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이은호로 시작해 황동만이 됐다가 이제는 서영철로 불리고 있다. 다작과 함께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맘껏 발산하며 대단한 기세를 보여주고 있는 구교환이 올해 선보인 또 다른 이름들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것마다 화제를 모으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 누구보다 자신의 작품을 사랑하는 최상의 직업 만족도로 식지 않는 열정을 불태운 덕분이다.
'군체'(감독 연상호)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구교환은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개봉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 그는 "많은 관객과 재밌는 이야기를 공유하는 게 목적이었는데 새로운 좀비들과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좋아해 주셔서 하루하루를 즐기고 있다"는 흥행 소감으로 말문을 열었다.
제79회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공식 초청된 후 5월 21일 스크린에 걸린 '군체'는 정체불명의 감염 사태로 봉쇄된 건물 안에서 고립된 생존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진화하는 감염자들에 맞서 벌이는 사투를 그린 작품으로, 개봉 10일 만에 관객 수 300만 명을 돌파하며 적수 없는 흥행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서영철은 과거 바이오 기업에 근무했던 천재 생물학자이자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갈망하며 둥우리빌딩에 전염성 강한 생물학적 테러를 하는 인물이다. 이를 연기한 구교환은 9:1 가르마에 딱 붙는 머리를 하고 안경을 쓴 채 등장하면서 왠지 모르게 엮이고 싶지 않은 느낌을 안겨주고, 이후 냉철함과 광기를 오가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메인 빌런으로서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첫 장면을 찍기 전에 포마드 제품을 바르면서 빗질하고 싶다는 말을 농담처럼 던졌는데 연출팀이 준비해 주셔서 탄생한 비주얼이에요. 그때 농담하지 말자고 다짐했어요(웃음). 이번에는 배우도 현장에서 체험하기 전까지는 규모와 능력을 알 수 없었어요. 후반부에 서영철이 위풍당당하게 걸어가는 자연도 감염자들과 함께했기에 압도되잖아요. 여러 면에서 서영철의 위력은 프로덕션의 힘으로 완성됐어요."
앞서 여러 좀비물을 선보였던 연상호 감독은 '군체'를 통해 빛과 소리에만 반응했던 이전의 좀비들과 차원이 다른 공격성을 장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내제된, 서로 정보를 교류하는 집단 지성의 힘을 지닌 새로운 종(種)으로 차별화를 꾀하며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 가운데 감염자들의 우두머리가 된 구교환은 연 감독이 원하는 명확한 시그니처 동작들과 함께 동공과 얼굴 근육을 섬세하게 컨트롤하며 감염자들과 교류하는 인물의 신선한 설정을 완벽하게 납득시킨다. 또한 그는 비릿한 미소와 속내를 알 수 없는 눈빛, 독특한 톤 등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긴장감을 러닝타임 내내 유발한다.
이렇게 자신의 활약에 대한 칭찬이 끊이질 않자 "서영철을 혼자 표현하지 않았다"는 반응을 보인 구교환은 "100명의 서영철과 함께 연기했다. 감염자들의 몸짓과 연기를 보고 영향받았고 제 연기를 그들에게 먼저 보여주면서 진짜로 연결돼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함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겸손이 아니라 진심이다. 너무 좋았다"고 이번에 느낀 새로운 연기 방식에 만족감을 표했다.
그렇다면 메인 빌런으로서 존재한 서영철에게 다가가는 과정은 어땠을까. 이와 관련해 구교환은 인물의 서사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보다 그의 대척점에 서 있는, 생존자들의 리더로서 활약한 권세정(전지현 분)의 입장에서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를 바라보며 연기했다고 예상치 못한 답변을 꺼내 궁금증을 안겼다.
"저는 빌런을 연기할 때 캐릭터를 이해하지 않아요. 그 인물을 보호하는 것처럼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번에도 권세정을 연기한다는 마음으로 어떻게 하면 그가 더 짜증 나고 몰입할 수 있을까를 더 고민했어요. '서영철을 패고 싶다'는 관객들의 리뷰를 보면서 성공했다고 생각했죠."
'반도'부터 '기생수: 더 그레이'와 '괴이'에 이어 '군체'까지, 구교환과 네 번이나 호흡한 연 감독은 <더팩트>와 만나 "비범한 역할이 잘 어울리고 패러다임을 바꾼 배우"라고 극찬한 바 있다. 이를 들은 구교환은 "패러다임을 바꾸려고 무언가를 연기하는 건 아니다. 거대한 꿈과 뜻도 없다. 제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캐릭터를 표현하는 게 재밌고 이걸 계속하고 싶어서 하는 거다. 이 재미가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구교환에게 연 감독은 어떤 사람일까. 그는 "감독님은 이야기를 재밌게 펼쳐내면서도 시대를 담는 질문을 한다. 재밌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관객들이 서로 질문을 던질 수 있게 한다. 그렇지만 가르치려고는 하지 않는다.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의 태도가 좋다. 연출자이자 감독 지망생으로서 닮고 싶고 질투도 난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2021년에 공개된 넷플릭스 '킹덤: 아신전'에 함께 이름을 올렸지만 작품에서 대사를 주고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던 전지현도 잊지 않고 언급했다. 그는 "쿵짝이라는 단어가 있다. 아이디어는 결코 혼자 나오지 않는다. 선배가 하나 던지면 저도 던지면서 완성되는 것"이라고 스크린 밖에서도 남다른 친분을 이어올 수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독립영화계 아이돌'로 불렸던 구교환은 '반도'를 시작으로 상업영화에 꾸준히 몸담았고 독특한 톤과 소년미로 유니크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작품에 생생함을 불어넣으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구축했다. 이어 지난해 마지막 날 개봉한 '만약에 우리'를 시작으로 지난달 24일 종영한 JTBC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 이어 '군체'까지 상반기에만 세 편을 연달아 선보이며 열일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야말로 '구교환의 시대'가 온 것이 아니냐는 반응에 "그건 조금 과하고 대중과 조금 더 친해지고 있는 과정"이라고 겸손함을 드러낸 그는 "론칭 시기가 겹쳐 보여서 그런 거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도 공백기가 있었다. 뭐를 살짝만 해도 티가 많이 나는 게 제 장점"이라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꾸준히 감독들의 선택과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를 스스로 들여다봤다.
"우선 저는 해석을 잘하고 피드백을 잘 수용해요. 디렉션이 잘 꽂히는 배우죠. 이번에도 서영철이 무릎을 꿇고 앉아서 우는 장면이 있는데 처음에는 울고 끝났는데 감독님이 그러데이션으로 미소를 지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바로 알겠다고 하고 찍었어요. 질문도 안 해요. 서비스가 좋아서 감독님들의 만족도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누구보다 제 작품을 사랑해요. 언제나 제 작품의 1호 팬이죠."
구교환의 열일은 한동안 계속된다. 이미 촬영을 끝낸 '폭설' '왕을 찾아서' '부활남'이 개봉 예정이고 '정원사들'을 열심히 촬영 중이다. 이와 함께 감독으로서의 욕구와 야망도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그는 "'너의 나라' 후반작업을 끝내고 공개할 예정이고 이옥섭 감독님의 단독 연출작 '사랑의 카운셀러'를 어떤 방식으로든 참여할 예정이다. 조금만 관심을 주시면 여러분께 창작자로서 보여드릴 수 있알 것 같다"고 귀띔했다.
넓은 취향 스펙트럼으로 대중문화예술을 사랑하며 늘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는 구교환이다. 그는 "'군체'를 보고 다양한 감상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모두가 힘을 합쳐서 만든 영화인데 하나의 감상으로 끝나지 않아서 영광"이라며 "지금의 시대를 장르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친절하면서도 관객들이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다"고 매력 포인트를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