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대구=이태훈 기자] 민주화 이후 단 한 번도 진보 계열 정당에 시장 당선을 허락하지 않았던 대구가 흔들리고 있다. 그 중심엔 더불어민주당에서 지역주의 타파의 선봉장 역할을 한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있다. 30일 <더팩트>가 만난 대구시민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에게 호감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도, 김 전 총리에 대해선 '정체된 대구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인물'로 기대를 걸었다.
김 전 총리는 이날 국회와 대구에서 차례로 기자회견을 열고 6·3 지방선거 대구광역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다가오는 지선에서 보통의 '승리'를 넘어 '압승'을 노리는 민주당의 대구시장 출마 요청을 받아들인 데 따른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무총리까지 지낸 그가 체급을 확 낮춰 시장 선거에 출마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대구는 민주화 이후 치러진 민선에서 한 차례도 진보계열 정당에 시장 당선을 허락하지 않은 보수 정당의 심장과 같은 곳이다. 김 전 총리도 2014년 치러진 지선 대구시장 선거에서 40.33%를 얻는 데 그치며 낙선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로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대구시민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김 전 총리가 대구 출마선언 장소로 선택한 중구 공평동 2·28기념중앙공원에서 취재진이 만난 80대 김명철(가명)씨는 "이재명 대통령은 별로 마음에 안 드는데, 대구는 이 사람(김 전 총리)이 해야 한다"며 "나도 예전엔 국민의힘 찍었는데, 이번엔 김 전 총리를 뽑으려고 한다. 지인 중 국민의힘 진성 당원들도 몇 있는데, 그들도 '이번엔 김 전 총리를 뽑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70대 박중화 씨는 '김 전 총리 출마를 어떻게 보았느냐'는 질문에 "괜찮은 것 같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국민의힘은 요즘 어떤 것 같으냐'는 물음에는 "항상 지지해 줬는데 대구에 해준 게 뭐가 있느냐"며 "국민의힘엔 뭐라고 좀 (지적을) 해야 한다"고 불만을 표했다. 그의 옆에 있던 오민중 씨는 "요즘 나이 든 사람들도 많이 변했다"며 선거 때마다 주변이 무조건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전했다.
국민의힘에 대한 비토와 김 전 총리에게 기대를 품는 목소리는 대구 곳곳에 있었다. 서문시장에서 만난 상인 40대 김영아 씨는 "예전과 비교했을 때 (시장 상권이) 많이 힘들어졌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동성로에서 만난 대학생 정민지 씨는 "대구에서 계속 살았는데, 어렸을 때와 비교해 (대구가) 크게 발전한 것 같지는 않다"며 "다른 정당에 기회를 줘 봐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다만 "김부겸이라고 다를 것 같느냐", "민주당은 못 찍는다"며 김 전 총리 출마에 반감을 드러낸 이들도 있었다.
여론조사를 통해 드러난 대구 민심은 분명 흔들리고 있었다. 영남일보 의뢰로 리얼미터가 대구 시민 812명을 대상으로 지난 22~23일 실시한 대구시장 여·야 후보 간 '1대 1 가상대결' 지지도 조사 결과(25일 발표, 무선 ARS 방식,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4%포인트, 응답률 7.2%,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김 전 총리는 공천 배제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주호영 국회부의장을 포함한 국민의힘 경선 후보 8명과의 가상대결에서 모두 우위를 보였다.
김 전 총리는 이날 '국민의힘 무용론'을 강조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는 국민의힘을 향해 "당이 대구를 지켜야지, 왜 맨날 대구가 당을 지켜줘야 하느냐"며 "그동안 대구가 숨넘어갈 때 안일하고 무능한 역할만 하던 사람들이 자기들이 맨날 욕만 하던 이재명 정부를 상대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날을 세웠다.
경북 상주 태생인 김 전 총리는 경북고를 나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제16대 총선에서 경기 군포에서 당선된 뒤 내리 3선을 했고, 19대 총선을 앞두고는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대구로 향했다. 19대 총선(대구 수성구갑)과 2014년 지방선거(대구시장)에서 연거푸 낙선의 쓴맛을 봤으나, 20대 총선에서 당선되면서 파란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