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샛별 기자] 어떤 사건이든 가해자와 피해자뿐만 아니라 이에 얽힌 다양한 인물들이 존재한다.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도 마찬가지다. '허수아비'는 박준우 감독의 바로 이 진심 어린 시선에서 시작한다. 사건과 함께 30년을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을 담고 싶었다는 진정성이 안방극장에도 전달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ENA 새 월화드라마 '허수아비'(극본 이지현, 연출 박준우) 제작발표회가 13일 오후 서울 진행됐다. 현장에는 박준우 감독을 비롯해 배우 박해수 이희준 곽선영 등이 참석해 작품과 캐릭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허수아비'는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을 수사하던 형사가 자신이 혐오하던 인물과 뜻밖의 공조 관계를 맺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1988년부터 2019년까지 30년을 오가며 펼쳐지는, 악연과 증오로 얽힌 두 남자의 진실 추적이 강렬한 서스펜스를 선사한다.
작품은 박준우 감독이 실제 사건인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직접 기획했다. 이는 영화 '살인의 추억'(2003)의 모티브로도 알려진 국내 최악의 연쇄살인사건으로, 영화 개봉 당시 장기 미제로 남았던 사건은 그 후 2019년 진범이 밝혀지며 사회적 다시 한번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33년 만에 마주한 충격적인 진실 그 이면에는 사건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허수아비'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박 감독은 "연출감독으로서 오랜 꿈이 있었는데, 범죄 사건으로 한국 사회의 특정시대를 보여주며 그 시대 사람들과 공기를 되돌아보게끔 하는 작품을 만드는 거였다. 이 오랜 꿈을 이뤄준 작품이 '허수아비'"라고 소개했다.
이어 "사실 처음부터 드라마적인 소재로 이 사건을 선정한 건 아니었다"며 "5년 전에 이 작품과 관련된 두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사실 이춘재가 범인으로 밝혀지기 전까지는 범인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만 관심이 많았다. 정작 관련자들은 이 사건을 겪은 직·간접 관련자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으면 하는 것"이라며 "첫 번째로는 왜 가해자를 놓쳤으며, 두 번째는 왜 30년간 미궁에 빠졌는지를 말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박 감독은 극 속에서 '강성'이라는 마을을 가상의 공간으로 창조했다. 그는 "80년대 중후반의 수도권 농촌 지역을 생각했다"며 "이 마을 공동체가 연쇄살인사건을 겪으면서 지역 사람들은 어떤 일들을 겪고, 범인은 왜 잡히지 못했는지를 되돌아봤으면 한다"며 "특히 서지원(곽선영 분)이라는 기자를 통해 당시의 사람들에게 어떤 사건이었고, 지금의 우리에게는 어떤 사건인지를 바라볼 수 있는 진실 추적극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박해수가 집요한 관찰력과 예리한 직감을 소유한 에이스 형사 강태주 역을 맡았다. 고향인 강성으로 좌천된 이후 연쇄살인사건을 맡게 된 그는 담당 검사이자 학창 시절의 악연인 차시영(이희준 분)과 조우한다. 죽도록 잡고 싶은 놈을 죽도록 증오한 놈과 잡아야 하는 딜레마 속에서 그의 집념과 투지는 더욱 뜨겁게 끓어오른다.
이희준은 냉철한 판단력과 정치적 감각을 겸비한 엘리트 검사 차시영을 연기한다. 철저히 계산된 외면에는 기품과 여유가 묻어나지만, 아무도 모르는 내면에는 뜨거운 야심을 감추고 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정치계에 입문하기 위해 강성연쇄살인사건 수사를 지휘하며 담당 형사이자 학창 시절부터 복잡한 인연으로 얽힌 강태주에게 공조를 제안한다.
박해수와 이희준은 드라마 OCN '키마이라', 넷플릭스 '인연'에 이어 이번 '허수아비'를 통해 벌써 세 번째 호흡을 맞춘다. 서로 다시 만난 소감은 어떨까.
박해수는 "이번 '허수아비'에서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진하게 만났다. 범인을 쫓으면서 개인적인 갈등을 겪을 때 두 사람의 아픔이 강하게 나온다. 무엇보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현장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에 이번에는 더 제대로 된 호흡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이희준은 "이미 20년 전부터 무대에서 함께하며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저희의 친한 케미 덕분에 리허설을 할 때 재밌게 많이 연습을 해서 결과물에서 잘 드러날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두 사람은 현장에서 틈만 나면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합을 맞춰 봤다고. 이희준은 "저희 감독님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찍기로 유명한 감독이다. 때문에 현장에서 여유 있게 연습할 수가 없었다"며 "때문에 짬 날 때마다 연습했다. 예를 들어 4부 찍고 있는데 7부 대본을 미리 맞춰 보고, 장비 옮기는 시간에도 연습했다. 이 모든 건 저희가 친하기 때문에 불편함이 없어서 가능했다. 재밌는 놀이 같았다"고 돌이켰다.
이를 지켜본 곽선영은 "너무 부러웠다. 나도 두 사람 같은 친구가 있었다면 재밌겠다 싶었다. 몰입할 때는 너무 뜨겁고, 연습할 때도 뜨거웠다. 연기로는 보여줄 수 없는 것까지 보일 수 있는 관계였다"고 첨언해 두 사람의 케미를 기대케 했다.
곽선영은 서지원 역으로 또 한 번 대체 불가 존재감을 과시한다. 서지원은 강성일보의 정의로운 기자이자 강태주의 국민학교 동창이다. 사건의 진실을 기록하고 알려야 한다는 투철한 사명감과 올곧은 신념의 소유자로, 강성연쇄살인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경찰들을 예의주시하며 파수꾼 역할을 한다.
곽선영과 박 감독은 지난 2024년에 방송된 ENA 드라마 '크래시'로 이미 한 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다. 특히 '크래시'는 ENA 역대 시청률 2위를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이에 힘입어 시즌2까지 제작을 확정했다.
이에 곽선영과 박 감독이 ENA에서 또 한 번 호흡을 맞추는 '허수아비' 또한 성적에 많은 기대가 모였다. 곽선영은 "'크래시'의 성적은 감독님 덕이 크다"며 "저희가 촬영을 열심히 또 최선을 다해서 했기 때문에 보는 분들도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번 작품 성적은 감독님의 전작인 '크래시'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해 눈길을 끌었다.
작품이 피해자가 많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는 점에서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도 연출할 감독도 부담이 뒤따른 것도 사실이다. 박해수는 "상상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표현도 있어서 겁이 났다"고 털어놨다.
이어 "리딩 하는 날 희수 형이 저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많은 캐릭터를 만나고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애써서 구축도 해보는데, 이 작품만은 우리가 진짜를 고민해야 하고, 척하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며 "왜냐하면 이건 저희의 연기력을 보여주며 지나갈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존재하고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픔을 가진 분들이 있기 때문에 부담과 책임을 갖고 깊이 있게 표현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고 말했다.
연출자의 시선에서 특히 더 염두에 둔 부분도 있었을까. 박 감독은 "내가 생각하는 당시의 시대는 폭력적이고 남성성이 너무 우선시된 시대다. 실제로 범인에게도 작품 속 주인공들에게도 가부장적인 의식이 존재했다고 바라봤다"며 "반면 서지원과 같은 여성 캐릭터들은 여성성을 존중받지 못한 시대였다"고 짚었다. 이어 "돌아보면 당시에는 민주화운동도 있었는데 이런 것들이 서로 맞부딪치는 시대 같았다. 가부장적인 남성성에 여성들이 치이면 발생하는 문제들도 자연스럽게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배우들과 박 감독은 관전 포인트를 전하며 본방사수를 독려했다. 곽선영은 "범인이 누구일지 찾아보는 재미도 있겠지만, 우리도 몰랐던 억울한 사람과 억울함을 준 사람도 존재하니 같이 분노하고 아파하며 마지막까지 함께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박 감독은 "물론 마지막으로 갈수록 무거운 메시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처음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범죄스릴러로서 편하게 봐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허수아비'는 '클라이맥스' 후속으로 오는 20일부터 매주 월, 화요일 밤 10시 ENA에서 방송되며 지니TV와 티빙을 통해서도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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