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손원태 기자] 동서식품이 얼어붙은 소비 심리와 내수 위주의 사업 구조라는 한계를 딛고 커피 명가로서의 자존심은 지켰으나, 성장 정체와 원가 부담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됐다. 메가 브랜드인 '맥심'과 '카누'의 시장 지배력은 여전하지만, 수출이 막힌 합작사의 한계와 1500원대 고환율이 성장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3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동서식품은 지난해 연 매출이 전년 대비 1.1% 증가한 1조8105억원을, 영업이익은 1.0% 상승한 1793억원을 기록했다. 식품업계 전반이 실적 정체를 겪는 가운데 선방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최근 3년간 매출 성장률이 8.7%에서 1.1%까지 급격히 둔화했다는 점은 뼈아픈 대목이다.
동서식품 성장의 걸림돌은 역설적이게도 지배구조에 있다. 동서식품은 지난 1968년 지주사 동서와 미국 식품사인 '제너럴푸드'가 지분을 절반씩 투자해 세운 합작회사다. 이후 제너럴푸드는 크래프트푸즈홀딩스로 인수됐고, 사명을 몬델리즈홀딩스로 변경했다. 이로써 동서식품 지분은 동서와 몬델리즈가 50%씩 갖게 됐다.
동서식품은 인스턴트커피 개념이 생소했던 1970년대 미국에서 커피 제조시설과 기술을 들여와 맥스웰하우스를 생산했다.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인스턴트커피로, 그 기술력을 토대로 1980년대 맥심을 만들어 시장을 빠르게 흡수했다. 다만 동서식품은 출범과 함께 체결된 계약에 따라 사업이 국내로만 제한됐다. 맥심 등 주요 브랜드의 해외 판권과 상표권은 몬델리즈가 갖고 있다. 동서식품의 사업 다각화나 확장성이 국내에서만 이뤄지게 된 배경이다.
동서식품은 매출을 늘리기 위해 커피 외에도 녹차, 곡물차, 시리얼, 비스킷 등으로 사업을 넓혔다. 합작사인 몬델리즈로부터 오레오, 리츠 등 글로벌 유명 브랜드를 들여와 국내에서 제조하고 판매하는 등 스낵시장도 공들였다.
하지만 소비 심리 위축으로 내수 시장은 점차 활력을 잃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동서식품이 주력으로 판매하는 커피, 스낵은 물이나 밥 등과 같은 생필품도 아니다. 최근에는 소비자 사이에서 건강을 챙기는 '웰니스' 문화가 확산되면서 동서식품의 확장성에도 제동이 걸렸다.
이는 동서식품 최근 3년간 연 매출과 성장률 추이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2023년 1조7554억원(+8.7%) △2024년 1조7909억원(+2.0%) △2025년 1조8105억원(+1.1%)으로, 해마다 성장세가 줄어드는 것이다. 동서식품의 주력 사업인 인스턴트커피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국내 인스턴트커피 시장 규모는 △2023년 1조3243억원 △2024년 1조3038억원 △2025년 1조2299억원(추정치)으로 매해 감소세다. 동서식품은 맥심과 카누 등으로 인스턴트커피 점유율 80%대를 차지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내외 경기 불확실성에 따른 고환율은 수익성을 직접적으로 타격하고 있다. 지난해 원·달러 평균 환율은 1422원을 기록했으며, 최근 1500원을 넘나드는 상황은 원두와 야자유 등을 전량 수입하는 동서식품에 치명적이다.
실제 동서식품의 지난해 매출원가는 1조2930억원으로 전년 대비 9.3% 급증했다. 매출원가율 역시 66.2%에서 71.6%로 5.4%p 상승하며 이익 구조를 악화시켰다. 가격 인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여부를 조사하고 있어 추가적인 가격 방어마저 쉽지 않은 상태다.
동서식품은 커피 다각화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그중 대표 사업이 최근 홈카페 트렌드와 함께 부상하고 있는 캡슐커피 시장이다. 앞서 동서식품은 지난 2023년 2월 4년의 개발 과정을 거쳐 캡슐커피 브랜드인 '카누 바리스타'를 선보였다.
동서식품은 카누 바리스타를 시장에 안착시키기 위해 브랜드 체험 마케팅에 화력을 집중했다. 서울 한남동 플래그십 스토어인 '맥심플랜트' 내 전용 라운지를 설치하거나, 성수동 일대에서 팝업스토어를 마련하는 등 소비자와 접점을 늘렸다.
카누 바리스타는 현재 어반·브리즈·페블 총 3종의 머신과 16종의 전용 캡슐 라인업을 갖췄다. 또한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네스프레소(12종)과 돌체구스토(7종) 등 호환이 가능한 캡슐까지 보유해 소비자 선택 폭을 확대했다. 이는 우하향을 그리고 있는 인스턴트커피 시장과 달리, 캡슐커피 시장은 점차 규모를 키우고 있는 점을 반영한 전략이다.
유로모니터 조사 결과, 최근 3년간 국내 캡슐커피 시장 규모는 △2023년 3772억원 △2024년 3806억원 △2025년 3822억원(추정치)으로 꾸준히 상승세다. 인스턴트커피와 비교해 규모는 작지만, 성장 잠재력이 커 동서식품으로서는 매력적인 선택지다. 그러나 이 역시 네스프레소가 80%대 점유율로 장악하는 만큼, 시장 안착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동서식품은 올해 전략으로 수익성 개선에 집중하면서도 캡슐커피 시장에 더욱 공을 들이겠다는 계획이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카누 바리스타는 국내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풍부한 맛의 아메리카노를 즐길 수 있는 제품"이라며 "소비자들의 다양한 커피 취향에 맞는 캡슐과 머신을 선보여 팝업으로 접점을 늘려나가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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