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씨네리뷰] '군체', 연상호 감독이 진화한 좀비로 인간에게 남기는 질문


집단지성으로 진화하는 좀비들과 이에 맞서는 생존자들
'11년 만의 스크린 복귀' 전지현부터 구교환·지창욱의 믿고 보는 열연

지난 21일 개봉한 군체는 정체불명의 감염 사태로 봉쇄된 건물 안에서 고립된 생존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진화하는 감염자들에 맞서 벌이는 사투를 그린 영화다. /쇼박스

[더팩트|박지윤 기자] 연상호 감독의 좀비물, 익숙한 맛을 볼 수는 있지만 신선한 재미를 느끼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러한 예상을 완벽하게 깨부수며 새로운 시각적 비주얼과 매력적인 설정을 장착하고 돌아왔다. 대체 불가한 캐스팅 라인업을 구축하고 좀비와 세계관을 한 번 더 진화시킨 '군체'다.

지난 21일 스크린에 걸린 '군체'(감독 연상호)는 정체불명의 감염 사태로 봉쇄된 건물 안에서 고립된 생존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진화하는 감염자들에 맞서 벌이는 사투를 그린 영화다.

작품은 둥우리빌딩에 전염성 강한 생물학적 테러를 할 거라고 서울경찰청에 미리 알리는 서영철(구교환 분)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천재 생물학자로 이름을 알렸던 그는 어떠한 이유로 그곳에서 콘퍼런스를 개최한 바이오 기업 대표의 목에 바이러스를 주사하면서 정체불명의 집단 감염 사태를 일으키고 건물은 순식간에 봉쇄된다.

그렇게 전남편 한규성(고수 분)의 제안으로 콘퍼런스에 참석한 생명공학자 권세정(전지현 분)부터 보안팀 직원 최현석(지창욱 분)과 그를 만나러 온 누나 최현희(김신록 분) 등은 그대로 둥우리빌딩에 고립된다. 이들은 최초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말을 듣고 자신의 몸에 백신을 주입했다고 주장하는 서영철을 찾아 구조대가 기다리는 옥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좀비 집단과 싸우며 고군분투한다.

군체는 암살 이후 11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는 전지현을 필두로 구교환 지창욱 신현빈 김신록 등으로 대체 불가한 캐스팅 라인업을 구축해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다. 또한 작품은 제79회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돼 전 세계 관객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쇼박스

'군체'는 '부산행'으로 한국형 좀비 장르물의 이정표를 세우고 넷플릭스 '지옥'으로 디스토피아 세계의 정점을 보여준 연상호 감독의 신작이자, 전지현이 '암살'(2015) 이후 11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는 작품으로 제작 단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다. 여기에 구교환 지창욱 신현빈 김신록 등도 합류해 기대감을 높였고, 제79회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돼 호평을 받고 돌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국내에서 베일을 벗은 '군체'는 시작부터 그동안 좀비물에서 많이 봐왔던 흐름을 보여주며 익숙한 문법을 그대로 따른다. 다만 이는 초반까지다. 짐승처럼 네 발로 무섭게 달려들던 감염자들은 점점 진화하며 두 발로 걷기 시작하고 사람을 식별하며 무리를 지어 생존자들을 공격하는, 기존의 좀비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종(種)의 등장을 알린다.

빛과 소리에만 반응했던 이전의 좀비들과 차원이 다른 공격성을 장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내제된, 서로가 정보를 교류하는 집단 지성의 힘을 지닌 것. 메인 빌런인 서영철과도 정보를 주고받으며 무서운 속도로 업데이트되는 좀비들은 문자를 읽고 목소리를 내뱉기까지 하며 인간의 예측을 뛰어넘고 무서운 속도로 진화하며 신선한 긴장감과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 과정에서 같은 자세로 정보를 받는 모습부터 잘 짜인 군무 같으면서도 기괴하고 독특한 무브먼트와 서로 뭉쳐 하나의 벽이 돼 공간을 막는 등 신선한 비주얼을 왜 연상호 감독이 '좀비 마스터'로 불리는지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부분이다.

물론 계속 정보를 업데이트하면서 단체로 같은 행동을 하는 좀비들의 설정이 익숙해지거나 이들이 집단지성을 만드는 근본적인 원리에 의문을 가지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때 작품에 또 다른 재미를 불어넣는 건 33층의 고층빌딩을 함께 위아래로 오가면서도 결국 각자의 생존만을 좇은 인간들의 현실적인 갈등과 이를 연기한 배우들의 활약이다.

연상호 감독은 빛과 소리에만 반응했던 이전의 좀비들과 차원이 다른 공격성을 장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내제된, 서로가 정보를 교류하는 집단 지성의 힘을 지닌 진화된 좀비들로 전작들과 차별화된 재미를 장착했다. /쇼박스

11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전지현은 여전히 전지현이었다. 행동과 진화 패턴을 읽어내 어떻게든 생존자들을 이끌고 탈출하기 위해 애쓰는 권세정이 된 그는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관객들이 함께 위기 상황에 놓인 것처럼 영화에 빠져들게 만든다. 교수인 만큼 적극적이고 화려한 액션신을 볼 수는 없었으나 타고난 피지컬을 활용한 현실적인 몸짓만으로 충분히 보는 이들의 시선을 붙잡고 리얼리티도 살린다.

빌런이 된 구교환은 조금만 과장돼도 몰입을 방해하고 오그라들 수 있는 동공과 얼굴 근육 연기를 섬세하게 활용하며 감염자들과 교류하는 인물의 신선한 설정을 완벽하게 표현한다. 특히 비릿한 미소와 속내를 알 수 없는 눈빛, 독특한 톤 등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긴장감을 러닝타임 내내 유발하며 '반도' '기생수: 더 그레이' '괴이'에 이어 또 한 번 연상호 감독의 선택을 받은 이유를 오롯이 연기력으로 증명하는 구교환이다.

다리가 불편한 누나를 업고 쉴 새 없이 달리던 지창욱은 어떠한 상황을 겪으면서 급변하는 인물의 처절한 감정을 담은 채 식칼 하나만으로 좀비떼를 제압하는데 해당 액션 시퀀스에서 그야말로 날아다니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산한다. 자신보다 가족을 더 생각하는 지창욱과 김신록의 보편적인 감정은 둘의 열연에 힘입어 더 짙은 여운을 남긴다.

영화의 제목인 '군체'는 같은 종류의 개체가 많이 모여서 공통의 몸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를 좀비물로 풀어낸 연 감독은 초고속 정보 교류를 통해 집단의식이 중요해졌고 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AI(인공지능)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면서 인간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가운데 점점 무력해지고 있는 인간의 개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지금의 우리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압도적 스케일과 극강의 서스펜스도 놓치지 않으면서 말이다. 15세 이상 관람가이며 러닝타임은 122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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