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뛰어든 이유가 명확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이의 마음을 울릴 다정한 위로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냐 삼촌'을 만난 이서진과 고아성은 뜨거운 연기 열정과 생생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잊지 못할 순간을 통과하고 있다.
'바냐 삼촌'을 이끌고 있는 이서진과 고아성은 지난 13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각각 바냐와 소냐로서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두 사람은 연극 무대에 도전한 소감부터 작품의 매력까지 전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꺼냈다.
1899년 초연된 후 지금까지도 세계 무대에서 꾸준히 공연되는 안톤 체호프의 대표작인 '바냐 삼촌'은 평생을 삶의 터전과 가족 그 안의 질서에 헌신해 온 바냐와 소냐를 비롯해 어느 순간 일상의 궤도를 벗어나며 삶 전체가 흔들리는 평범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지난 7일부터 무대에 오르고 있는 이서진은 "계속 긴장 상태인데 관객들이 호응을 잘 해줘서 힘이 난다. 할 때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고아성은 "다 찍어놓은 작품이 공개될 때까지 조마조마하면서 기다리는 게 익숙한데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제 연기를 보여드리니까 너무 새롭다"고 소회를 밝혔다.
1999년 SBS '파도위의 집'으로 데뷔한 이서진은 삶에 불만과 회의를 토해내면서도 가족에 대한 애정과 꿈과 관련된 순정을 간직한 바냐 역을, 1995년 아기모델로 시작한 고아성은 바냐와 함께 삶의 터전을 지키며 다음 세대를 향해 나아가는 소냐 역을 맡아 삼촌과 조카로 연기 호흡을 맞추며 무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만 활동했던 이서진에게 첫 연극 무대는 많이 낯설고 큰 부담감이 따라오는 곳일 거라고 예상됐다. 그렇기에 그가 '바냐 삼촌'을 택한 이유가 더욱 궁금했다.
자신과 닮은 바냐를 보며 고전의 힘을 제대로 느꼈다는 그는 "대본을 읽었는데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 같았다. 100년도 전에 쓰인 고전인데 요즘 시대와도 잘 맞아떨어지는 걸 보면서 이런 고전에서 현대극이 만들어진다는 걸 깨달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건 똑같더라. 저도 나름 가족을 책임지려는 점에서 바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원작은 19세기 러시아의 시골 영지를 배경으로 하지만 공연은 특정 시대나 장소에 갇히지 않는다. 첫 대극장 연출을 맡은 손상규 연출가는 안톤 체호프의 텍스트에 오늘날의 감정과 언어를 불어넣고 곳곳에 유머 코드도 녹여내면서 무겁고 진지하지 않은 전개로 관객들이 지금 우리의 이야기로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연극 중에서 안톤 체호프의 작품이 가장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 이유가 극적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고 인물들의 사소한 관계성이나 감정만을 극대화해서 표현해야 되기 때문이라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흘러갈 수 있는 대사들도 연출님이 다 잡아주셔서 사이즈를 크게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고아성)
배우 출신인 손상규 연출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캐릭터를 구축한 고아성이다. 당초 성숙하고 차분한 인물로 설정했었으나 보다 더 활기찬 소녀로 존재하길 바라는 연출가의 의도를 듣고 분주하고 에너제틱한 소냐로 발전시켰다고.
그러면서 첫 연극 무대를 통해 몸소 느끼고 있는 변화를 언급했다. 고아성은 "이번 작품에서 습득한 걸 다음 작품에서 종종 발견하는데 지금 찍고 있는 드라마에서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카메라 앞에서 저도 모르게 크게 목소리를 내고 행동도 사이즈를 크게 하고 있더라. 벌써 몸에 베였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웃어 보였다.
그런가 하면 이서진은 처음부터 자신의 호흡과 말투로 출발해 지금의 바냐를 완성했단다. 이는 공연을 본 관객들이 대부분 그동안 여러 예능프로그램에서 자주 봐왔던 그와 무대 위의 바냐가 많이 닮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지점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물에는 적극적으로 호응해 준 손상규 연출의 응원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준비 과정을 떠올린 이서진은 "제 방식대로 대사를 읽었는데 연출이 좋아하더라. 그게 큰 힘이 됐다. 또 연습하면서 배우들과 연출이 토론을 정말 많이 했다. 인생에서 이렇게 토론을 많이 한 건 처음"이라며 "이번에 하면서 연기를 이렇게 열정적으로 할 때가 언제였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매일 연습하고 고민하고 토론한 적이 처음이었다"고 의미를 되새겼다.
앞서 그는 '바냐 삼촌' 제작발표회에서 준비 과정이 너무 힘들다면서 "마지막 작품이 될 것 같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렇다면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을까. 이에 이서진은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다. 관객들의 호응이 좋아서 그나마 위로가 된다. 이것마저 없었으면 사라졌을 거 같다. 준비 과정이 너무 매력적인데 힘들다. 마지막으로 남을 것 같다"고 강조해 웃음을 안겼다.
이를 들은 고아성은 "아직 5회차밖에 공연을 안 해서 우선 목표는 무사히 잘 마치는 거다. 또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나중에 판단해야 될 것 같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바냐 삼촌'은 오는 31일까지 전 배역 원 캐스트로 LG아트센터 서울, LG SIGNATURE 홀에서 공연된다. 관객들을 만난 날보다 만날 날이 조금 더 남은 이서진과 고아성은 손상규 연출의 시선으로 새롭게 풀어낸 작품만의 매력을 자신하며 많은 관람을 독려했다.
"원작은 따스한 위로가 아닌데 저희 '바냐 삼촌'은 다정함이 가미됐어요. 요즘 사람들에게 필요하지만 쉽게 말할 수 없는 게 다정함이라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고요. 소냐가 바냐에게 전하는 다정함을 관객들도 많이 느끼셨으면 좋겠어요."(고아성)
'우리의 삶은 무척이나 괴로웠지만 죽은 뒤에서야 알게 되겠지. 우리의 생이 사실은 얼마나 눈부셨는지'라고 바냐를 위로하는 소냐의 대사를 온몸으로 받고 있는 이서진도 "힘들고 괴로워도 결국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우리의 삶이다. 모두가 각자의 힘듦이 있겠지만 소냐에게 위로받고 일상으로 돌아와서 잘 살아야 한다는 힘을 받았으면 좋겠다. 아프지 않고 잘 끝내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