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선영 기자]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동결한 가운데 이란전쟁 격화로 국제유가와 원·달러 환율이 동시에 출렁이며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운신 폭이 더 좁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리 인하로 경기 부담을 덜어야 한다는 요구가 있지만 고유가·고환율이 물가와 금융안정 리스크를 다시 키우는 국면이어서 '동결 장기화' 관측이 나온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연준은 17~18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정책금리 목표범위를 연 3.50~3.75%로 유지했다. 연준은 올해 말 기준금리 중간값을 3.4%로 제시해 연내 1회 인하 가능성 해석을 남겼지만 올해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상승률 전망을 2.7%로 높이는 등 물가 경계도 강화했다. 연준이 "중동 상황의 경제적 함의가 불확실하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내면서 시장에서는 '인하 기대'보다 '고금리 장기화' 쪽에 무게가 실렸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이 가운데 전쟁 리스크는 유가를 다시 끌어올렸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지난 9일 장중 119달러대까지 치솟으며 개전 이후 최고가를 써냈다. 브렌트유 역시 같은 날 장중 119달러에 근접했고, 종가 기준으로는 지난 13일 103달러를 넘어섰다.
서울 외환시장도 즉각 반응했다.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19일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7.9원 오른 1501원으로 마감했다. 주간 거래 종가 기준 2009년 3월 10일(1511.5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시장에선 전쟁 확전 우려가 커질수록 달러 선호가 강해지고 유가 급등은 에너지 수입 대금 결제 부담을 키워 달러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은행은 19일 유상대 부총재 주재 시장상황 점검회의에서 "FOMC 결과로 연준 통화정책 경로의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고 평가했다. 유 부총재는 중동 정세 불안 등 대외 리스크가 상존하고 국내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이 높다며, 필요 시 시장안정화 조치로 적기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통화정책 여건은 '내리기 어렵고, 올리기도 부담'인 쪽으로 복잡해졌다. 한은은 2월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 연 2.50%를 동결했고, 같은 날 처음 공개한 '6개월 후 조건부 금리(점도표)'에서 동결(2.50%)에 16개 점이 찍히며 단기적으로는 '현 수준 유지'가 우세한 구도로 읽혔다.
여기에 2월 의사록에서도 "환율과 부동산(집값) 안정이 통화정책 결정에서 우선 고려 변수"라는 취지의 발언이 공개되며, 고환율·고유가 국면에서는 인하 카드가 더 늦춰질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었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다음달에도 2.50% 동결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과 전쟁·유가 충격이 장기화될 경우 물가 상방압력이 재부각돼 정책 선택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시장에선 중동 전쟁이 유가를 더 자극하고 고환율이 장기화할 경우 한은이 금리 인하를 미루는 수준을 넘어 '인상 카드'까지 거론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6개월 후 조건부 금리전망(점도표)'에는 기준금리 2.75%(0.25%포인트 인상)에 점이 1개 찍혀, 물가·환율·유가 등 대외 변동성이 재확대될 때 정책 선택지가 완전히 닫혀 있진 않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다만 일각에선 중동전쟁의 조기 종전 가능성도 거론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이 더 이상 우라늄을 농축할 능력이 없으며 전쟁이 생각보다 빨리 끝날 수 있다고 발언한 영향이다. 국제유가도 브렌트유가 108.7달러로 거래를 마치는 등 소폭 하락했다. 이날 오전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9원 내린 1492원으로 출발해 하락폭을 키우며 1489원선을 유지하고 있다.
이창용 총재는 지난 2월 26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 직후 "3개월 내 금리를 변동해야 한다는 논의는 없었다"며 단기 인상 가능성에는 거리를 뒀고, 앞서 1월엔 "환율을 금리로만 잡으려면 200~300bp(2~3%포인트)를 올려야 한다"는 취지로 '환율 방어용 인상'에 선을 그은 바 있다.
금융당국도 변동성 확산에 대응해 업권별 리스크 점검회의를 열고 환율·유가·금리 동반 상승 국면을 점검했다. 금융위원회는 19일 오전 10시 김진홍 금융산업국장 주재로 업권별 리스크 점검회의를 개최하고 중동 상황에 따른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농협·신한·우리·하나·기업·국민 등 6대 은행 중동 관련 위험 규모가 4조3000억원(위험가중자산의 0.3%), 전쟁 당사국인 이란·이스라엘 관련 위험은 10억원 수준이다. '직접 노출'은 제한적이지만, 시장 변동성이 길어질 경우 실물·금융에 미치는 간접 충격을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한은의 단기 통화정책 방향은 금리 자체보다도 시장 변동성이 과도해질 때 어떤 커뮤니케이션과 시장안정 조치로 충격을 흡수하느냐가 정책 조합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은 '인하 시점'보다 고유가·고환율이 물가 기대를 다시 자극하는지와 달러 강세가 얼마나 이어지는지가 더 큰 변수"라며 "한은도 금리를 급히 움직이기보다는 변동성 국면에서 시장과의 소통과 안정조치 원칙을 분명히 하는 쪽이 우선순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