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에 비해 지난친 보상' PK, "이게 정말 공정입니까?" [이영규의 비욘더매치]


'한글 사과문' 부천FC 카즈의 눈물이 전한 메시지
기계적 판정에 가려진 승부의 낭만, 규정 적용 수위에 대한 유연한 고민 필요

지난 4월 21일 FC서울-부천FC전에서 전반 29분 부천 진영 페널티박스 외곽선상에서 수비를 하던 부천 미드필더 카즈의 손에 공이 닿고 있다./쿠팡플레이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상대 공격수를 막기 위해 긴박하게 사이드 스텝을 밟던 찰나, 야속하게도 공이 그의 손끝에 스쳤다. 박스 외곽 선상에서 발생한 이 접촉은 고의성도, 골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도 없었으나 심판은 냉정하게 페널티 마크를 찍었다.

부천 FC의 미드필더 카즈(29). 일본의 유망주에서 동남아와 유럽 변방을 거쳐 한국 땅을 밟은 이 이방인은 팀이 FC서울에 0-3으로 패한 지난 21일 밤, 서툰 한국어로 SNS에 사죄의 편지를 올렸다. "저의 실수로 경기를 망쳐버렸습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두 차례의 실수가 패배의 빌미가 되었지만, 특히 PK 반칙으로 첫 골을 헌납하며 경기 흐름이 기운 점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낯선 땅에서 매 순간 헌신해 온 선수가 기계적 판정 앞에 고개를 숙인 서글픈 순간이었다.

◆ PK는 '신의 선물'인가, 가혹한 ‘불행의 시작’일까

최근 K리그 현장에서는 플레이 도중 주심의 휘슬 소리만 들려도 팬들은 가슴이 철렁한다. 박스 안의 모든 움직임이 비디오 판독(VAR)의 현미경 아래 놓이고, 이것이 '신의 선물'이 될지 '불행의 시작'이 될지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빅버드에서 열린 K리그2 수원 삼성과 부산 아이파크의 빅매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2골씩을 서로 주고받으며 팽팽한 긴장을 선사했던 경기는 막판 추가시간에 나온 페널티킥으로 맥없이 승부가 갈렸다.

부산 수비수 우주성이 헤딩을 위해 솟구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 올라간 팔이 '부자연스러운 확대'로 해석된 것이다. 머리에 맞은 볼이 팔을 스쳤다는 이유로 진행된 온필드 리뷰. 찰나의 접촉이었고 골 상황도 아니었지만, 규정은 여지없이 페널티킥 중벌을 선언했다. 수원의 3-2 승리.

지난 2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2 수원삼성-부산아이파크전에서 후반 추간시간에 부산 수비수 우주성이 페널티박스에서 공중볼을 다투다 머리에 맞은 공이 솟구치는 과정에서 따라 올라간 팔에 스치자 주심이 온필드리뷰를 하고 있다./쿠팡플레이

◆ 심판이 '기계적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는 이유

팬들의 눈에는 현장의 상식과 동떨어진 결정처럼 보이나, 심판에게는 '규정의 엄격한 집행'일 뿐이다. 현재의 핸드볼 가이드라인은 심판의 주관이나 경기 맥락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규정된 체크리스트를 확인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팔이 몸에 붙어 있지 않고 옆이나 위로 뻗어 면적을 넓혔다고 판단되면 고의성과 상관없이 반칙이 선언되는 '부자연스러운 상태'가 핵심이다. 과거 육안에 의존하던 판정은 이제 VAR을 통해 미세한 각도까지 반복 확인하며 더욱 가혹해졌다. 골문으로 향하는 슈팅이든, 터치라인 밖으로 나가는 공이든 상관없다. 심판은 이제 '상식'이 아니라 '체크리스트'를 지워나가며 판정할 뿐이다. 수비수의 자연스러운 반작용조차 '위험을 감수한 동작'으로 간주되는 순간, 선수가 쏟은 90분의 서사는 기계적 판독 한 번에 무너진다.

2021년 일본 이바라키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축구 조별리그 B조 2차전 대한민국과 루마니아의 경기. 송범근의 실수로 간접 프리킥 위기을 맞은 대표팀./KFA

◆ 축구계 거물들이 제안하는 '박스 안 간접 프리킥'

이러한 '징벌의 수위'에 대한 비판은 전 세계적인 담론이다. 전설적인 스트라이커이자 FIFA 기술책임자였던 마르코 반 바스텐은 2017년 당시 독일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페널티킥이 파울의 수위에 비해 '지나치게 큰 보상'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박스 안 간접 프리킥이나 슛아웃 도입 등 징벌의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아르센 벵거 FIFA 글로벌 디렉터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지속적인 제도적 보완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규정 제정 기구인 국제축구평의회(International Football Association Board, IFAB)는 두 가지 이유로 망설인다. 첫째는 "골과 직결된 상황인가"를 판단할 때 심판의 주관적 개입이 늘어날 우려이며, 둘째는 수비수가 결정적 상황이 아닐 때 핸드볼을 악용할 가능성이다. 그러나 득점 기회를 완전히 방해한 게 아니라면 수비벽을 세우고 차는 '박스 안 간접 프리킥'이 훨씬 공평하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거세다.

중국 셴닝시 태권도 대표단 친선 대련 모습. /의왕시

◆ '발 펜싱'이 된 태권도의 교훈… 축구도 변화가 필요하다

기술 도입이 스포츠의 본질을 흐렸던 사례는 또 있다. 태권도는 판정 시비를 없애려 전자 호구를 도입했다가, 점수만 따기 위해 발만 툭툭 갖다 대는 '발 펜싱'으로 변질되며 역동성을 잃었다는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태권도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얼굴 공격과 회전 기술에 높은 배점을 주는 식으로 규칙을 개정해 박진감을 회복했다.

지금의 축구 역시 마찬가지다. VAR로 '정확함'은 얻었을지 모르나, '머리카락 오프사이드'로 정교한 팀플레이를 무효화하고 의도치 않은 핸드볼로 승부를 가르는 모습은 축구의 서사를 망가뜨리고 있다. "신체 일부만 겹쳐도 온사이드로 하자"는 벵거의 제안처럼, 이제는 기술이 앗아간 스포츠의 재미와 상식을 규칙 개정으로 되찾아와야 할 때가 됐다고 본다.

2023년 팀 K리그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AT마드리드)의 친선경기가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가운데 팔로세비치(오른쪽)가 페널티킥을 차고 있다./더팩트 DB

◆ 축구는 '기하학'이 아니라 '인문학'이다

축구에서 판정의 '정확성'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심판의 자의적 해석을 배제하고 기술의 힘을 빌려 공정함을 세우는 것은 스포츠의 근간을 지탱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기술의 정교함이 아니라, 그 정교함이 불러온 '징벌의 불균형'이다.

현미경 판정으로 찾아낸 아주 경미한 과실이 매번 승부의 절대적 변수인 페널티킥으로 직결되는 시스템은, 축구를 점차 상식의 영역에서 멀어지게 한다. 정확함이라는 명분이 경기의 낭만과 선수의 헌신을 압도하지 않도록, 이제는 규정의 적용 수위에 대한 유연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축구는 기록지 위의 숫자만 남는 게임이 아니라, 사람이 써 내려가는 드라마다. 우리는 차가운 판독 결과 그 자체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앗아간 '납득 가능한 서사'를 그리워한다. 카즈가 사죄의 편지를 쓰는 대신 팬들과 승리의 기쁨 혹은 패전의 아쉬움을 오롯이 나눌 수 있는 그라운드. 규정의 엄격함이 선수가 쏟은 땀방울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상식적인 무게감'이 흐르는 축구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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