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이태훈 기자] 6·3 지방선거는 16곳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12곳을 석권한 여당이 판정승을 거둔 것처럼 보이나, 세부 결과를 봤을 땐 기뻐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 진영 잠룡들이 대거 낙선해 체면을 구긴 것과 달리, 보수 진영 차기 주자들은 극적인 승리를 연출하면서 대권을 향할 기틀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지선 광역단체장 선거 중 당선자 윤곽이 가장 늦게 드러난 곳은 서울시장 선거다. 서울시장 선거는 지난 3일 저녁 개표 시작 이래 시종일관 정원오 민주당 후보가 앞서가다가 이날 오전 7시가 넘어서야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역전, 승리했다.
당초 오세훈 당선인에게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가시밭길 그 자체였다. 선거 직전까지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60% 안팎으로 고공 행진하는 가운데 국민의힘 장동혁 지도부가 중도층을 포섭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사실상 홀로 선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러 악재를 극복하고 '5선 서울시장' 고지에 오르면서 오 당선인의 정치적 체급도 한 단계 높아졌다는 평가다. 특히 국민의힘이 이번 지선에서 전반적으로 밀리는 와중에 개인기로 서울 수성에 성공한 점과 명심(이재명 대통령 의중) 후보로 불렸던 정원오 후보를 꺾은 점은 보수 진영 내 오 당선인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생환한 한동훈 당선인의 정치적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는 평가다. 한 당선인은 당초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 3사가 전날 오후 6시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에서 41.6%로 하 후보(42.6%)에게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자정을 넘겨 맹추격에 나선 끝에 하정우 민주당 후보에게 역전승을 일궈냈다.
한 당선인은 윤석열 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을 지내는 등 윤석열 정부의 '황태자'로 불렸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를 기점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이후 당내 친윤석열(친윤)계의 거친 견제에 시달렸다. 이후 한 당선인은 '당원 게시판 사태'를 빌미로 장동혁 대표 체제의 국민의힘에서 제명당하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이번 북갑 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거대 양당 후보와 3파전을 치르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 여의도 입성에 성공하면서 완전한 정치적 재기를 이루게 됐다. 한 국민의힘 인사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국민의힘 지도부가 중도층을 소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말 어려운 선거를 이겨낸 오세훈·한동훈 당선인의 체급은 명실상부 대선주자급"이라며 "향후 보수 재건과 결집의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진보 진영은 향후 대권 주자 반열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후보 상당수가 낙선하면서 비상등이 켜졌다. 보수 진영 인사들이 이번 지선에서 극적인 승리로 존재감을 드러낸 것과 비교되면서다. 민주당 내에선 명심을 업고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된 정원오 전 서울 성동구청장과 각각 대구시장과 경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했던 김부겸 전 국무총리, 김경수 전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이 전부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특히 범여권 차기 주자로 꾸준히 언급돼 온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는 경기 평택을에서 치러진 '3자 구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3위까지 밀리며 치명상을 입게 됐다. 국회 입성에 실패한 조 전 대표는 자신은 물론 몸담은 혁신당의 가치 또한 키우지 못하면서 향후 진보 진영 내 차기 경쟁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거란 관측이 나온다.
한 정치권 인사는 통화에서 "아직 이 대통령 임기가 4년이나 남아 있어 차기 권력을 논하기엔 시기상조인 측면이 있다"면서도 "보수 진영 인사들만 체급을 키워가는 상황은 진보 진영으로선 달가운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이재명 정부가 5년 임기 동안 좋은 성과를 내도 대선에서의 '인물 바람'은 무시할 수 없다"며 "진보 진영에서도 이번 선거 이후 차기 주자 육성에 대한 고민이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