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순규 기자] 화사한 꽃 소식과 함께 전해진 해외파 활약 소식에 축구팬들은 환호하면서도, 이내 가슴 한편이 답답해지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는 주말을 보냈다.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벗고 소속팀으로 돌아간 ‘캡틴’ 손흥민(LAFC)과 ‘골든보이’ 이강인(PSG)이 보란 듯이 펄펄 날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무대에서 완벽하게 증명된 두 에이스의 '클래스'는, 불과 며칠 전 3월 A매치에서 무기력했던 홍명보호의 뼈아픈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거울이 됐다.
손흥민은 5일(이하 한국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의 BMO 스타디움에서 열린 올랜도 시티와의 2026시즌 미국 프로축구 메이저리그사커(MLS) 6라운드 홈 경기에서 팀의 6-0 대승을 이끌었다. 2010년 프로 데뷔 이후 커리어 사상 첫 한 경기 4도움이자, MLS 역사상 최초로 ‘전반전 4도움’이라는 경이로운 이정표를 세운 맹활약이었다. 전반전 상대의 자책골(선제 결승골)을 유도한 날카로운 크로스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5골에 모두 관여한 완벽한 원맨쇼였다.
이강인 역시 아킬레스건 부상 우려를 딛고 성공적인 복귀전을 치렀다. 4일 프랑스 파리의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열린 툴루즈와의 2025~2026시즌 리그1 28라운드 홈 경기에 선발 출전한 이강인은, 3-1 승리를 이끄는 결승골의 기점 역할(날카로운 코너킥)을 완벽히 수행하며 소속팀의 선두 수성에 앞장섰다. 이강인은 비단 코너킥 뿐만 아니라 폭넓은 시야와 뛰어난 패스워크로 득점 기회를 창출했다. 두 에이스 모두 단순한 출전을 넘어 소속팀 공격의 혈을 뚫는 핵심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두 선수의 소속팀 활약은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만 하다. 팬들의 뇌리에는 코트디부아르전 0-4 참패, 오스트리아전 0-1 패배라는 3월 A매치의 악몽이 여전히 선명하기 때문이다. 이 두 경기에서 한국 축구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공격수들은 단 하나의 공격 포인트도 기록하지 못한 채 전방에서 상대 수비를 압박하며 고군분투하는 데 그쳤다. 공격수들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수비 가담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했던 모습은 지켜보는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하지만 소속팀 복귀 직후 보여준 맹활약은 선수들의 컨디션이나 폼 저하 문제가 결코 아니었음을 명백히 증명한다. 오히려 이토록 뛰어난 선수들을 데리고도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장점마저 죽여버린 대표팀의 ‘전술 부재’가 다시 한번 드러나게 됐다. 이것이 바로 주말의 짜릿한 승전보가 한국 축구에 던진 '뼈아픈 역설'이다. 물론 대표팀과 소속팀의 전술적 환경이나 주변 선수 구성에 차이가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두 선수가 각자의 무대에서 이토록 확연히 다른 파괴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대표팀 벤치가 뼈아프게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LAFC의 마크 도스 산토스 감독은 손흥민에게 무리한 득점 부담을 지우기보다, 그의 넓은 시야와 이타적인 플레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전술적 자유도를 부여해 전반에만 5골에 관여하게 만들었다. 손흥민이 아직 '골 가뭄'에 시달리면서 산토스 감독 역시 용병술 논란을 빚고 있지만, 팀 승리를 위해 손흥민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며 서부지구 1위를 달리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PSG 역시 이강인의 정교한 킥력과 탈압박 능력을 팀 빌드업의 핵심 무기로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있다.
반면, 홍명보호는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가진 마지막 모의고사에서 세밀한 부분 전술이나 유기적인 움직임 없이 아직도 전술 실험을 하며 선수 개인의 기량에만 의존하는 이른바 ‘해줘 축구’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상대의 밀집 수비에 둘러싸인 채 무의미한 활동량만 강요받는 구조 속에서, 세계적 선수들은 그저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최고급 스포츠카를 쥐여주고도 동네 마실용으로밖에 쓰지 못한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2026 북중미 월드컵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당장 눈앞에 닥친 실전 무대에서 세계적인 강호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정작 우리가 가진 최고의 무기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손흥민과 이강인이라는 역대급 재능을 동시에 보유하고도 이를 하나의 위력적인 창으로 다듬어내지 못한다면 월드컵에서의 낭보는 기대하기 어렵다.
선수들은 소속팀에서 자신들의 가치를 다시 한번 증명해 냈다. 이제는 벤치가 답할 차례다. 보석을 꿰어 보배로 만드는 것은 온전히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몫이다. 손흥민과 이강인의 능력을 120% 이끌어낼 수 있는 세밀한 '활용 매뉴얼'을 당장 마련하지 않는다면, 팬들의 남은 인내심마저 바닥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