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쇼크 현실화"…1520원 돌파에 외인 '엑소더스', 코스피 하방 압력 확대


외국인 7거래일 연속 순매도·3개월 50조 이탈…"환율이 증시 방향 좌우"
한은 낙관론에도 경계심 확대…“달러 수요 우위 신호”

환율이 17년 만에 1520원을 돌파하며 외국인 자금 이탈이 가속화된 가운데 31일 코스피가 5000선 초반까지 급락했다. 사진은 30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환전소 모습. /인천국제공항=김성렬 기자

[더팩트ㅣ박지웅 기자] 코스피가 외국인 매도세와 환율 급등 충격이 맞물리며 5000선 초반까지 급락했다. 특히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520원을 돌파하며 17년 만에 최고 수준까지 치솟자, 외국인 자금 이탈이 가속화되며 지수 하방 압력이 급격히 확대되는 모습이다.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와 국제유가 상승,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까지 겹치면서 시장은 사실상 '환율 쇼크'에 휩싸인 분위기다.

3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오전 9시 32분 기준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4.05%(213.49포인트) 내린 5063.81에 거래되고 있다. 장 초반부터 낙폭을 키우며 5100선이 무너진 가운데, 장중 한때 5050선까지 밀리는 등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

수급별로는 개인이 1조1719억원을 순매수하며 저가 매수에 나서고 있지만,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9880억원, 2186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내리고 있다. 개인의 방어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의 대규모 매도세가 시장 방향을 좌우하는 모습이다.

외국인은 최근 거래일 기준으로 7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이어가고 있다. 19일 1조8760억원을 시작으로 △20일 1조2402억원 △23일 3조6751억원 △24일 1조9863억원 △25일 1조2895억원 △26일 2조9370억원 △30일 2조945억원 등 매도 규모를 키우며 국내 증시에서 자금을 빠르게 회수하는 모습이다. 단순한 차익실현을 넘어 위험자산 비중 축소 성격이 짙다는 평가다.

특히 이러한 흐름은 단기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장의 경계감이 커지고 있다. 최근 3개월간 외국인은 코스피 현물 49조원, 선물 28조원을 순매도하며 현·선물을 가리지 않고 자금을 빼내고 있다. 현물과 파생상품을 동시에 정리하는 '쌍끌이 매도'가 이어지면서 수급 공백이 심화되고 있으며,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사실상 '엑소더스'에 가까운 흐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외국인 이탈의 핵심 배경에는 환율 급등이 자리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전날 중동발 불안 지속 영향으로 1520원을 넘어섰으며, 이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처음이다. 이어 이날 장중에는 1528원까지 치솟으며 상승폭을 더욱 확대했다. 19일 1491원대와 비교하면 불과 열흘 사이 30원 이상 급등한 셈이다.

환율이 1500원대 중반까지 올라서면서 외국인 입장에서는 환차손 부담이 크게 확대됐다. 이에 따라 보유 주식을 매도하고 자금을 회수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되며 수급 악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에선 '환율이 국내 증시 방향을 결정하는 장세'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환율 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현재 시장은 단순한 긴장을 넘어 확전 가능성까지 반영하는 분위기"라며 "국제 유가를 추종하는 달러화가 상승 탄력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환율 하단도 견고하게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환율이 1500원을 상회하며 유입되고 있는 수출 및 중공업체의 대규모 고점 매도 물량이 상단을 두텁게 만드는 요인"이라며 "여기에 당국의 속도 조절을 위한 미세조정 경계도 환율 상승에는 부담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이민혁 국민은행 연구원 역시 "전쟁 장기화 속 원자재 공급 충격으로 인한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까지 부각되며 안전자산 선호가 환율 하단을 지지하고 있다"면서도 "외환당국이 상방 변동성 완화를 위해 미세조정에 나설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어 단기적으로 1520원이 1차 방어선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환율이 1520원을 돌파하며 17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한 가운데,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의 달러 유동성 양호 진단에도 시장에서는 이를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뉴시스

환율 상승 압력이 지속되는 가운데, 정책 당국의 메시지와 시장 인식 간 괴리도 뚜렷해지고 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는 이날 오전 "환율이 높은 수준이지만 달러 유동성은 양호한 상황"이라고 평가했지만, 시장에서는 이를 그대로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환율이 1520원을 돌파한 현실 자체가 달러 수요 우위를 반영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면서 외환시장 불안이 지속될 것이라는 경계심이 더 강해지는 모습이다.

증권가에서는 환율 급등이 단순한 외국인 매도 확대를 넘어 시장의 구조적 왜곡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환율 발작은 외국인 엑소더스를 자극해 반도체를 기계적으로 매도하는 수급 왜곡을 낳고 있다"며 "지수 방향성에 베팅하기보다 기술 경쟁력이 높은 핵심 소부장과 외국인이 매수 중인 기계·건강관리·조선 등 틈새 업종 비중을 늘리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외국인 매도 영향이 지수보다 대형주에 더 크게 반영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준기 SK증권 연구원은 "최근 3개월간 외국인은 코스피 현물 49조원, 선물 28조원을 순매도했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비중이 코스피의 40%를 넘는 만큼 대형주의 변동성은 지수보다 훨씬 과격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국제유가 상승과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까지 맞물리며 시장 전반의 리스크 프리미엄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특히 반도체 등 수출주 중심의 한국 증시는 환율과 글로벌 경기 사이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조인 만큼, 외부 변수 변화에 따른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결국 환율 안정 여부가 향후 증시 방향성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꼽힌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펀더멘털보다 환율과 지정학 리스크가 시장을 지배하는 국면"이라며 "환율이 1500원대 중후반에서 고착될 경우 외국인 자금 유출 압력은 계속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코스피 하단도 추가로 열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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