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스쿼드의 '모래성'...홍명보호, '3분 승부'에 운명을 걸어라 [박순규의 창]


2026 북중미 월드컵부터 적용되는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 적극 활용 여부가 '변수'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이 28일 코트디부아르와 평가전에서 0-4 참패를 당하면서 비판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 활용 여부가 새 변수로 떠올랐다./밀턴킨스(영국)=KFA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영국 밀턴킨스에서 날아온 0-4 참패의 충격파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28일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 직후, 축구계 안팎에서는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을 향한 '백가쟁명(百家爭鳴)'식 원인 분석과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가장 큰 딜레마는 2026 북중미 월드컵을 불과 3개월 앞둔 시점임에도, 최후방 수비 라인의 주전조차 확정하지 못한 채 극도의 수비 불안을 노출했다는 점이다. 팬들의 실망감이 분노로 바뀌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현재 대표팀은 유럽 빅리그를 누비는 선수들이 즐비한, 이른바 역대 최상위권의 '황금 세대'로 불리기 때문이다. 구슬이 서 말인데 꿰지를 못하고 있다.

새해 첫 A매치이자 한국축구 1000번째 A매치에서 홍명보 감독이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에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밀턴킨스=KFA

◆'약'일까 '독'일까… 승패 가를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 3분'

이번 코트디부아르전에서 가장 뼈아프게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바로 전반 22분경 주어졌던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수분섭취 휴식)' 이후의 경기 흐름이다. 북중미 월드컵부터 전·후반 각각 22분께 약 3분간 주어지는 이 시간은 단순한 목축임의 시간이 아니다. 감독들에게는 경기 중 합법적으로 작전 타임을 갖고 흐름을 뒤바꿀 수 있는 '전술의 골든타임'이다.

그러나 코트디부아르전에서 이 3분은 한국에 치명적인 '독'이 됐다. 코트디부아르 벤치는 이 짧은 휴식 시간을 활용해 한국의 스리백 허점을 파악하고, 수비 뒷공간을 노리는 롱볼과 스피드 활용으로 전술을 기민하게 수정했다. 반면 홍명보호는 상대의 변화에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브레이크 직후인 전반 35분 선제골을 내준 것을 시작으로, 와르르 무너지며 결국 4실점 참사를 당했다. 벤치의 수 싸움과 전술적 대처 능력이 완벽하게 밀린 결과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오현규 등이 포진한 한국의 2026 북중미 월드컵대표팀은 4강 신화를 이룩한 2002 한일월드컵대표팀보다 선수 개개인의 인지도면에서 훨씬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밀턴킨스=KFA

◆2002년 히딩크호와 2026년 홍명보호의 결정적 차이

이 지점에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이 오버랩된다. 객관적인 선수 개개인의 지명도나 유럽파의 비중을 따지면 2002년 대표팀은 지금의 홍명보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세였다. 하지만 히딩크호에는 경기 흐름을 꿰뚫고 단번에 판을 뒤집는 벤치의 지략이 있었다. 상대 전술에 맞춰 포백과 스리백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유연성,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팀적인 압박 전술이 4강 신화를 만들었다. 만약 히딩크 감독에게 3분의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가 주어졌다면, 그는 필시 상대를 옥죌 새로운 전술의 판을 깔았을 것이다.

반면 지금의 홍명보호는 훌륭한 부품들을 모아놓고도 조립 설명서를 잃어버린 형국이다. 선수들의 이름값은 높아졌지만,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유연성과 팀으로서의 응집력은 오히려 퇴보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이 28일 코스티부아르와 평가전에서 전반에만 2골을 내주는 졸전 끝에 0-4 패배를 기록했다. 사진은 선발로 나선 오현규(왼쪽)와 배준호의 경기 장면./밀턴킨스=KFA

◆운명의 3개월, 3분의 작전 타임을 '약'으로 만들어라

월드컵 본선까지 남은 시간은 단 3개월이다. 기적을 바라기엔 짧지만, 궤도를 수정하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코트디부아르전의 참패를 교훈 삼아 홍명보 감독은 당장 다음의 과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첫째, 실험을 멈추고 수비의 뼈대를 확정해야 한다. 더 이상의 테스트는 사치다. 본선에서 가동할 주력 수비 전술을 확정하고, 남은 기간 수비 조직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둘째, 개인기 중심에서 '패턴 플레이'로 진화해야 한다. 특정 선수에게 의존하는 모래성 축구에서 벗어나, 상대 밀집 수비나 압박을 깰 수 있는 세밀한 약속된 플레이를 몸에 익혀야 한다. 특급 선수는 없지만 항상 고른 기량과 팀 전력을 발휘하는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의 일본 축구를 보고 배워야 한다.

셋째,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를 활용할 '플랜B' 매뉴얼을 수립해야 한다. 남은 3개월 동안 이 3분의 시간을 어떻게 전술적으로 준비하느냐에 따라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이 제도가 '약'이 될 수도, 또다시 '독'이 될 수도 있다. 지고 있을 때, 이기고 있을 때, 상대가 전술을 바꿨을 때 등 다양한 시나리오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벤치의 치밀한 매뉴얼이 필수적이다.

홍명보 감독은 2002년 4강 신화의 중심에서 히딩크 감독의 '원팀'을 그라운드에서 직접 구현했던 '영원한 캡틴'이다.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스쿼드를 쥐고 있는 지금, 홍명보 감독에게 필요한 것은 2002년 벤치가 보여주었던 지략과 전술적 유연성을 2026년의 그라운드에 재현하는 것이다. 다가오는 4월 1일 오스트리아전은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라는 '3분의 승부'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증명해야 할 첫 번째 시험대다.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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