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된 재판소원<중>] '끝 없는 싸움'에 우는 피해자…보완책은 어디에


'기본권 구제' 명분 내세운 재판소원제
대법원 판결 불복 수단 변질될 우려
헌재 인력 부족 등 졸속 입법 지적도

재판소원제 남용 우려가 확산되면서 제도 보완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배정한 기자

<상>편에 이어

국민의 기본권 구제를 목표로 도입된 '재판소원제'가 시행 초기부터 거센 후폭풍에 직면했다. 숭고한 취지와 달리 실제로 접수되는 사건들은 범죄자들의 시간 벌기용 '꼼수'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팩트>는 재판소원제의 현실을 짚어보고, 해외 운용 현황을 통해 한국형 재판소원이 나갈 길을 총 3편에 걸쳐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더팩트ㅣ국회=서다빈·정채영 기자] 재판소원제 남용 우려가 확산되면서 제도 보완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성범죄 또는 데이트폭력 등 피해자가 명확한 형사 사건에서 가해자가 재판소원을 청구할 경우,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안길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형사재판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구조다. 확정판결 이후에도 절차가 다시 열릴 경우 피해자는 또 한 번 법적 대응에 나서야 할 수 있다. 상대방이 소원을 제기하면 피해자 역시 대응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고, 추가적인 법률 비용 부담도 발생한다.

유튜버 쯔양을 협박해 금품을 갈취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을 확정받은 유튜버 구제역 씨는 재판소원을 청구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피해자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쯔양을 대리하는 김태연 변호사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소원제로 피해자에게는 끝났다고 믿었던 고통이 다시 반복되는 상황이 초래됐다"고 우려했다.

법조계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온다. 판사와 변호사를 모두 지낸 법조인 출신 정치권 인사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설령 각하된다 하더라도 그 결정이 나기까지 대응해야 하지 않느냐"라며 "피해자로서는 변호사를 선임해 또다시 싸워야 하고, 그 자체가 고통의 연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판이라는 건 항상 상대방이 존재하는 구조다. 법률 비용 부담도 문제고, 만에 하나 인용된다면 그때는 또 다른 대응을 해야 한다"며 "이 제도가 피해자나 국민에게 어떤 파장을 낳을지 사전에 충분히 시뮬레이션했어야 했다. 과감한 입법이 걱정스럽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역시 피해자 보호 장치의 부재를 문제 삼고 있다. 안김정애 평화를만드는 여성회 공동대표는 통화에서 "성폭력과 같은 중대 범죄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제한을 두는 방안을 검토했어야 했다"며 "모든 사건을 일률적으로 열어둔 채 ‘형식적 평등’을 내세우는 건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결국 재판소원제가 기본권 구제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중대 범죄에 대한 예외 규정 △남용 방지를 위한 엄격한 각하 요건 △피해자 보호 절차의 명문화 △헌법재판소의 인력 및 조직 보강 등 제도적인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판결 선고 당일 재판소원 청구 의사를 밝힌 양문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례가 거론되면서, 재판소원이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사진은 지난 2024년 5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초선 당선자 워크숍에 참석한 양 전 의원. /이새롬 기자

정치권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판결 선고 당일 재판소원 청구 의사를 밝힌 양문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에 재판소원이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양 전 의원은 지난 12일 대법원에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했다. 양 전 의원은 판결 확정 직후 재판소원 청구 의사를 밝혔으나, 이후 변호인과 상의 끝에 이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판사 출신의 한 민주당 의원은 "헌법재판소가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재판소원 대상으로 열어두는 순간 사실상 '4심제' 논란이 불가피하다"며 "여론이 압도적인 사안이 아니라면 정치적으로도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치적으로 활용하지 않길 바란다"며 "여론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위헌 가능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헌법이 명시한 3심제를 넘어 사실상 4심제적 기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 지방법원 판사는 통화에서 "확정판결에 불복해 재판소원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3심제의 취지에 반한다"며 "정치적 입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헌재의 현실적 여건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그는 "재판소원의 피고가 누구인지, 법원인지, 개별 재판부인지, 법원행정처장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태"라며 "사건을 처리할 인력과 조직 역량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졸속 입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인력 충원과 조직 정비가 선행됐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4심제 논란은 과도하다는 반론도 있다. 한 로스쿨 교수는 통화에서 "시간이 지나면 안정이 될 것"이라며 "4심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제도"라고 말했다.

<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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