은 지난 11년이 표면적으론 조용히 흘러간 시간처럼 보일지언정 '본인에겐 얼마나 치열한 시간이었는지'를 보여준다.

11년 전 발매된 미니 2집은 유성은의 음악적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프로듀서들이 의기투합한 '웰메이드 기획 앨범'의 성격이 강했다. 타이틀곡 'Nothing(나띵)'은 당시 히트 프로듀서인 이기용배가 주조한 블루지한 팝 알앤비였고, 수록곡들 역시 윤석철 노주환 허성진 등 외부 작곡가들의 손에서 탄생했다.

당시 유성은은 수록곡 '일이 먼저지'에서 데뷔 이후 처음으로 가사와 랩핑에 도전하며 잠재력을 내비쳤지만, 앨범 전반적으로는 곡의 콘셉트를 탁월하게 소화해 내는 '압도적인 보컬리스트'로서의 역할에 머물러 있었다.

앨범은 유성은의 압도적인 가창력을 바탕으로 철저히 유성은다운 감정을 가장 솔직한 내면의 세계로 풀어내 차원이 다른 깊이감을 선사한다. 앨범 프리뷰 영상 장면. /제이지스타

반면 신보 'The Meteor Is Glowing'은 유성은의 이름이 앨범 크레디트 전반을 빼곡히 채운다. 6곡 전곡의 작사와 작곡에 직접 참여한 것. 과거에는 타인이 만들어준 이별과 사랑의 서사를 불렀다면, 이제는 기나긴 공백기 동안 자신이 느꼈던 두려움, 멈춤, 회복,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본인의 언어와 멜로디로 그려냈다.

그렇게 완성한 앨범은 유성은의 압도적인 가창력을 바탕으로 철저히 '유성은다운' 감정을 가장 솔직한 내면의 세계로 풀어내 차원이 다른 깊이감을 선사한다. 앨범은 트렌디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알앤비 사운드를 베이스로 유성은의 가장 큰 무기인 '따뜻하고 몽환적인 음색'을 전면에 내세웠다.

보컬리스트 유성은은 이미 검증됐다. 이 앨범에서 그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건 송라이터 유성은의 역량이다. 새 앨범이 유성은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갖는 가장 큰 차별성과 성장의 증거는 바로 '주체성'이다. 유성은이 써 내려간 각 곡의 이야기와 메시지, 그걸 엮어낸 앨범 서사는 그의 지난 11년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함축해 펼쳐낸다.

첫 트랙 'Take It Slow(테이크 잇 슬로우)'는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뒤처지는 듯한 불안감을 안고 살았던 유성은의 고백이다. '나답게 걸으면 돼 내 속도로 피어가'라는 반복되는 가사와 "조금 느려도, 돌아가도 그 길 끝엔 언제나 내가 있었다"는 곡에 대한 유성은의 메시지는 그의 11년 세월을 대변한다.

타이틀곡 'Glowing'에서는 꺼진 줄 알았던 마음속 작은 빛을 다시 발견하며 조용히 호흡을 고르는 벅찬 감정을 현악기와 함께 드라마틱하게 담아냈다. '내 안의 빛이 번질 때그림자마저도 fade away(사라져) / And I rise, I'm alive again(그리고 난 일어서고 다시 살아나)'라는 가사는 현재의 상황과 마음가짐을 드러내는 듯하다.

마지막 트랙 'Ending Credit(엔딩 크레디트)'는 지난날의 완벽하지 않았던 선택들마저 한 편의 이야기로 품어 안으며 다음 챕터에 대한 의연한 기대감을 노래하며 앨범의 서사를 완벽하게 닫는다.

보컬리스트로서의 관능과 그루브도 돋보인다. 설렘과 불안이 공존하는 감정을 그린 'Divin'(다이빙)', 낯선 이끌림을 표현한 'One, Night(원, 나이트)', 그리고 꿈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몽환적인 트랙 'In Dream(인 드림)(몽마)'는 기타와 베이스, 절제된 리듬 위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유성은의 그루브 넘치는 보컬 테크닉을 여실히 보여준다.

타인의 이야기와 감정을 빌려 부르던 디바는 깊은 밤 홀로 써 내려간 일기장 같은 노래들로 자신의 빛을 증명하는 싱어송라이터로 돌아왔다. 'The Meteor Is Glowing'은 그간의 치열했던 웅크림이 '다시 빛나기 위한 시간'이었음을 증명하는 결과물이다. 멈춘 것 같던 유성은의 시간이 다시 천천히, 전보다 눈부시게 흘러갈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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