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김태환 기자] 신한금융그룹이 지방은행인 제주은행을 전면에 내세워 기업금융 혁신 실험에 본격 착수했다. 더존비즈온과 함께 출시한 'DJ뱅크'를 통해 기업의 전사적자원관리(ERP) 데이터를 바탕으로 법인 계좌 개설, 신용평가, 대출 실행까지 업무 흐름 안에서 처리하는 '임베디드 금융' 모델을 구현한다는 전략이다. 부동산담보와 과거 재무제표 중심의 기존 기업금융에서 벗어나 실시간 데이터 기반 금융으로 전환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제주은행의 디지털 생존 전략이자 신한금융의 새로운 기업금융 실험으로 해석된다.
2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신한금융그룹은 이날 신한금융과 제주은행, 더존비즈온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DJ뱅크 서비스 언팩’ 행사를 열고 ERP와 금융을 결합한 기업금융 플랫폼 구상을 공개했다.
DJ뱅크는 기업의 ERP 시스템 안에서 법인 계좌 개설, 신용평가, 대출 실행 등 기업금융 서비스를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임베디드 금융 플랫폼이다.
지금까지는 법인 계좌 개설이나 대출 신청 과정에서 영업점 방문, 복잡한 서류 제출, 재무제표 중심 심사 등의 문제가 있어 중소기업과 소호(SOHO·소규모 자영업자) 대출이 번거롭고 불편했다. DJ뱅크를 이용하면 기업이 쓰는 ERP 안에서 계좌 개설부터 신용평가, 대출 신청·실행까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재주은행은 DJ뱅크의 핵심 개념으로 '연결(Connected), 실시간(Real-time), 종이서류 없애기(Paperless)'를 제시하며 기업의 실제 업무 흐름 안에서 금융이 작동하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기존 기업금융의 문제로 지적돼온 대면 위주 절차, 과도한 서류 제출, 심사 지연, 정보 부족 등을 줄이겠다는 설명이다.
이날 공개된 DJ뱅크 서비스는 △대안신용평가 전략모형 △DJ더주는 법인 파킹통장 △AX 솔루션 지원자금 대출 △ERP 연계 매출채권 담보대출 등 네 가지다.
대안신용평가 전략모형은 ERP 실거래 데이터와 대안정보를 결합해 기존 재무제표 중심 심사의 한계를 보완하는 방식이다.
법인 파킹통장은 지점 방문과 대량의 서류 제출이 필요했던 기존 법인 계좌 개설 절차를 ERP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 핵심이다.
AX 솔루션 지원자금 대출은 기업의 AI·디지털 전환 수요를 겨냥한 상품이며, ERP 연계 매출채권 담보대출은 매출채권을 바탕으로 단기 유동성을 공급하는 구조다. 제주은행은 향후 구매자금대출과 팩토링 등 공급망 금융 전반으로도 이를 확장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신한금융이 이 같은 실험에 나선 배경에는 기존 기업금융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행사 인사말에서 "그동안 은행은 전년도 결산 재무제표를 중심으로 기업을 평가해 왔지만 ERP 데이터를 활용하면 1년 반 전이 아닌 지금의 기업 상태를 평가할 수 있다"며 "부동산 담보 위주의 여신 관행도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진 회장은 기업의 현재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고 재무제표가 가진 미래를 분석해낼 수 있다면, 부동산 담보 위주로 이뤄져 온 은행 여신의 패러다임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진 회장은 "S&P나 무디스가 단기·장기 신용등급을 발표하듯 기업에 대한 단기·장기 신용 판단도 훨씬 정교해질 수 있을 것"이라며 "DJ뱅크가 새로운 금융의 좌표와 길을 제시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주은행을 앞세운 점도 눈길을 끈다. 신한금융 입장에서는 DJ뱅크가 단순한 신상품 출시가 아니라 그룹 차원의 기업금융 구조 전환 실험 성격이 강하다.
특히, 제주은행 입장에서는 지역 기반 지방은행의 한계를 넘어 디지털 기반 성장 활로를 찾으려는 생존 전략과 맞물린다. 이희수 제주은행장은 이날 "제주에 머물되 제주에 갇히지 않는 디지털 제주를 만들어 가야 한다"며 DJ뱅크를 제주은행의 새로운 돌파구로 규정했다.
다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법인 비대면 계좌 개설과 관련해서는 금융위원회 혁신금융 지정을 받았지만, 금융감독원과 실명인증, 소비자보호, 보안성 등에 대한 협의가 아직 진행 중이다.
ERP 데이터의 신뢰성과 정합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도 향후 시장 안착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제주은행 측은 결산 재무제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재무정보에 대안정보를 더해 변별력을 높이는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신한금융과 제주은행은 더존비즈온과 연결된 400만개사의 기업 데이터와 실제 더존 솔루션 이용 기업 약 8만개사를 잠재 시장으로 보고 있다. 올해 연말까지 여수신 합산 신규액 기준 2000억원을 도전 목표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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