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클로즈업] 트롯오디션 공화국, 스타 넘치는데 무대는 '증발'


남의 히트곡 아닌 자기 노래 있어야 "진짜 스타로 살아남는다"
비슷한 포맷 반복 속 신인 홍수…기성가수 설자리 점점 좁아져

올 하반기에도 방송가는 또다른 트롯 오디션을 준비 중이다. 트롯 오디션은 이미 검증된 흥행 카드이고, 제작비 대비 화제성과 시청률, 팬덤 결집력까지 보장되는 구조라 방송사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AI 이미지

[더팩트ㅣ강일홍 기자] 올 하반기에도 방송가에는 또다시 새로운 트롯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트롯 오디션은 이미 검증된 흥행 카드다. 제작비 대비 화제성과 시청률, 팬덤 결집력까지 보장되는 구조라 방송사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한 방송 관계자는 "트롯 오디션은 이미 깔린 돗자리와 멍석 위에서 장사하는 격"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방송사 입장에서는 안전한 콘텐츠라는 의미다.

그런데 그 안전함의 이면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비슷한 포맷의 반복, 지나친 신예 공급, 기성 가수들의 입지 축소, 그리고 오디션 시스템 자체가 만들어낸 기형적 생태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물론 긍정적 기능도 있었다. 침체됐던 트롯 시장을 되살렸고, 젊은 세대에게 트롯을 다시 소비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실제로 7~8년 전만 해도 트롯은 중장년층 전유물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10대, 20대 팬덤까지 형성될 정도로 외연이 확장됐다. 새로운 스타도 탄생했다. 세대교체 역시 자연스러운 시대 흐름이다.

문제는 '적정선'을 넘어섰다는 데 있다. 매년 수십명의 신예들이 오디션을 통해 쏟아지면서 가요계 균형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지금 현장은 마치 시소의 균형이 완전히 한쪽으로 무너진 모습과 닮았다. 신인들은 팬덤과 화제성을 업고 구름 위에 떠 있는데, 한번 무너진 선배 가수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일어설 틈조차 없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몇몇 레전드급 스타를 제외한 중견·기성 가수들의 설 자리는 급격히 좁아졌다. 방송 출연은 물론이고 지역 행사 무대까지 오디션 출신 신예들이 빠르게 잠식했다.

안타깝게도 장기간에 걸친 트롯 오디션 시리즈의 반복은 비슷한 포맷 남발, 지나친 신예 공급, 기성 가수들의 입지 축소, 그리고 오디션 시스템 자체가 트롯 본질을 흐린다는 기형적 생태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AI 이미지

◆ 팬덤·화제성에 밀린 음악성, '트롯 본질 흐려진다'는 우려 커져

행사 관계자들은 '인지도와 팬덤 보장' 이유로 오디션 출신 신인스타를 먼저 찾는다. 지자체 행사나 지역축제를 찾는 지역 주민들이 TV를 통해 익숙한 얼굴을 선호한다는 이유다. 그런데 정작 그들 중 상당수는 자기 히트곡 하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의 히트곡을 경연 무대에서 재해석하며 얻은 인지도로 시장을 장악하고, 정작 그 히트곡을 낸 기성 가수들은 외면당하는 기현상이 벌어진 셈이다.

오디션은 스타 탄생의 등용문이고, 새로운 얼굴과 뉴스타의 등장은 가요계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비정상적으로 많은 신인이 한꺼번에 공급되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콘텐츠 소비 속도는 빠른데 스타의 생명력은 짧아지고, 음악 자체보다 팬덤 경쟁과 화제성만 남는 왜곡과 불균형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는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건 트로트 장르의 본질 자체가 희미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 트롯은 단순히 고음을 뽐내는 장르가 아니다. 오랜 시간 시대의 사다리를 이어온 삶의 결, 인생의 체취, 세월의 깊이가 스며드는 음악이다. 긴 무명시절과 굴곡을 견디며 자신만의 색깔을 만든 선배 가수들의 무게감은 단기간 오디션 스타가 쉽게 뛰어넘을 수 없는 영역이다.

트롯 오디션은 동일하거나 유사한 구조의 오디션이 6년째 반복되면서 시청자들은 더 이상 새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TV조선 트롯 오디션프로그램 미스트롯4의 한 장면. /TV조선

◆ 심사위원 선배들 "진짜 평가보다 좋은 말 해주는 역할 전락" 토로

그런데 지금 방송가에서는 '잘 부르는 기술'이 모든 걸 대체하는 분위기다. 성량과 바이브레이션, 눈물 나는 사연, 극적인 편집이 반복되며 감동의 공식까지 획일화됐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또 울리고 또 감탄하는 비슷한 장면의 반복"이라는 피로감이 커지는 이유다. 회를 거듭할수록 동력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결코 빈말이 아니다.

실제로 최근 트롯 오디션은 프로그램 제목만 다를 뿐 구성은 거의 판박이다. 지역 예선, 눈물의 가족사, 심사위원 기립박수, 마스터 오열, 국민 문자투표까지 복사한 듯 이어진다. 처음엔 신선했지만 반복이 길어질수록 식상함은 피할 수 없다. 어느 순간부터는 참가자보다 심사위원 리액션이 더 화제가 되는 웃지 못할 장면도 벌어진다.

그 중심에 선 이들이 바로 선배 가수들이다. 초창기만 해도 선배들의 심사는 후배 사랑과 응원이라는 의미가 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일부 가수들은 "이제는 진짜 평가보다 좋은 말 해주는 역할이 돼버렸다"고 토로한다. 괜히 혹평했다가 거대한 팬덤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심사위원석에 앉아본 가수들 사이에서는 "일단 나가면 소름 돋는다고 말해야 하고, 무조건 잘한다고 리액션 해야 하는 분위기가 불편하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후배를 위한 조언보다 '좋은 사람'으로 비쳐야 하는 현실에 자존심이 상한다는 속내도 있다. 일부 선배 가수들 중에는 "이렇게까지 오래 갈 줄 몰랐다"는 푸념과 함께 오디션 출연 자체를 꺼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요무대가 최근 트롯 오디션 출신 라이징스타 중심 출연자들로 채워지면서 방향을 잃었다는 지적받고 있다. 가요무대는 오랜 세월 한국 가요사의 정통성과 품격을 지켜온 상징적 프로그램이지만 최근에는 오디션 출신 신예들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졌다는 지적을 받는다. /KBS1 가요무대

◆ 전통 프로그램 KBS '가요무대' 마저 대세 흐름에 편승 '중심 흔들'

더 안타까운 건 중심을 잡아야 할 전통 음악 프로그램들마저 대세 흐름에 휩쓸리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KBS '가요무대'다. 오랜 세월 한국 가요사의 정통성과 품격을 지켜온 상징적 프로그램이지만 최근에는 오디션 출신 신예들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졌다는 지적을 받는다. 물론 시대 흐름을 반영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가요무대'마저 화제성과 팬덤 중심으로 흘러간다면 누가 기성 가수들의 무대를 지켜줄 것인가.

수십 년간 한 우물을 파며 자신만의 노래 세계를 구축한 가수들과 오디션을 통해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신예들은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 남의 히트곡을 부르며 주목받는 것과 자신의 히트곡으로 세월을 견디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노래가 있는 가수가 살아남는다. 오디션 우승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진정한 대곡의 가치는 결국 자기 노래를 통해 완성된다.

트롯 오디션은 한국 대중문화의 흐름을 바꿔놓은 거대한 현상이다. 다만 어떤 산업이든 과열은 부작용을 낳게 마련이다. 지금 방송가에 필요한 건 또 하나의 비슷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라, 신인과 기성 세대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를 만드는 고민이다. 새 얼굴을 키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오랜 시간 무대를 지켜온 가수들의 자리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트롯의 진짜 힘은 반짝 인기몰이가 아니라 세대를 잇는 정서와 공감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결코 망각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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