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현실 공감 연애로 누구에게나 있는 첫사랑의 추억을 들여다보게 하고 20년째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다가 마침내 영화감독으로서의 데뷔를 이루더니 이제는 좀비들의 우두머리로 군림 중이다. 끊임없는 변주로 한계 없는 연기 스펙트럼을 마음껏 드러내며 상반기를 장악하고 있는 배우 구교환이다.
먼저 구교환은 지난해 마지막 날 스크린에 걸린 '만약에 우리'(감독 김도영)에서 이은호 역을 맡아 처음으로 로맨스 장르에 뛰어들었다.
그는 20대 시절의 찬란했던 순간과 설렘 가득한 첫사랑과의 서툴러서 더 풋풋한 사랑부터 10년 후 전 연인과 우연히 마주하며 밀려오는 커다란 미련과 후회까지, 인물의 복잡한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또한 문가영과의 완벽한 연기 합과 케미로 14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지우며 관객들의 보편적인 공감대를 자극했다.
이어 구교환은 지난달 24일 종영한 JTBC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극본 박해영 연출 차영훈, 이하 '모자무싸')로 첫 TV 드라마 주연에 도전했다.
잘 나가는 동기들 사이에서 혼자만 뒤처지고 있는 황동만이 된 그는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현실에도 감독이라는 꿈을 놓지 않고, 이 과정에서 인물이 느끼는 복잡다단한 날 것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세상의 편견에 맞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나가는 사투를 처절하고 지질하지만 인간적으로 그려내며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는 이들을 위로했다.
그리고 지난 5월 21일 스크린에 걸린 '군체'(감독 연상호)로 또 다른 얼굴을 꺼낸 구교환이다. 작품은 정체불명의 감염 사태로 봉쇄된 건물 안에서 고립된 생존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진화하는 감염자들에 맞서 벌이는 사투를 그린다.
앞서 '부산행' '반도' 등 여러 좀비물을 선보였던 연상호 감독은 '군체'에서 짐승처럼 네 발로 무섭게 달려들다가 서로 정보를 교류하고 진화하면서 공격성이 발전하는, 집단지성의 힘을 지닌 새로운 종(種)을 등장시키며 자신의 세계관을 확장시켰다.
이 가운데 서영철은 과거 바이오 기업에 근무했던 천재 생물학자이자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갈망하는 인물로, 서울경찰청에 전화해 둥우리빌딩에 전염성 강한 생물학적 테러를 할 것이고 자신의 몸에 백신이 있다고 신고하며 영화의 포문을 연다. 이어 그곳에서 콘퍼런스를 연 바이오 기업 대표의 몸에 바이러스를 주사하고 정체불명의 집단 감염 사태를 일으키며 당국과 생존자들의 타깃이 된다.
이를 연기한 구교환은 생존자들의 대척점에 서 있는 메인 빌런으로서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다. 우선 그는 농담처럼 던진 말로부터 완성된 스타일링인 딱 붙는 9:1 가르마를 한 머리와 안경을 장착하며 왠지 모르게 엮이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로 등장하자마자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후 중반부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구교환은 독특한 목소리 톤과 엇박자의 호흡으로 차분하고 냉철한 논리와 섬뜩한 광기가 공존하는 미묘함을 제대로 살린다. 또한 조금만 과장돼도 몰입을 방해할 수 있는 동공 연기와 얼굴 근육 사용을 섬세하게 컨트롤하며 감염자들과 교류하고 이들을 조종할 수 있는 캐릭터의 신선한 설정을 단번에 납득시킨다.
여기에 더해진 비릿한 미소와 속내를 알 수 없는 눈빛, 차가우면서도 묘하게 들뜬 아이 같은 모습 등은 단순히 공포심을 심어주는 걸 넘어 불쾌함과 긴장감을 동시에 선사하며 뻔하지 않고 입체적인 빌런을 완성한다.
'반도'를 시작으로 '기생수: 더 그레이'와 '괴이'로 연상호 감독과 여러 번 호흡을 맞췄던 만큼, 반복된 협업이 익숙한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선도 분명 존재했다. 그럼에도 또 연 감독의 손을 잡은 구교환은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결의 연기로 선입견을 깨부수며 왜 다시 한번 자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오롯이 실력으로 보여준다.
꾸준히 다양한 장르의 작품과 캐릭터를 선택하며 자신만의 연기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구교환이다. 그는 독창적인 해석과 리듬, 독특한 매력으로 익숙한 설정값을 신선하게 풀어내고 뻔하지 않은 인물로 구축하며 예상치 못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러한 강점을 바탕으로 올해 연달아 세 작품을 선보이면서 전작의 얼굴을 지움과 동시에 흥행도 잡으며 대체 불가함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만약에 우리'는 누적 관객 수 260만 명을 기록하며 침체기에 빠졌던 극장가와 한국 멜로 영화 시장에 숨통을 제대로 불어넣었고, '모자무싸'는 1회 시청률 2.2%(이하 닐슨코리아 전국 가구 기준)로 출발했지만 마지막 회에 5.3%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또한 '군체'는 개봉 4일 만에 100만 관객을, 5일 만에 200만 관객, 10일 만에 300만 관객, 14일 만에 4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올해 개봉한 영화 흥행 2위에 이름을 올리며 적수 없는 흥행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믿고 보는 배우를 넘어 이제는 '구교환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다만 정작 그는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과하다. 대중과 친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인기 비결에 관해서는 "저는 누구보다 제 작품을 사랑한다. 언제나 제 작품의 1호 팬"이라는 구교환다운 답변으로 겸손함을 드러냈다.
이를 통해 그 누구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즐기는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고, 지금의 눈부신 활약도 연기를 향한 순수한 열정과 치열한 노력이 맞물리며 이뤄낸 결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무서운 기세를 이어가고 있는 구교환의 열일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연타석 흥행에 성공한 배급사 쇼박스의 다음 타자인 '폭설'을 비롯해 SF 액션 '왕을 찾아서'와 인기 웹툰을 영화화한 '부활남' 그리고 촬영 중인 '정원사들'과 자신의 연출작 '너의 나라'까지, 제작되는 편수가 줄어드는 흐름 속에서도 그의 차기작들은 연달아 공개될 예정이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는 활약으로 업계의 선택을 꾸준히 받고 있는 구교환의 행보는 결국 그 자체로 하나의 설득력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그가 다음에 꺼낼 새로운 얼굴에 기대가 모이는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