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이 글로벌 음악 시장의 중심으로 들어가면서 역사상 유례없는 호황기를 누리고 있지만, 어느 한편에서 보면 대형 기획사 '그들만의 잔치'다. 시장은 넓어졌지만 진입장벽은 더 높아졌고, 그 앞에서 중소 기획사는 점점 작아진다. 문제라는 게 아니라 K팝의 현 상황이 그렇다. 기적을 꿈꾸는 것조차 사치가 된 현실을 들여다 봤다. <편집자 주>
[더팩트 | 정병근 기자] 영화 '범죄도시'에서 위성락은 한 업소에 돈을 뜯으러 갔다가 줄 돈이 없다는 사장에게 "돈 없으면 죽어야지"란 말을 한다. 그 말은 마치 지금 K팝을 제작하는 중소 기획사들이 처한 현실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만큼 K팝 시장은 양극화가 극심하고 중소는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K팝은 세계 음악 시장을 이끄는 한 축이 됐다. 이제 트렌드를 쫓는 게 아니라 만들고 확산하는 역할까지 한다. 팬 플랫폼을 비롯한 여러 사업군에서 얻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자들의 취향을 파악하고 그 지점을 파고들어 제작을 한 뒤 광범위하게 확산시켜 더 큰 물결을 만들어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걸 선도하는 건 몇몇 거대 기획사다.
그 거대 기획사 역시 작은 회사에서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쌓은 노하우와 인프라 그리고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다. 차이가 있다면 시대다. 그때는 개척할 영역이 많았다면 지금은 이미 거대해진 기획사들이 빠르게 선점하고 또 그걸 바탕으로 계속해서 몸집을 불리는 구조가 됐다. 그 사에에 빈틈은 없다.
아이돌 그룹은 출발선부터 다르다. 대형 기획사는 팀의 가장 기본이 되는 멤버 구성부터 선택의 폭이 넓다. 실력 있고 비주얼이 괜찮은 연습생들은 대형 기획사의 문부터 두드린다. 그들 중 트레이닝과 경쟁을 거쳐 멤버를 선발하고 막대한 돈을 들여 앨범을 제작한다. 데뷔부터 콘텐츠 수와 규모가 많다. 질과 양으로 쏟아붓는다.
동시에 이미 구축해놓은 글로벌 플랫폼을 활용해 프로모션을 병행하고 곧바로 IP를 활용해 부가 사업을 한다. 자체적으로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서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 해외의 굵직한 무대에 세우는 등의 여러 프로모션으로 발빠르게 해외 팬을 끌어들인다. 동시다발적인 파상공세에 K팝 팬들 눈에 보이는 건 대형 기획사 팀들 뿐이다.
여러 아이돌 그룹을 정상급 반열에 올려놓은 경험이 있는 제작자 C 씨는 "재료비가 1만 원 들어간 음식 1과 5만 원 들어간 음식 5가 있다. 비슷한 가격이라면 뭘 사먹겠나"라고 물으며 "심지어 5는 여기저기서 많이 보이는 프랜차이즈에서, 1은 잘 모르는 음식점에서 판다고 생각해 봐라. 지금 K팝 제작 현실은 이보다 더 크다"라고 말했다.
연습생 선발과 유지 비용을 차치하고 앨범 제작 단계부터만 해도 돈 들어갈 곳이 많다. 앨범에 들어가는 건 크게 곡 수급과 녹음(믹스 마스터 포함) 그리고 앨범 디자인과 인쇄 등이 있고 퍼포먼스를 위한 안무 비용이 들어간다. 더불어 뮤직비디오와 화보 촬영 등 여러 관련 콘텐츠가 있다. 이 과정들에 헤어 메이크업 의상이 추가된다.
제작 비용은 회사마다 그리고 팀마다 천차만별이다. 미니 앨범 기준으로 중소는 10억 원 내외로 쓰는 경우가 많고 대형 기획사는 최소 50억 이상을 쓴다. 그 과정에서 활용되는 인력과 인프라 차이도 크다. 한 신인 보이그룹은 데뷔 앨범 제작과 약 2주간의 활동까지 약 80억 원을 쓴 것으로 전해졌다. 해외 마케팅은 제외하고다.
뮤직비디오를 비롯한 홍보 콘텐츠 제작비 비중이 커졌다. 중소는 뮤직비디오 한 편에 2~3억 정도를 쓰면 많이 쓰는 편이지만, 대형 기획사는 편당 15억 이상을 어렵지 않게 쓴다. 대형 기획사는 그 수도 2~3편에 이른다. 과거엔 뮤직비디오 영상을 활용했던 티저 영상도 대형은 아예 별도의 콘텐츠로 분류해 따로 제작한다.
마케팅 단계에 접어들면 규모의 차이는 더 벌어진다. 이 비용은 그야말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천지차이다. 과거 방송 채널에 의존했던 홍보 툴이 여러 소셜 미디어와 영상 플랫폼으로 다양해지면서 돈을 써야 할 곳도 많아졌다. 안 할 수도 없다. 여러 관계자들은 "돈을 쓰면 효과가 바로 나타난다. 금액의 차이일 뿐 다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보이그룹을 론칭한 기획사 D는 마케팅 비용으로만 약 5억 원을 썼다. 중소 기획사에선 최고 수준이다. 물론 덜 쓸 수도 있지만, 그 이하로 썼을 때의 기대 효과는 무의미한 수준이라 판단했다. 당시엔 큰 마음을 먹은 거지만 지나고 보니 더 써야 했나 후회한다. 누군가 그보다 더 쓰면 양에서 밀리고 노출도는 떨어지기 때문이다.
몇몇 대형 기획사는 앨범 한 장의 마케팅 비용으로만 20억 원 이상을 쏟는다. 모든 플랫폼에서 더 자주 더 많이 보일 수밖에 없다. 쇼츠 배경 음악으로 자주 노출되면 화제성이 높아지고 그게 음반 및 음원 성적으로 연결된다. 그렇다 보니 곡을 제작할 때 아예 챌린지와 쇼츠로 활용할 만한 구간을 넣는다. 그리고 마케팅으로 공세를 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렇게 모든 구간에서 차이가 벌어진 결과는 보이그룹의 경우 매 앨범 100만 장 이상을 팔아치우는 최상위 몇몇 팀과 10만 장을 밑도는 대부분의 팀이다. 30~50만 장을 전후하는 팀도 몇 있지만 그들 대부분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다. 예외는 버추얼 보이그룹 플레이브, 마지막 중소의 기적 에이티즈 정도다.
모든 그룹이 수십 억의 비용을 들이고 수십만 장의 앨범을 팔면서 전 세계를 종횡무진 누벼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비용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고 그만큼 퀄리티가 떨어져 최소한의 경쟁력도 유지할 수 없다. 여기에 마케팅을 하지 않으면 노출도 안돼 아예 외면 받는다. 적게 쓰고 적게 버는 구조는 성립하지 않는다.
중소 중에서 꽤 큰 규모의 기획사 대표 E 씨는 "음반이 10~20만 장 나가도 남는 돈은 없다. 제작부터 활동비까지 엄청 늘었다. 오죽하면 돈 벌어서 남 좋은 일만 시킨다고 하겠나"라며 "결국 해외로 나가야 하는데 그 루트도 대형 기획사가 잡고 있다. 장기 플랜으로 현지에서 직접 부딪히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도 시간과 돈 문제"라고 말했다.
국가에서 중소 기획사를 지원하는 사업이 있긴 하다. 콘텐츠진흥원은 최근 K팝 제작사 10곳을 선발해 약 3억 원씩을 지원했다. 치열한 경쟁 끝에 선발된 한 기획사 관계자 F 씨는 "요즘 유통사에서 선급금이 확 줄어들어 3억 정도 투자 받기가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이 금액이면 정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문제는 그렇게 제작한 앨범이 어느 정도 잘 되더라도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 그러한 지원금은 물론 당장 큰 도움이 되겠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고 그런 과정의 반복은 성장이 아닌 연명이다.
아이돌로 대표되는 K팝도 하나의 산업이고 어느 산업군이건 큰 회사와 작은 회사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국가가 발벗고 나서서 중소기업을 살리려고 하는 건 다양성과 역동성을 높여 산업 기반을 더 탄탄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심지어 K팝은 경제 논리로만 다룰 수 없는 '문화'의 영역이다. 중소 기획사의 위기를 결코 가볍게 받아들여선 안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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