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순규 기자] '꽃길'로 들어설 것인가. '지옥문'을 열 것인가.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12일 오전 11시(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체코와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1차전을 치른다. 이번 대회는 사상 최초로 48개국 체제로 확대되면서 조 3위에도 32강행 와일드카드가 주어지지만, 한국 축구의 역사적 통계와 조 편성을 고려할 때 체코전은 ‘지면 끝장’이라는 각오로 임해야 하는 외나무다리 승부다.
한국은 지난 카타르 월드컵을 마친 후 감독이 두 차례 바뀌는 변화를 겪으면서도 무패를 기록하며 무난하게 아시아 예선을 통과했다. 한국은 중국, 태국, 싱가포르와 C조에 속한 아시아축구연맹(AFC) 2차 예선에서 태국과의 한 차례 1-1 무승부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승리했다.
이후 한국은 요르단, 이라크, 오만, 팔레스타인, 쿠웨이트와의 AFC 3차 예선 B조에서도 6승 4무로 무패행진을 거듭하며 조 1위 본선행을 확정했다. 이번 아시아 예선에서 무패로 본선에 진출한 팀은 한국이 유일하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을 시작으로 통산 12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한국은 본선 38경기 7승 10무 21패, 39득점 78실점을 기록하고 있으며 사상 최초의 원정 월드컵 본선 8강을 목표로 하고 있다.
◆ 팩트 체크: 역대 1차전 승률 ‘0%’의 잔혹사, 체코전 승리가 무조건인 이유
한국 축구의 월드컵 도전사에서 ‘1차전=대회 성패’라는 공식은 숫자로 증명된다. 한국이 원정 첫 16강 위업을 달성했던 2010년 남아공 월드컵(그리스전 2-0 승)과 극적인 16강 신화를 쓴 2022년 카타르 월드컵(우루과이전 0-0 무) 모두 첫 경기에서 승점을 확보하며 판도를 유리하게 이끌었다. 물론 4강신화를 이룩한 2002 한일월드컵에서도 폴란드와 1차전에서 2-0 승리를 거두며 조별리그는 물론 16강~8강~4강까지 위대한 여정을 이어갔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부터 2022년 카타르 월드컵까지 32개국 본선 체제가 치러진 7차례의 대회 동안, 1차전에서 승리한 팀이 16강에 오른 사례는 전체의 약 80% 이상에 달했다. 반면, 1차전 패배 팀이 조별리그를 통과한 확률은 10%대 초반에 불과했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부터는 본선 참가국이 48개국으로 늘어나 4개국씩 12개 조로 조별리그를 치른다. 각 조 1, 2위(24개 팀)는 물론, 3위 팀 중 상위 8개 팀까지 32강 토너먼트에 합류하게 된다. 즉, 1차전 승리로 승점 3점을 선점하면 최소 조 3위를 확보할 가능성이 극대화되며, 골득실 관리만 잘해도 32강에 턱걸이할 수 있는 구조적 어드밴티지가 생겨 진출 확률이 80%를 상회하게 된다.
반면 역대 월드컵에서 1차전 패배 후 토너먼트에 진출한 전례는 단 한 번도 없다. 만약 체코전에서 고배를 마신다면, 2차전에서 이번 대회 가장 강력한 1위 후보이자 개최국인 ‘난적’ 멕시코를 상대해야 한다. 홈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멕시코를 상대로 뒤처진 승점을 역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마지막 남아공전까지 압박감이 더해지며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 있다. ‘경우의 수’조차 따지지 못하고 조기 탈락의 수렁에 빠질 수 있는 게 A조의 상황이다. 4팀 모두 3승 또는 3패도 할 수 있다며 저마다 의욕을 불태우는 상황이다. 병법에 기선제압(機先制壓)이라 했다. 첫 경기 승점 3점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 전술 매치업: ‘철저한 고지대 적응’ 한국 vs ‘186cm 장신 고공 폭격’ 체코
이번 경기의 최대 변수는 해발 1570m에 달하는 과달라하라의 ‘고지대 환경’이다. 고지대에서는 산소 농도가 낮아 후반전 체력 고갈이 급격히 찾아오고, 공기 밀도가 낮아 공의 속도가 10~15% 빨라지며 낙하지점 포착이 어렵다.
여기서 홍명보호는 확실한 우위를 점했다. 한국은 지난달 19일부터 기후 조건이 유사한 미국 솔트레이크시티(해발 1470m)에 사전 캠프를 차려 3주간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반면 체코는 저지대인 텍사스에서 훈련하다 경기 전날에야 결전지에 도착하는 ‘도박’을 감행했다.
한국 축구의 레전드 박지성 JTBC 해설위원이 현지 인터뷰에서 "경기 전날 도착한 상대로서는 상관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지만 고지대 영향은 분명히 있다. 한국이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짚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후반전 체력이 먼저 떨어질 체코의 배후 공간을 손흥민, 황희찬, 오현규의 빠른 스피드로 허물어야 한다.
다만 체코의 ‘높이’는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 체코의 평균 신장은 186cm로 한국(182cm)보다 무려 4cm가 크다. 유럽 예선 22골 중 10골을 세트피스로 만들어낸 만큼 토마시 소우체크의 타점 높은 헤더와 레버쿠젠의 무패 우승 주역 파트리크 시크(191cm)의 결정력은 위협적이다. 홍 감독이 기존 포백 대신 김민재를 중심으로 한 ‘스리백(3-Back)’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이유도 체코의 고공 폭격을 제어하고 수비 조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다.
◆시나리오 분석: 조 1·2·3위 진출 시 마주할 32강 대진 방정식
48개국으로 확대된 이번 대회는 12개 조의 1, 2위가 32강에 직행하고, 조 3위 중 상위 8개 팀이 와일드카드로 합류한다. 한국이 A조에서 거둘 성적에 따라 다음 스테이지의 난이도는 극과 극으로 갈린다.
[A조 최종 순위별 32강 예상 대진 경로] ▲ 조 1위 통과 시 ➔ C조/E조/F조/H조/I조 3위 (상대적 약체, 16강 청신호) ▲ 조 2위 통과 시 ➔ B조 2위 (유럽 또는 캐나다, 박빙의 승부) ▲ 조 3위 와일드카드 통과 시 ➔ E조 1위 (독일 유력, 가시밭길 예고)조 1위 승선 시 (최상의 시나리오): 만약 체코와 남아공을 잡고 멕시코와 비겨 조 1위로 올라선다면, 32강에서 C·E·F·H·I조의 3위 와일드카드 팀과 맞붙는다. 조별리그에서 기운을 뺀 조 3위 약체를 만나기 때문에 한결 수월하게 16강 고지를 밟을 수 있다. 멕시코시티에서 경기를 치르는 이점이 있다.
조 2위 안착 시 (현실적 목표): 멕시코에 밀려 조 2위로 진출할 경우, B조 2위와 대결한다. B조에는 개최국 캐나다를 비롯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카타르,스위스가 포진해 있어 백병전이 예상된다. 최소 2위로 32강에 올라야하는 이유다. 경기 장소 또한 비교적 유리한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조 3위 턱걸이 시 (최악의 가시밭길): 체코전 패배 등으로 조 3위 와일드카드를 간신히 거머쥐게 된다면, 32강에서 E조 1위와 만나게 된다. E조는 독일 퀴라소 코트디부아르 에콰도르가 포진해있다. 독일과 만날 가능성이 크며 미국 보스턴에서 경기를 치르게 된다.
결국 32강 진출의 대진운을 결정짓는 첫 단추는 체코전이다. 철저한 현지 적응으로 다져진 홍명보호의 ‘독기’가 체코의 ‘높이’를 무력화할 수 있을지, 사포판의 밤을 밝힐 태극전사들의 투혼에 대한민국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