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씨네리뷰] 제주를 기억한 '내 이름은', 염혜란 발끝의 묵직한 위로


제주 4·3 사건 조명한 작품…염혜란·신우빈 주연

배우 염혜란이 주연을 맡은 영화 내 이름은은 촌스러운 이름을 버리고 싶은 18세 소년과 그 이름을 지켜야만 하는 어머니 그리고 이름 뒤에 숨겨진 50년 전 약속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염혜란은 어머니 정순 역을 맡는다. /렛츠필름, 아우라픽처스

[더팩트 | 문채영 기자] 배우 염혜란의 강렬한 위로가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 직접적인 애도 대신 펼쳐지는 그의 몸짓, 표정, 대사들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물들인다. 잔잔함을 예상했다면 오산이다. 휘몰아치는 폭력의 한가운데에 선 이들의 이야기 '내 이름은'이다.

지난 15일 개봉한 '내 이름은'(감독 정지영)은 촌스러운 이름을 버리고 싶은 18세 소년 영옥(신우빈 분)과 그 이름을 지켜야만 하는 어머니 정순(염혜란 분)이 이름 뒤에 숨겨진 50년 전 그날의 약속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제7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섹션의 공식 초청작이다.

영화는 예순 가까운 나이의 정순이 드넓은 보리밭을 배경으로 춤사위를 펼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정순은 한 손에 스카프를 들고 손끝과 발끝에 감정을 실어 더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춤을 춘다.

1998년, 정순은 아들 영옥과 단둘이 살고 있다. 영옥은 나이 많은 정순에게 살가운 아들이지만 단 하나 예스러운 이름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꾸준히 개명을 꿈꿔온 그는 고등학생이 됐음에도 여전히 신청서를 엄마 정순에게 들이민다.

영화 내 이름은은 1940년대 후반, 제주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인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렛츠필름, 아우라픽처스

아들과 오순도순 살고 있는 정순에게는 크게 불편하지는 않지만 오래된 의문이 하나 있다. 9살 이전의 사라진 기억이다. 때문에 원인도 모른 채 빛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정순은 항상 선글라스를 구비하고 다닌다. 봄이 되면 그의 증상은 더 심각해진다.

꾸준히 약으로 병세를 다스려온 정순은 서울에서 새로 온 의사(김규리 분)를 만나 증상의 원인을 잃어버린 기억에서 찾기로 한다. 정순이 옛 기억을 되살릴 때, 아들 영옥은 서울에서 전학 온 경태(박지빈 분)을 만나 학창 시절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하나씩 떠오르는 정순의 옛 기억에서도, 영옥의 학교생활에서도 여러 폭력이 난무한다. 과연 정순과 영옥은 각자의 인생에 찾아온 거대한 변화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까.

'내 이름은'은 영화 '남부군' '하얀 전쟁' '블랙머니' 등으로 한국 역사의 아픔을 다뤄온 정지영 감독의 신작이다. 그는 평소 가지고 있던 제주 4·3 사건을 향한 관심을 기반으로 이번 '내 이름은'의 연출을 수락했다. 제주 4·3 사건은 1940년대 후반 제주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감독은 다시 한번 폭력의 무자비함을 영화에 녹여냈다.

영화는 잊고 살던 제주 4·3 사건의 진실을 찾는 정순과 학교 폭력 한 가운데 선 영옥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계속된다. 그 둘이 마주한 폭력은 닮아있다. 외부인으로부터 시작된 갈등이 집단 폭력으로 번지는 건 국가, 사회, 학교 모두 마찬가지라는 게 감독의 설명이다. 실제 존재하는 역사, 현실에서 계속되는 아픔이기에 그 고통이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정지영 감독이 연출을 맡은 영화 내 이름은은 제7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섹션에 공식 초청된 작품이다. /렛츠필름, 아우라픽처스

정순은 폭력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주도민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런 정순을 연기하는 건 염혜란이다. 앞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제주 해녀 광래 역으로 시청자들을 눈물짓게 했던 염혜란은 굴곡진 삶을 살아온 제주 어멍(제주도 방언. 어머니) 정순의 애환을 탄탄한 연기 내공으로 표현한다.

이런 염혜란과 호흡을 맞추는 건 아들 영옥 역의 신우빈이다. '내 이름은'이 첫 데뷔작인 그는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으로 염혜란과 따뜻한 가족애를 그린다. 염혜란과 견줄만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은 그는 작품의 한 축을 든든하게 떠받친다.

'내 이름은'은 제주 4·3 사건 그리고 폭력의 현실을 정순 영옥 두 사람의 인생으로 비춰낸다. 짜임새 있는 탄탄한 구조로 관객의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다만 극의 다채로움을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영옥의 학교 이야기 비중이 과하게 많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영화 '내 이름은'을 보고 나면 진한 여운과 감동이 자리 잡는다. 특히 염혜란의 춤이 인상적이다. 그의 춤에는 제주 4·3 사건으로 아픔을 겪은 모든 제주도민에게 전하는 위로가 담겼다. 그의 춤을 보고 있으면 제주 4·3 사건의 참혹함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내 이름은'은 결코 뻔한 영화가 아니다. 한국 역사의 아픔 그리고 그 아픔이 각인처럼 선명한 피해자 등 수많은 메시지가 녹아있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재미와 메시지 두 가지를 모두 잡은 '내 이름은'은 15세 이상 관람가이며 러닝타임은 113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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