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조성은 기자] 글로벌 위탁개발생산(CDMO) 시장의 후발주자인 롯데바이오로직스가 중대 기로에 섰다. 초기 매출을 지탱하던 대형 계약이 종료되면서 가동률 급감과 적자 확대를 겪고 있는 가운데, 오는 8월 예정된 인천 송도 바이오캠퍼스 제1공장 준공을 앞두고 있다.
업계의 시선은 지난해 영입된 박제임스 각자대표에게 쏠린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굴지의 글로벌 커리어를 쌓아온 전문경영인인 박 대표가 새 공장의 상업화 물량을 얼마나 빠르게, 또 얼마나 크게 확보하느냐에 따라 롯데 바이오 사업의 성패와 그의 경영 성과가 극명하게 갈릴 전망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바이오의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 공장 가동률은 2024년 81%, 2025년 74% 수준을 유지하다가 올해 1분기 14%로 급감했다. 분기 생산 실적 역시 단 3배치(Batch·동일한 제조 과정을 거쳐 균일한 특성과 품질을 갖는 의약품이나 원료의 제조 단위)에 그쳤다.
이는 2022년 회사 출범 당시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으로부터 시러큐스 공장을 인수하며 승계받았던 3년 치 위탁생산(CMO) 계약이 올해 1월로 종료됐기 때문이다. 재계약 과정에서 물량이 큰 폭으로 줄어들면서 대규모 ‘수주 공백’이 현실화됐다. 공장 가동률이 감소하면서 고정비 부담과 대규모 시설 투자가 겹쳐 1분기 매출은 전분기 대비 43% 감소한 125억원에 머물렀고, 영업손실은 562억원으로 확대됐다.
회사는 최근 라쿠텐메디칼과의 광면역요법 치료제 CMO 계약을 비롯해 미국 항암 전문 기업, 영국 오티모 파마 등과 임상 단계 후보물질 및 공정개발(CDO) 계약을 잇따라 체결하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같은 소규모 물량으로는 당장 급격한 매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공장 가동률과 실적을 본격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대량 양산이 가능한 상업화 단계의 대형 수주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위기 상황에서 박제임스 대표의 리더십과 전문성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의견이 나온다. 박 대표는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전방위적 경력을 쌓아온 정통 전문경영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캠퍼스(화학공학)와 컬럼비아대 대학원(산업공학 석사)을 졸업한 그는 머크, BMS, 삼성바이오로직스, GC셀 등 국내외 기업들을 거치며 사업개발(BD), 글로벌 영업, 생산·품질관리(CMC)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특히 BMS 재직 당시 의약품 공정개발과 인수합병(M&A) 업무를 주도했고,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는 글로벌영업센터장을 역임하며 해외 고객사 확보에 기여한 바 있다.
롯데그룹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와중에 박 대표를 구원투수로 영입한 이유도 그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수주 역량 때문이다. 올해부터 롯데바이오는 오너 3세인 신유열 대표가 합류하며 각자대표 체제로 전환됐다. 신 대표가 그룹 차원의 중장기 전략과 신사업 발굴을 주도하며 글로벌 무대에서 롯데바이오로직스 홍보에 힘을 보태는 구조라면, 실제 글로벌 수주 최전선에서 계약을 성사시키고 공장 운영 실행을 이끄는 실무 총책임은 전문경영인인 박 대표가 맡고 있다.
박 대표의 경영 성과를 가를 최대 분수령은 오는 8월 준공을 앞둔 인천 송도 바이오캠퍼스 제1공장(12만ℓ 규모)의 조기 안착이다. 1공장이 완공되면 롯데바이오는 기존 시러큐스 공장(4만ℓ)을 더해 총 16만ℓ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박 대표가 내건 핵심 승부수는 미국 시러큐스와 인천 송도를 연결하는 '듀얼 사이트' 전략이다. 북미 시러큐스 공장이 항체의약품과 항체약물접합체(ADC) 등 고부가가치 제품의 초기 임상 생산 및 공정개발 거점을 맡고, 송도 공장이 대규모 상업생산을 담당해 초기 개발부터 상업화까지 끊김 없는 일원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송도 1공장은 대형 물량 대응을 위한 1만5000ℓ 급 바이오리액터뿐만 아니라 중소형 바이오텍과 고역가 제품에 적합한 3000ℓ 급 설비를 병행 배치해 유연한 생산 체계를 구축한다.
다만, 준공 이후 상업 생산에 돌입하기까지 설비 적격성 평가, 공정 밸리데이션, 글로벌 규제기관 실사 등 까다로운 후속 절차가 남아있다. 론자,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선두 주자들이 공격적인 증설로 시장을 선점한 상황에서, 박 대표가 준공 전후로 글로벌 대형 고객사와의 장기 상업화 계약을 얼마나 따내느냐가 관건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롯데그룹이 유상증자 등을 통해 롯데바이오에 투입한 금액만 1조원이 넘는 상황에서, 송도 공장 가동 전후의 수주 성과는 그룹 전체의 재무 리스크와도 직결된다"며 "제약바이오 업계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박 대표가 시러큐스에서 확보한 임상 단계 고객 접점을 송도 대량 상업화 물량으로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하느냐에 따라 롯데바이오의 성과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