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AI를 바라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솔직한 마음


'상자 속의 양', 제79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
"죽은 자는 죽은 자의 것…기술은 인간의 이기심에서 만들어졌다고 생각"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화 상자 속의 양 개봉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미디어캐슬

[더팩트|박지윤 기자] '상자 속의 양'은 제79회 칸영화제에서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었고 작품을 본 기자도 결말에 다다랐을 때 고개를 갸웃거린 게 사실이다. 그래서 더 궁금했고 알고 싶었다. 휴머노이드와 가족애를 다루면서 AI(인공지능)를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번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었는지 말이다.

지난 10일 스크린에 걸린 '상자 속의 양'으로 국내 관객들을 찾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에 앞서 서울 강남구에 있는 NEW 사옥에서 <더팩트>와 개봉 관련 인터뷰를 진행하며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상자 속의 양'은 죽은 아들을 닮은 휴머노이드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된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과 상실 그리고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그동안 현대 사회의 가족상을 끊임없이 탐구해 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휴머노이드를 소재로 각본·연출·편집을 모두 맡은 오리지널 작품이자 제79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이다.

지난 10일 스크린에 걸린 상자 속의 양은 어린 왕자가 상자 안에 양이 있다고 믿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존재를 믿고 사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기술의 시대에 던지는 작품이다. /㈜미디어캐슬

이번 작품은 2년 전 중국에서 죽은 사람들을 부활시키는 생성형 AI(인공지능) 비즈니스가 이뤄지고 있다는 기사로부터 출발했다. 상하이에서 해당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20대 사장을 만나 기술을 접했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죽은 사람의 것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고 말문을 열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결국 본인 마음이 편하기 위해 죽은 사람을 마음대로 이용하고 부활시키는 게 괜찮냐는 윤리적 질문에서 출발했어요. 물론 저도 해당 비즈니스를 보고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하지 못한 말이 떠올랐어요. 그 기술로 죽은 이를 돌아오게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이었어요."

"기술에 끌려가면 진정한 슬픔을 치유하는 과정이 멈춰버릴 것 같더라고요. 결국 이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기심에서 만들어졌고 죽은 자는 어디까지나 죽은 자의 것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이 이 기술을 이용해도 언젠가 마침표를 찍고 손에서 놔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렇게 영화는 택배가 날아오고 냉장고가 말하는 수준으로 기술이 발전한, 지금으로부터 머지않은 미래인 약 10년 후를 배경으로 하며 자식을 잃은 오토네(아야세 하루카 분)와 켄스케(다이고 분) 부부가 아들 카케루(쿠와키 리무 분)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7세로 프로그래밍 된 휴머노이드를 집에 들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다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작품의 소재인 휴머노이드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이를 필요로 하는 인간의 마음을 통해 보이지 않아도 분명하게 남아 있는 감정과 기억 그리고 상실 이후에도 계속되는 사랑의 감각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죽은 사람은 어디까지나 죽은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이 이 기술을 이용해도 언젠가 마침표를 찍고 손에서 놔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미디어캐슬

이 과정에서 그가 휴머노이드를 그려낸 방식은 흥미로웠다. 기계나 인간의 빈자리를 채우는 대체물에 그치지 않고 다른 휴머노이드의 도움을 받아 몸에 심어진 GPS를 빼는가 하면, 엄마에게 '내가 없는 편이 행복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손에 잡힌 벌레를 죽이는 등 관계 속에서 새로운 걸 배우고 반응하고 생각할 수 있는 듯한 또 다른 존재 자체로 담아내기 때문이다.

"각 개체가 인격을 갖고 있다기보단 휴머노이드가 집단으로 이뤄졌을 때 의지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벌레를 죽이는 장면은 계속 벌레를 찾아다니는 쿠와키 리무를 보고 현장에서 추가한 거예요. 어른들의 관점에서 아이들이 갑자기 잔혹한 행동을 할 때가 있는데 이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휴머노이드라서 그러는 건지 아이들만의 잔혹함인 건지, 인간의 입장에서 혼란을 느끼게 하려고 만든 장면이에요."

그런 지점에서 전혀 어울리지 못할 것 같은 휴머노이들과 어린아이들이 함께 숲으로 가는 예상치 못한 엔딩은 짙은 여운을 선사하면서 죽은 자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도 던진다. 이는 당초 휴머노이드로 돌아온 카케루가 부부와 조금 더 같이 사는 거로 이야기를 마무리할 예정이었으나 자식이 부모를 떠나가는 결말로 바꾼 것이라고.

"아이가 성장하면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과 가정을 이루는 부분을 생각했어요. 그래서 휴머노이드가 생각하는 가족이라는 틀은 인간부터 인간 이외의 기계와 숲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걸 다 포함한 새로운 공동체를 휴머노이드들이 이룬다고 생각하고 영화를 만들었어요. 이를 통해 지금까지 생각해 온,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의 개념을 넘어서는 느낌을 표현했죠."

그러면서 버려지거나 혹은 도망친 어린아이들이 가족으로서 휴머노이드를 선택하고 숲에 남는 이유도 설명했다. 그는 "휴머노이드 입장에서는 그 아이들을 동정하게 됐을 것이다. 또 숲에서 휴머노이드끼리만 살면 결국은 휴머노이드와 인간을 분단시키는 결말이라고 생각했다"고 솔직하게 바라봤다.

"그래서 숲에는 다양한 존재가 있다는 쪽으로 그려내고 싶었어요. 기계도 있고 자연도 있고 산 사람도 죽은 사람도 있는, 여러 가지가 모여 있는 숲이 만들어지고 이를 본 부부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걸 연출하고 싶었죠."

상자 속의 양으로 국내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후지모토 타츠키의 만화 룩백을 실사화한 영화를 준비 중이다. /㈜미디어캐슬

앞서 '상자 속의 양'이 제79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면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본인 연출작으로 칸 통산 10번째 초청이자 8번째 경쟁 부문 진출이라는 쾌거를 거뒀다.

2001년 '디스턴스'를 시작으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칸영화제와 인연을 맺어온 그는 이번에도 오랜만에 만난 인연들과 축제의 분위기를 만끽하면서 풍요로운 시간을 보냈다고 소회를 밝히면서 박찬욱 감독, 봉준호 감독과 얽힌 에피소드도 공개해 관심을 모았다.

"개막식 때 꽤 앞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박찬욱 심사위원장이 저를 보고 미소를 짓더라고요. 3년 전 칸영화제에서 그가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받고 저의 '브로커'로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받고 파티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그러다가 뒤를 돌아봤는데 봉준호 감독이 있었어요. '이 미소와 눈길은 내가 아니라 봉준호를 향한 거였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박 감독이 웃어줄 때 화답하려다가 제가 아닐 수도 있어서 조용히 손을 내렸어요. 그 미소가 누구를 향한 것이었는지 알고 싶어요."

'상자 속의 양'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다음 스텝은 '룩백'이다. 그는 각본과 감독 그리고 편집까지 맡으며 일본 천재 만화가 후지모토 타츠키의 동명 만화를 실사화로 재탄생시킬 예정이다.

"'룩백'에 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얘기할 수 없어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만화이고 존경심도 있어요. 종이로 그려진 것과 인간이 나오는 것은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고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불안할 수도 있지만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다음은 미국 배우 에디 레드메인과 영어권 영화를 만들 것 같아요. 지금은 홍보 일정으로 바쁜데 이거 끝나면 제대로 준비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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