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요즘 세계 남녀 골프 1인자들의 ‘비현실적 행보’가 눈길을 끈다.
LPGA투어에서는 넬리 코다(27·미국)가 출전 6개 대회 연속 TOP2(우승-준우승-준우승-준우승-우승-우승)라는 압도적 성적을 기록하며 투어를 지배하고 있다. 2001년 초반 아니카 소렌스탐의 흐름(준우승 2회 이후 4연승)에 비견될 만한 폭발력이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8월 지노 티띠꾼에게 내줬던 세계랭킹 1위 자리를 탈환했고 올해의 선수, 상금, CME 포인트, 평균타수, 다승 등 주요 지표 맨 위를 모두 자신의 이름으로 도배하고 있다. 2주 연속 우승 등으로 역시 역대급 시즌을 보내고 있는 김효주와도 격차가 느껴질 정도다.
#늦게 타오르는 세계랭킹 1위 셰플러...팬들은 탄식과 감탄
반면 PGA투어의 스코티 셰플러(29 미국)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비현실적’이다. 3년 가까이 세계랭킹 1위를 지키고 있는 그는, 팬들의 탄식과 감탄을 동시에 자아내는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목요일(1라운드)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진을 보이다가도, 주말이 되면 여지없이 ‘세계 1위의 위용’을 되찾는다. 지난해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물론 성적 자체는 여전히 눈부시다. 자신의 시즌 첫 출전 대회였던 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서 우승했고, 4일 끝난 캐딜락 챔피언십까지 최근 3개 대회 연속 준우승을 기록했다. 올 시즌 9개 대회에서 우승 1회, 준우승 3회, 3위와 4위 각각 한 차례 등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생애 통산 상금도 타이거 우즈, 로리 맥길로이에 이어 세 번째로 1억1천만 달러를 돌파했다. 때문에 그가 당대 최고의 골퍼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두 번째 대회였던 WM 피닉스오픈부터 시작된 ‘기이한 흐름’이 3개월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셰플러는 이 대회 2라운드에서 2오버파 73타를 기록하며, 지난해 6월 트래블러스 챔피언십 4라운드부터 이어온 29라운드 연속 언더파 행진을 멈췄다. 순위는 공동 89위.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성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2라운드와 최종 라운드에서 각각 6타와 7타를 줄이며 공동 3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곧바로 ‘제 모습’을 되찾은 셈이다.
문제는 이 같은 흐름이 일회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음 대회 AT&T 페블비치 프로암에서도 1라운드를 이븐파 72타로 시작한 뒤, 남은 사흘 동안 20타를 줄이며 공동 4위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6개 대회 중 5차례에서 1라운드 70대 타수를 기록하며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해 1~4라운드 평균타수 모두 1위...무결점의 지배자
지난해의 셰플러는 말 그대로 ‘무결점의 지배자’였다. 1라운드부터 최종 라운드까지 모두 평균타수 1위를 기록하며, 사실상 ‘와이어 투 와이어’에 가까운 지배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올해는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1라운드 평균타수는 70.33타로 69위에 머물러 있다. 2라운드에서 60대 타수(68.33타)로 반등해 상위권으로 올라서고, 3·4라운드는 똑같이 67.22타를 기록, 1위에 자리하고 있다. 목·금요일에는 평범한 투어 프로였다가, 주말이 되면 비로소 세계랭킹 1위의 경기력이 나타나는 셈이다.
최근 3연속 준우승 흐름은 이 패턴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는 1, 2라운드 70-74타로 30위권에 머물렀지만, 주말에 65-68타를 기록하며 단독 2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RBC Heritage에서는 68-67타로 무난하게 출발한 뒤, 주말 64-67타로 공동 선두까지 올라섰으나 연장전에서 맷 피츠패트릭에게 패했다. 가장 최근의 캐딜락 챔피언십에서는 1라운드 71타로 선두 캐머런 영에게 7타 뒤진 채 출발했지만, 이후 3일간 12타를 줄이며 추격했다. 그러나 격차를 완전히 좁히지는 못하고 6타 차 준우승에 머물렀다.
#목요일의 미스터리, '초반 부진, 후반 만회' 패턴 3개월째 지속
이쯤 되면 ‘목요일의 미스터리’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초반 부진, 후반 만회’라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크게 다음 세 가지 이유를 든다. 첫째, 셰플러는 코스 공략을 매우 전략적으로 하는 선수로, 초반에는 그린 스피드와 핀 위치에 적응하기 위해 신중한 운영을 택한다. 반면 코스 파악이 끝난 후반에는 자신의 스트라이킹 능력을 바탕으로 공격적으로 전환한다.
둘째, 상대적으로 약점으로 지적되는 퍼팅이다. 초반에는 거리감이 완전히 잡히지 않아 짧은 퍼트를 놓치는 경우가 있지만,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감각이 살아나며 아이언 샷과 결합해 큰 폭의 타수 감소로 이어진다. 셋째는 심리적 요인이다. 지난해 워낙 압도적인 성적을 거둔 만큼, 대회 초반에는 ‘반드시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작용할 수 있다. 반면 주말에는 추격자의 입장에서 보다 과감한 플레이가 가능해진다.
셰플러가 1승에 머무는 사이, 로리 맥길로이는 마스터스 2연패를 달성했고, 피츠패트릭은 3승, 캐머런 영과 크리스 고터럽은 각각 2승을 기록하며 세계랭킹 1위를 압박하고 있다. 그럼에도 셰플러는 여전히 주요 지표에서 선두를 유지하며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셰플러는 과연 흔들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일까.
현재까지의 흐름만 놓고 본다면 셰플러는 예전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지배하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가장 낮은 타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선수이며 지난해 까지 보여 주었던 지배력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목요일이 아닌 주말로, 초반이 아닌 후반으로 이동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 흐름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대회 초반에 퍼팅과 리듬이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 온다면, 그는 다시 ‘와이어 투 와이어’형 지배자로 돌아갈 것이며 그 가능성은 여전히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셰플러는 이번주에 열리는 시그니처 이벤트 트루이스트챔피언십은 건너 뛰고, 다음주 시즌 두번째 메이저대회인 PGA챔피언십에 디펜딩챔피언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