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수민·서다빈 기자] 정치권이 선거철마다 '딥페이크(AI 기반 가짜 영상)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엄중 처벌을 외치고 있지만, 정작 실무를 담당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관련 예산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만 만들고 장비와 예산 지원은 외면하는 정치권의 이중성이 선거 공정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팩트>가 중앙선관위원회를 통해 입수한 '딥페이크 등 이용 선거운동 조치현황'에 따르면, 2026년 4월 23일 기준 딥페이크를 이용한 위법 게시물에 대한 삭제 요청 건수는 5355건에 달한다. 고발 1건, 경고 21건 등 사법·행정 조치도 잇따르고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일 90일 전인 지난 3월 5일을 기점으로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한 영상·사진 등 딥페이크 콘텐츠를 선거운동에 활용하는 행위가 전면 금지됐다. 규정 위반 시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상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늘어나는 위반 사례와 달리 대응 인프라는 처참한 수준이다. 취재 결과 2024년 1월 딥페이크 금지 규정이 시행된 이후 현재까지 선관위에 편성된 '딥페이크 전용 예산'은 사실상 제로(0)인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2024년은 규정 개정 직후라 편성 내역이 없다. 2025년은 원래 선거가 없는 해라 정규 예산에서 편성된 게 없다"며 "2026년도 역시 딥페이크 단속만을 위한 독립적인 예산은 사실상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현재 선관위는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공동 개발한 프로그램을 업무 협의를 통해 무상 지원받아 사용 중이다. 문제는 이 '무상 지원'이 영구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는 국가 사업으로 개발된 프로그램을 협의하에 무료로 사용하고 있지만, 라이선스 계약이 만료되면 유료로 전환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현재 '허위사실·비방 검토자문단 운영' 용도 예산에 기대 버티고 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1억2600만 원)와 제21대 대통령 선거(5400만 원),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9000만 원) 등 주요 선거에서 ‘검토 자문단’ 명목으로 편성된 예산 중 일부를 딥페이크 관련 자문비로 사용하는 셈이다.
이마저도 '딥페이크 전용'이 아닌 일반 허위사실 유포 단속 예산에 포함된 금액이다. 정치권은 선거철만 되면 ‘AI 조작 방지법’을 통과시켰다며 치적 홍보에 열을 올린다. 그러나 정작 법을 집행할 선관위의 손발이 묶여 있는 상황에는 침묵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모호한 판단 기준에 무력감을 호소하고 있다. 한 선관위 관계자는 <더팩트>에 "가장 힘든 건 기준이 매번 바뀐다는 점이다. 전에는 위법으로 단속했던 사례가 나중에는 중앙에서 '괜찮다'는 상반된 판단이 내려오기도 한다"라며 "판례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내부 기준에만 의존하다 보니 현장 대응에 혼선이 잦다"고 토로했다.
기술이 정교해지면서 단속 난이도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해당 관계자는 "요즘 딥페이크도 돈을 들인 만큼 정교해지는 시대다. 위반자들은 고성능 유료 버전을 써서 실물과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교묘한 영상을 만든다"라며 "위반자들은 돈을 써서 도망가는데, 단속 기관은 빈손인 상황에서 규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특히 후보자가 대거 출마하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캠프 내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한 수도권 캠프 관계자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선관위로부터 명확한 지침을 별도로 전달받은 바 없다. 말로만 처벌한다고 그러는데 실질적으로 잡아내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사실상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