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마저 법정행…'정치적 복원력' 잃은 국힘?


잇단 컷오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수습 나섰지만…경선 일정 차질 가능성
"내부 갈등도 못 풀면서 사회 갈등 해결?" 비판

정당의 핵심적 권리인 공천권이 정치의 영역을 넘어 법정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사진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운데)가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박상민 기자

[더팩트ㅣ국회=김수민 기자] 정당의 고유 권한인 '공천'이 법정으로 옮겨갔다. 정당 내부의 고유 권한이자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여겨졌던 후보 선출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을 내부에서 해소하지 못한 채 사법부 판단에 맡기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국민의힘의 갈등 관리 역량과 자정 능력이 마비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달 31일 법원은 김영환 충북지사의 '공천 배제(컷오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국민의힘 경선 일정 전반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당 지도부는 이에 즉각 반발했다. 장동혁 대표는 1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개입해도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다"며 "재판장은 아마 이 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를 것이다. 이제 재판장이 공관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사법부의 결정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당은 우선 공천 잡음 수습에 분주한 모습이다.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의 사퇴로 공석이 된 자리에 4선 박덕흠 의원을 내정해 조직 정비에 나섰다. 충북지사·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공천 작업을 이끌 예정이다. 동시에 재판부 기피 신청이나 즉시 항고 등 법적 대응도 검토 중이다.

다만 장 대표는 "법원 결정을 법리적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지만 이건 법원 결정에 대한 수용의 문제다. 이 결정을 공천 과정에서 어떻게 녹여 더 이상 후보 간 갈등 없이 공천 작업을 마무리하고 경쟁력을 높일지는 또 다른 문제"라며 고심을 내비쳤다.

문제는 김 지사 외에도 공천 과정에서 컷오프된 주호영 의원과 김병욱 전 의원, 박승호 전 포항시장 등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이 줄을 잇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들의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가 김 지사의 손을 들어준 곳과 동일해 같은 취지의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만약 대구와 포항 지역의 가처분 신청마저 인용될 경우, 공관위가 확정한 기존 경선 대진표는 백지화될 수 있다.

내부 갈등을 자정하지 못한 채 사법부에 의존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사진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부의장실에서 주호영 의원과 대구시장 공천 관련 비공개 면담을 마치고 나오며 악수를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이번 사태의 본질은 공천을 둘러싼 혼란을 당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치적 복원력'의 상실에 있다. 실제 이 위원장은 공천 과정에서 '인적 쇄신'을 내걸었지만, 객관적인 데이터보다는 위원장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했다는 당내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김진태 강원지사, 김태흠 충남지사, 유정복 인천시장 등 과거 친박(친박근혜)계 인사들이 대거 단수 공천을 받았지만, 친이(친이명박)계는 상대적으로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면서 '계파 공천' 논란이 있었다. 특정인 내정설까지 겹치면서 공정성 시비는 계속됐고, 후보들이 법원을 '최후의 보루'로 찾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정치권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정당의 핵심 역할인 갈등 조정 기능이 완전히 상실된 상태에서 어떻게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겠느냐"며 "내부 갈등조차 수습하지 못하는 정당이 인재 육성과 공천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치 교육과 사회적 갈등 조정이라는 두 축이 무너진 정당은 존속 이유가 없다"며 "정치적 복원력을 시급히 회복하지 못하면 결국 갈등만 남은 정당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그 피해는 유권자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의 결정으로 경선 절차가 중단되거나 후보가 뒤바뀌면서 지역구 후보의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선거 전략 수립에 혼선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공천의 법정행'이 반복될수록 정치 불신만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정당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사법부가 이를 깨고 가처분을 인용한 건 당내 토론과 기능이 마비됐다는 방증"이라며 "정치가 스스로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사법부의 결정에 의존하는 것은 명백한 퇴보이며, 그 피해는 국민이 입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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