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유율 80%의 '착시'...멕시코를 흔들지 못한 '오프 더 볼' [이영규의 비욘더매치]


웅크린 멕시코 수비벽에 갇힌 정적 빌드업 한계 노출
남아공전 '배수의 진', 조 2위 확보 위한 전력전 불가피

한국 수비의 기둥 김민재가 19일(한국시간) 열린 2026북중미월드컵 A조 조별리그 멕시코전이 0-1 패배로 끝나자 매우 아쉬워하고 있다./과달라하라(멕시코)=KFA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이길 수도 있었던, 아니 최소한 비겨야 했던 경기를 놓쳤다. 국민들 뿐만 아니라 그라운드에서 온 힘을 쏟은 선수들 역시 아쉬움에 쉽게 잠을 청하기 어려운 밤일 것이다.

한국 축구가 19일(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경기장에서 벌어진 2026 북중미월드컵 조별리그 A조 두 번째 경기 멕시코전에서 0-1로 패해, 월드컵 무대에서 또다시 '멕시코 고원'을 넘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경기 내용만큼은 과거의 무기력했던 패배와 확연히 달랐다. 과거에는 한국이 멕시코를 지나치게 경계하며 끌려 다녔다면, 이날은 오히려 멕시코가 한국의 날카로운 공격력을 두려워하며 수비 지향적인 안정적 경기 운영에 치중했다. 전반 초반 전방 압박을 시도하던 멕시코가 한국의 역습에 배후 공간을 몇 차례 노출하자 곧바로 압박 강도를 낮춘 점이 이를 증명한다.

결과적으로 박빙의 대등한 승부였으나, 단 한 번의 사소한 균열이 승패를 갈랐다. 후반 5분 문전에서 높게 뜬 평범한 공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골키퍼 김승규와 수비수 이기혁의 동선이 엉킨 실수가 치명적인 실점으로 연결됐다. 김승규가 이후 여러 차례 동물적인 선방으로 위기를 넘기며 절정의 폼을 보여주었기에, 이 한 번의 실책이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한국 축구대표팀 주장 손흥민(오른쪽)이 19일(한국시간) 열린 2026북중미월드컵 A조 조별리그 멕시코전에서 상대 진영 박스 왼쪽에서 상대수비수와 볼 다툼을 하고 있다./과달라하라(멕시코)=KFA

◆ 중원의 생략과 '80% 점유율'의 함정

경기 초반 양 팀은 중원을 거치는 패스 플레이보다 측면을 활용해 전방으로 길게 때려 넣는 롱볼 위주의 움직임을 가져갔다. 전반 중반까지 이강인과 황인범의 모습이 중계 화면에 자주 잡히지 않은 이유다. 상대의 집중 견제를 받은 이강인은 아예 우리 진영 낮은 위치까지 내려와 볼을 운반하기도 했다. 에이스가 하프라인 아래까지 내려와서 공을 만져야 할 만큼 중원의 패스 길목이 모두 막혀있었던 셈이다.

여기서 한국의 고질적인 아쉬움이 드러났다. 중원에서 볼을 탈취했을 때 주변 동료들의 서포트가 너무나 부족했다. 공을 가진 선수의 선택지를 넓혀주는 오프더볼 움직임이 정체되다 보니 공격 옵션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전반 33분경, 이기혁이 볼을 잡은 뒤 상대 선수들의 압박에 둘러싸일 때까지 패스 길을 찾지 못했던 장면은 이날 한국의 답답했던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더욱 뼈아픈 것은 전반 35분 이후 전반 종료까지의 '가짜 점유율'이다. 한국은 볼 소유 시간을 늘리며 점유율을 80%까지 끌어올렸지만, 실속 있는 결정적 기회는 만들지 못했다. 멕시코가 손흥민의 배후 공간 침투에 가슴을 쓸어 내린 뒤 라인을 내리고 웅크리자, 한국은 후방 빌드업을 통해 편안하게 패스를 이어갔다. 그러나 템포가 너무나 정적이었다. 속도감이 결여된 패스 회전은 멕시코 수비진을 전혀 흔들지 못했고, 상대는 공간만 지키며 손쉽게 한국의 공세를 막아냈다.

김승규 골키퍼(가운데) 한국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9일(한국시간) 열린 2026북중미월드컵 A조 조별리그 멕시코전이 끝난 뒤 다들 허탈해하고 있다.?과달라하라(멕시코)=KFA

◆ 이해하기 힘든 교체 카드, ‘손-오 투톱’은 왜 외면 받았나

후반 들어 멕시코 퀴뇨네스의 어정쩡한 크로스가 떴을 때 발생한 수비 실책으로 박스 뒤에 있던 로모에게 허망한 결승골을 내준 이후, 경기는 완전히 멕시코가 의도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갔다. 실점한 한국이 다급해진 반면, 승기를 잡은 멕시코는 급할 게 없었다. 상대가 두껍게 밀집 수비를 펼칠 때일수록 빠른 템포의 원터치 패스나 과감한 전환이 필요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정적인 패스에 의존하며 의미 없는 점유율만 높였다.

벤치의 용병술도 의문을 남겼다. 후반 11분, 흐름을 바꾸기 위해 이재성과 손흥민을 빼고 황희찬과 오현규를 투입했으나 전술적인 색채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전방에서 가장 위협적이었던 손흥민을 이른 시간에 불러들인 점은 못내 아쉽다. 전반부터 왕성한 활동량으로 멕시코 수비진을 휘저었던 손흥민은 체력적으로 고갈되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저돌적인 오현규를 파트너로 붙여 '손흥민-오현규 투톱' 카드를 가동했더라면 멕시코의 밀집 수비를 균열 내는 데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마찬가지로 상대가 라인을 깊게 내린 시점에서 '제3의 공격 옵션'인 조규성 카드를 더 일찍 꺼내 들었으면 어땠을까. 후반 31분이 되어서야 그라운드를 밟은 조규성은 투입 후에도 10분 가까이 팀의 정적인 패스 플레이 속에서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내야 했다.

타점 높은 고공 플레이라는 명확한 목적을 가진 교체였음에도, 그의 머리를 겨냥한 공격 패턴이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았다. 결국 후반 41분이 돼서야 왼쪽 측면을 허문 엄지성의 크로스에 이은 조규성의 강력한 헤더가 터져 나왔고, 상대 골키퍼의 동물적인 선방과 세컨드 볼까지 끝내 품에 안는 집중력 탓에 아쉽게 무위로 돌아갔지만 이날 경기 통틀어 가장 완벽하고 결정적인 득점 기회였다는 점에서 흘러간 10분이 몹시 아깝기만 하다.

후반에 교체 투입된 한국축구 대표팀 공격수 조규성이 19일(한국시간) 열린 2026북중미월드컵 A조 조별리그 멕시코전이 끝난 뒤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과달라하라(멕시코)=KFA

◆ 조 1위 조기 확정 실패, 이제는 남아공전 올인이다

추가시간 4분, 이강인의 날카로운 크로스에 이은 조규성의 강력한 헤더가 상대 수비수에 의해 막히면서 결국 승리는 멕시코의 몫이 되었다. 경기 내용 면에서는 충분히 승리할 수 있는 흐름을 만들고도, 효율적이지 못한 공격 패턴과 느린 템포 탓에 스스로 발목을 잡힌 안타까운 한 판이었다.

이 패배로 조 1위 자리를 멕시코에 내주며, 3차전 남아공전에 대한 부담감이 최고조에 달하게 됐다. 당초 이번 경기를 잡고 조 1위를 조기 확정했다면 남아공전에서 대대적인 로테이션을 통해 주전들의 체력을 안배하고 선수층을 넓힐 수 있었을 텐데, 그 기회를 놓친 것이 뼈아프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아쉬움은 오늘 밤으로 끝내고 다음 경기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조 2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해 LA로 가는 시나리오도 대진이나 경기장 분위기 면에서 그리 나쁜 선택지는 아니다. 결전의 3차전, 더 기민한 오프더볼 움직임과 상황과 목적이 분명한 전술적 해법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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