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조성은 기자] 한미약품이 창사 53년 만에 처음으로 외부 인사를 수장으로 맞이하며 전문경영인 체제의 닻을 올렸다. 대주주 간 갈등의 중심에 섰던 전임 대표가 물러나고 이사회가 재편되면서 경영권 분쟁은 일단락된 모습이지만, 대주주 간 수백억원대 소송전이 이어지고 있어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1일 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은 전날 정기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고 황상연 HB인베스트먼트 프라이빗에쿼티(PE) 부문 대표를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내부 승진을 통해 CEO를 발탁해온 한미약품의 오랜 관행을 깨고 투자와 제약 산업을 두루 섭렵한 외부 전문가를 영입한 파격적인 인사다.
황 신임 대표는 서울대 화학과 출신으로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 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스 최고투자책임자(CIO), 종근당홀딩스 대표 등을 역임한 '금융·제약 융합형' 리더다. 그는 취임 직후 "국내 1위 제약사에 걸맞은 성과를 내겠다"며 "법과 원칙, 상식에 기반한 경영을 통해 외부의 우려는 불식시키고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번 대표 교체는 한미약품 지주회사 한미사이언스의 최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갈등을 빚어온 박재현 전 대표가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이뤄졌다. 업계에서는 외부 인사 투입을 통해 조직을 안정시키고 기존의 연구개발(R&D) 역량에 자본 효율성을 더하려는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미사이언스 역시 이사회를 재편하며 이른바 '4자 연합(신동국·송영숙·임주현·라데팡스)'의 경영 참여를 본격화했다. 이번 주총에서 라데팡스파트너스의 김남규 대표가 한미사이언스 기타비상무이사로 합류하면서, 오너 일가의 자문을 넘어 직접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진입하게 됐다.
한미약품 또한 이사회 구성원 10명 중 4명을 교체하는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단행했다. 황 대표와 함께 김나영 신제품개발본부장이 사내이사로, 채이배 전 의원 등이 사외이사로 선임되면서 이사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지분 구조는 여전히 복잡하다. 신 회장이 개인 및 특수관계인 지분 29.83%를 보유한 최대 주주로 올라선 가운데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 측과 라데팡스 등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어, 어느 한쪽이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한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으로 표면적인 갈등은 봉합됐으나, 수면 아래에서는 대주주 간의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다. 가장 큰 변수는 모녀인 송 회장·임주현 부회장 측이 신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600억원 규모의 위약벌 청구 소송이다. 모녀 측은 신 회장이 과거 주주 간 합의를 어기고 한양정밀 보유 지분을 담보로 교환사채(EB)를 발행한 것을 사실상 지분 처분 행위로 규정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12일 첫 공판이 열린 데 이어 오는 5월 다음 기일이 예정돼 있다. 재판 결과에 따라 대주주 연합 전선이 붕괴될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새로 취임한 황 대표가 대주주 간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중재자 역할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수행하느냐가 관건"이라며 "법적 분쟁이 해소되지 않는 한 전문경영인 체제 역시 지배구조 리스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