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우지수 기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닷새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9일 오전 김포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지난해 10월 '깐부 회동' 이후 7개월 만의 재방한으로, 당시가 반도체·자율주행 동맹의 출발점이었다면 이번 방문은 그 협력을 'AI 생태계' 전반으로 넓힌 자리로 평가된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협력 범위의 확장이다. 그동안 엔비디아와 국내 기업의 관계는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을 축으로 한 부품 거래 성격이 짙었다. 이번 방한에서는 협력 의제가 △AI 팩토리용 차세대 메모리 공동개발 △로봇·휴머노이드 △자율주행 △소버린 AI로 넓어졌다. 국내 기업이 부품 공급이나 기술 도입을 넘어 'AI 팩토리'라는 새 인프라 시장을 함께 설계하는 단계로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회동 대상의 폭도 달라졌다. 지난해 방한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과의 '깐부 회동'에 집중됐다면 이번에는 최태원 SK 회장·구광모 LG 회장·이해진 네이버 의장에 더해 게임사 경영진, 정부 부처, 서울대, AI 스타트업까지 아울렀다. 반도체 대기업 중심이던 협력 축이 통신·플랫폼·로봇·학계로 넓어진 모습이다.
황 CEO도 한국의 위상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지난 8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코리아 AI 에코시스템 리셉션'에서 제조업과 중공업, 전자산업, 소프트웨어, AI를 두루 갖춘 한국을 두고 "미래 AI 투자에 환상적인 곳"이라고 평가했다.
행보별로 짚을 대목도 적지 않다. 협력의 무게가 가장 컸던 마지막 날부터 거슬러 본다. 8일 SK 서린빌딩 공동 브리핑에서는 구체적인 협력안이 나왔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와 AI 팩토리용 차세대 메모리를 공동 개발하는 장기 기술 파트너십을 맺었고 SK텔레콤은 엔비디아 클라우드 파트너(NCP)에 합류해 기가와트(GW)급 'AI 팩토리'를 2027년 국내에서 처음 가동하기로 했다. 메모리에 머물던 SK의 역할이 클라우드·데이터센터 운영까지 넓어진 점이 눈에 띈다.
같은 날 LG와는 피지컬 AI 협력을 구체화했다. 양측은 엔비디아 '아이작 그루트' 기반 레퍼런스 로봇을 공동 개발하고 'DSX' 아키텍처로 AI 팩토리를 구축하며 자율주행 플랫폼 '드라이브 하이페리온'을 ADAS에 접목하기로 했다.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과의 회동에서는 AI 가속기 '베라 루빈'에 들어갈 HBM4 공급이 논의됐다.
이후 황 CEO는 현대차 양재 사옥에서 정의선 회장과 만나 지난해 맺은 30억달러 규모 피지컬 AI 협약의 후속 과제를 점검했고, 네이버 1784 사옥에서는 이해진 의장과 소버린 AI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면담하며 국내 기업에 대한 GPU 공급 방안을 협의했다.
하루 앞선 7일에는 게임업계와의 회동이 있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등과 만나 게임·AI 협력을 논의했다. 잠실야구장에서는 엔비디아 창립연도를 딴 93번 유니폼을 입고 시구에 나섰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시타를 맡으며 로봇 계열사를 둔 두산과의 협력도 자연스럽게 부각됐다. 첫날 페이커 등 T1 선수단과의 만남, 이튿날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녹화도 이어졌다. e스포츠·게임에 애정을 보여온 황 CEO가 대중과의 접점을 넓힌 행보로 읽힌다.
방한 기간 내내 식사 회동도 빠지지 않았다. 5일 홍대입구역 인근 삼겹살집에서 최태원·구광모 회장, 이해진 의장과 '삼쏘 회동'을, 7일에는 정의선 회장과 우래옥 냉면 회동, 저녁에는 강남 깐부치킨에서 최태원 회장 등과 '제2 깐부 회동'을 가졌다. 지난해에 이어 번화가에서 대중적인 외식 메뉴를 고른 친근한 행보가 다시 화제를 모았다.
업계에서는 이번 방한의 목적이 한국과의 협력을 부품 공급에서 'AI 생태계 공동설계'로 끌어올리는 데 있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황 CEO는 출국길에서도 향후 사업 확장 기대를 드러냈다. 그는 김포공항에서 "한국에 대한 우리의 기여는 AI 투자이며 한국의 기술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곧 다시 돌아올 것이며 한국과의 파트너십은 더 바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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