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이제는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된 AI(인공지능)다. 이러한 세상에 살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를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자신만의 방식대로 상실의 아픔을 온전히 마주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일깨워준다. 꺼내지 않으면 계속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상자 속의 양'으로 말이다.
오늘(10일) 개봉하는 '상자 속의 양'(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은 죽은 아들 카케루(쿠와키 리무 분)를 닮은 휴머노이드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된 오토네(아야세 하루카 분)와 켄스케(다이고 분)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과 상실 그리고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택배가 날고 냉장고가 말하는 머지않은 미래에서 2년 전 아들 카케루를 잃은 오토네와 켄스케가 평범하고 잔잔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 이들에게 죽은 사람과 똑같은 외형의 휴머노이드를 제작하는 회사 리버스(Rebirth)의 제안이 오고 해당 기술에 설득당한 오토네는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한다. 켄스케는 아내의 결정이 탐탁지 않지만 오랜만에 생기를 찾은 그를 보며 이에 응한다.
이후 두 사람은 리버스에 보낼 아들의 사진과 영상 등을 고르고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카케루와 똑같은 얼굴에 그의 일부 기억이 장착되며 7세로 프로그래밍 된 휴머노이드(쿠와키 리무 분)를 받아 같이 생활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부부가 휴머노이드를 대하는 방식은 극과 극이다. 오토네는 기계라서 음식을 못 먹고 물에 닿으면 안 되니까 이와 관련된 것을 일절 언급하지 않으면서 진짜 아들처럼 대하고, 켄스케는 자신을 아저씨라 칭하며 로봇청소기와 같은 기계 정도로 바라보며 감정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그럼에도 함께 살면서 여러 변화를 겪게 된 이들이 진짜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영화를 보기 전부터 중반부까지는 위와 같은 질문에만 집중했다. 누구나 자신의 곁을 떠난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기술이 그 빈자리를 온전히 채워줄 수 있을지, 또 이를 활용하는 게 과연 옳은 결정인지를 선뜻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떠난 아들과 똑같은 얼굴을 한 휴머노이드와 지내는 부부의 일상을 통해 그들의 결정을 공감하고 상실의 아픔을 감히 짐작하다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AI를 그려내는 방식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먼저 떠난 아들을 떠올리게 하는 기계를 넘어 다른 휴머노이드의 도움을 받아 몸에 심어진 GPS를 빼는가 하면, 인간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고 벌레를 갑자기 죽이는 등의 행동으로 관계 속에서 새로운 걸 배우고 반응할 수 있는 듯한 존재로 그려내는 것. 그럴리 없지만 영화이기에 마치 하나의 인격체를 갖고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다가와 미스터리함과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이와 함께 휴머노이드로 인해 내면의 변화를 겪는 오토네와 켄스케에도 초점을 맞춘다. 이들은 애써 외면했지만 결코 지울 수 없는 과거의 후회와 상실의 아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등을 비로소 마주한다.
특히 미묘하게 어긋나는 현실로 아들과 같은 얼굴에 일부 기억까지 갖고 있지만 결국 대체제 그 이상이 될 수 없다는 걸 다시금 일깨워준다. 결국 해당 기술은 남은 자의 사랑이 아닌 미련과 이기심으로 빚어낸 산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진정으로 슬픔을 치유하는 과정의 필요성을 심어주고 죽은 자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도 곱씹게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묘한 톤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제79회 칸영화제에서 호불호가 나뉘었던 결말에 다다른다. 카케루와 같은 얼굴을 한 휴머노이드가 다른 휴머노이드들, 버려지거나 도망친 아이들과 숲속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리고 부부는 이들을 두고 일상으로 돌아가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선가 계속 느껴질 카케루를 상상하면서 지내지 않을까라고 짐작하는 열린 결말로 끝난다.
AI를 다룬 만큼 장르도 SF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는 소재에 그칠 뿐 그동안 현대 사회의 가족상을 끊임없이 탐구해 온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짙은 색채가 묻어난다.
'상자 속의 양'은 화자에게 양을 그려달라고 부탁한 어린 왕자가 결과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자 한 상자를 그린 뒤 '네가 원하는 양은 이 상자 안에 있어'라고 말한 뒤 어린 왕자가 만족하는 '어린 왕자'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를 현대적으로 또 자신만의 감성으로 재해석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상상을 자극하고 가족의 개념도 새롭게 제시하며 명료한 답이 아닌 생각할 거리들을 남긴다.
다만 여러 부분에서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만큼 여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은 자세한 설명보다는 여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에 어떠한 이유로 부부가 아들을 잃게 된 건지, 휴머노이드를 돕는 휴머노이드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였는지 등과 같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끝내 명확한 답을 찾을 수는 없다.
물론 메가폰을 잡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게 질문의 답이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작품 곳곳에 흩뿌려진 단서를 따라온 관객들에게는 충분한 설명 없이 휴머노이드와 인간 아이들이 함께 숲속에 뿌리 내린다는 결말은 다소 갑작스럽고 당황스럽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럼에도 어느새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감성이라는 언어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미처 해소되지 않은 질문들과 함께 짙은 여운 속에 머물게 되는 '상자 속의 양'은 12세 이상 관람가이며 러닝타임은 126분 31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