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준영 기자] "아들 사망 후 3년이 지나서야 수사를 통해 의료인 과실 혐의를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손해배상을 받을지, 수사로 진실을 밝힐지 중 선택해야 한다면 환자와 유족은 억울해 살 수 없다."
"손해배상했다는 이유만으로 진실을 밝힐 기회와 책임을 묻는 권리까지 제한된다면 그 피해는 환자와 가족에게 돌아온다. 손해배상으로 진실과 책임까지 대신할 수 없다."
2019년 수술을 진행한 의사가 걱정하지 말라며 퇴원 조치했지만 심정지가 왔고 수술을 한 양산부산대병원이 수용 요청을 거부해 사망한 김동희 군(5세) 어머니 김소희 씨, 2024년 11월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뇌 손상으로 무의식 상태인 김주희 양(18세) 어머니 류 선씨 이야기다.
의료사고가 나도 필수의료 경우 중과실이 아니고 손해배상하면 기소를 제한하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 개정안(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에 환자들과 법조계, 시민사회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 심의를 앞두고 있다.
해당 법안은 필수의료 행위에서 업무상과실치사상죄에 따른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임의적 형 감면 규정을 두고, 의료인이나 병원이 피해자에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는 특례를 담았다. 피해자의 형사 고소, 경찰 수사, 검찰 기소, 법원 재판을 제한하는 것이다. 필수의료 행위 범위는 '중증, 소아, 응급, 분만, 외상 등' 국민 생명과 신체에 중대 위해가 발생할 수 있는 의료행위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또 의료사고심의위원회를 만들어 필수의료 행위와 중과실 여부를 판단해 의료사고를 낸 의사의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 손해배상금 대불제도 폐지도 담겼다.
해당 법안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말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의료사고 시 합의 등이 이뤄지면 형사처벌하지 않는 특례법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후 발의됐다. 정부와 의사들은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의료사고 시 의료인 사법 부담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환자단체연합회, 대한변호사협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환자와 시민사회는 환자와 유족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며 반대했지만 법안은 세 달 만에 보건복지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환자들과 법조계가 가장 문제로 보는 지점은 공소제기 불가 특례다. 의료사고 시 의사 과실을 비전문가인 피해자가 입증해야 하는 현재 사법 체계에서 피해자의 재판받을 권리마저 제약한다는 비판이다. 환자와 가족은 수사와 재판을 통하지 않으면 진료 기록 등을 볼 수 없어 의사 과실을 증명할 수 없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사망 의료사고에 대해 손해배상 했다는 이유만으로 공소제기 자체를 막는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헌법상 국가의 기본권 보호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될 수 있다"며 "의료인이 의료과실을 부인하면 조정도 거부할 가능성이 크고, 민사재판에서도 과실이 없다고 다툴 것이다. 피해자와 유가족은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 형사처벌을 포기하거나, 형사처벌을 원하면 손해배상을 미뤄야 하는 가혹한 선택을 강요받는다"는 입장이다.
수사특례와 형사특례를 적용 받는 필수의료 범위도 과도하게 넓혔다는 비판이다. 법안은 필수의료 행위 범위로 중증, 소아, 응급, 분만, 외상 '등'이라고 명시해 적용 범위를 넓힐 여지를 뒀다. 환자들은 응급, 중증외상, 분만, 중증소아로 한정하고, 대통령령이 아닌 법률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위험·고난도 의료행위가 수반되지 않는 암, 희귀난치성질환, 심혈관질환, 뇌혈관질환 등까지 포괄하는 의미인 '중증'이 고위험 필수의료행위에 포함돼선 안된다고 밝혔다.
대한변호사협회와 한국의료변호사협회는 위헌성을 지적한다. 이들은 성명을 내고 필수의료행위로 발생한 중상해와 사망 사고에 공소를 제한하는 형사처벌 특례 규정은 국민 평등권과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과거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 대해 위헌 결정(2005헌마764 등)을 했다. 가해차량의 종합보험 가입 여부만으로 중상해 사고에 대한 공소제기 자체를 불허하는 것은 피해자 재판절차진술권과 평등권을 침해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시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법안이 의사 등 의료인에 한정해 형사 특례를 부여하고, 특히 사망 사고까지 그 범주에 포함하는 것은 형평성이 문제될 수 있고 헌법상 평등 원칙에 반할 소지가 있다. 국민 기본권 보호 의무에 비춰 숙고가 필요하다"고 했다.
의료사고심의위원회의 수사 절차 개입과 손해배상금 대불제도 폐지 내용도 문제가 거론된다. 대한변호사협회와 의료변호사협회는 의료사고심의위가 중과실 여부를 판단하고 수사절차 중단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해 초동 수사를 늦춰 진실 규명을 어렵게 하고 공정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또 책임보험에 가입했어도 지급 한도를 넘는 경우 대불제도를 통한 피해자 보호가 필요하단 입장이다.
특히 복지부가 환자들과 시민들 의견을 수렴하기로 약속을 잡아놓고 그 전에 더불어민주당이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킨 문제도 제기된다.
지난 3월 5일 복지부는 필수의료 사고 기소제한 법안에 반대가 이어지자 환자단체연합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의료계 대상으로 3월 16일 의견 수렴을 위한 공청회를 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복지부가 주최한 공청회가 열리기 전인 3월 11일 복지위 의원들은 소위에서 해당 법안을 통과시켰다. 복지부는 법안이 통과된 직후 환자단체연합회와 경실련, 의료계에 공청회 취소를 통보했다. 소비자시민모임과 한국소비자연맹, 환자단체연합회는 공동성명을 내고 정부가 복지부 공청회, 국무총리 산하 의료혁신위원회를 통해 사회적 의견 수렴을 거치기로 했지만 파기하고 소위에서 통과시켰다고 반발했다.
송기민 한양대 교수(경실련 보건의료위원장)는 "의료계가 주장한 과도한 사법 부담은 정부 연구를 통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는데도,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재판받을 기본권을 제한했다. 정부여당은 이에 반대하는 환자, 시민단체에 의견 수렴 자리를 약속해놓고 날치기로 통과시켰다"며 "언젠가 이 부분에 책임을 져야한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반면 의료계 일부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사법 부담 완화 실효성이 낮다며 부담을 더 줄이도록 법안을 고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과실이 없을 때 형사기소를 면제하도록 했지만 무엇이 중과실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의견이다. 또한 형사 면책 조건으로 책임보험 가입과 합의를 의무화한 부분도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의료진에게 떠넘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형사 면책 예외 사유로 제시한 '12대 중대 과실' 규정은 방어진료를 양산한다며 대폭 축소를 요구했다.
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지난 2일 정례브리핑에서 "현재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 내용보다 의료인을 보호하는 취지가 더 반영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법제처와 일부 로펌이 법률 자문에서 합헌이라고 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가 2020년 발간한 보고서는 2013∼2018년 검사가 의사를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한 건수가 연평균 754건이라며 다른 나라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다고 주장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복지부가 지난해 연구용역 한 보고서 결과는 2019~2023년 의료사고로 의사가 기소돼 1심 판결이 나온 사건은 연평균 34건이었다. 정부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소된 진료 과목은 필수과목보다 비필수 과목 비중이 컸다. 피고인 190명 중 정형외과 30명, 성형외과가 29명으로 각각 15%가량 차지했다. 반면 필수과인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소아청소년과 등은 각각 3∼6%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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