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서울 명동=오승혁 기자] "사실 BTS(방탄소년단) 기획사에서 흰색이나 검정색 티셔츠에 아티스트 얼굴을 넣은 상품을 굿즈로 팔지 않는다는 점은 거의 모든 팬들이 다 알아요. 그런데 그냥 한국 여행 온 김에 추억을 남기기 위해, 본인들이 애정하는 아티스트의 굿즈를 뭐라도 갖고 싶은 마음에 구매하는 거죠." (BTS 팬)
18일 '오승혁의 '현장''은 서울 명동을 찾았다. 3일 뒤인 21일 저녁 8시에는 이곳과 근접해 있는 시청역 인근부터 광화문사거리, 광화문 일대가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ARIRANG)’ 공연에 함께 하기 위해 찾은 인파들로 가득찰 예정이다.
대한민국 관광 1번지로 불리는 명동에는 이날도 역시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운치 있게 내리는 봄비 속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명동을 거닐다 보면 골목마다 키링과 인형 등의 상품으로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기념품숍을 마주하게 된다.
<취재진?은 이 이끌림을 뿌리치지 않고 여러 매장에 들어갔다. 수많은 매장 안은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한 유명 K팝 아티스트들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박힌 티셔츠, 머그잔, 에코백 등으로 가득했다. 벽면에는 브로마이드가 빈틈없이 붙어있고, 매대 한편에는 아티스트 포토카드(포카)와 캘린더 등이 진열되어 있다.
각종 피규어 등의 뽑기를 즐길 수 있는 가챠샵에도 '공식 포토카드'(Official Photo Card)라는 안내를 적어둔 기계를 여러 대 볼 수 있었다. BTS 외에도 여러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 적힌 각각의 기기에 적힌 금액을 넣으면 랜덤 포토카드를 뽑을 수 있다.
화려한 굿즈들로 관광객의 발길을 유혹하지만, 매장 곳곳에는 '촬영 금지' 팻말이 살벌하게 붙어있다. 유명 아티스트와 기획사의 지식재산권(IP)과 초상권을 무단으로 도용해 불법 복제물을 팔면서, 정작 본인들의 '불법 영업' 현장은 카메라에 담기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아이러니한 촌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건으로 가득 찬 매장 안의 좁은 통로를 지나다 보면 장바구니나 에코백을 하나 가득 채울 정도로 굿즈를 고른 외국인 관광객들과 이를 계산하고 기쁜 표정으로 나가는 이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실상 이들 중 아티스트 굿즈를 정품으로 알고 구매하는 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BTS 외에도 여러 아이돌 그룹의 팬이라는 한 시민은 "알면서도 산다. 기획사에서 정식으로 발매하는 굿즈 같은 경우에는 출시 직후에 매진되어 구하기 힘든 경우도 많은데 명동에서는 비슷한 것을 살 수 있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이어 "특히 외국인 팬들 같은 경우에는 한국에 여행을 온 기념으로 사기도 하고, 온 김에 추억을 남기고자 구매한다"며 "하지만, 이들도 머그잔이나 티셔츠에 아티스트 얼굴을 담겨 있는 등의 제품을 정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알면서도 사는 이들 덕에 명동 기념품숍의 아이돌 굿즈들이 유지되는 것 같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다른 이는 "오피셜이라고 적힌 상품도 제대로 된 정품이라고 믿기 어렵다"면서 "팬들이 좋아하니까 만들고 이들이 구매하니까 판매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짝퉁 굿즈가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고 의견을 밝혔다.
사실 명동 일대의 '짝퉁 굿즈'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작년에는 특허청 상표특별사법경찰(이하 상표경찰)이 BTS 소속사인 하이브와 힘을 합쳐 K팝 스타의 상표권을 침해한 '짝퉁 굿즈'를 유통한다고 의심받은 서울 남대문시장의 한 업체를 급습했다.
이곳에서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한 세븐틴,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엔하이픈, 르세라핌 등 인기 아이돌 그룹 9팀의 지식재산권(IP)을 도용한 포토카드, 양말, 볼펜, 의류, 거울, 열쇠고리(키링), 모자, 휴대전화 액세서리, 텀블러 등 30여종의 제품 약 2만점이 압수됐다.
가장 큰 딜레마는 짝퉁 굿즈의 주 소비층이 한국을 찾은 '해외 팬'들이라는 점이다. 결국 K팝 아티스트들의 글로벌한 인기와, 한국을 찾은 팬들의 맹목적인 애정이 짝퉁 시장의 가장 든든한 자양분이 되고 있는 셈이다. 수요가 끊이지 않는 한, 그리고 팬심이라는 이름으로 불법이 용인되는 한 기획사와 경찰의 숨바꼭질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해 보였다.
아티스트의 피땀 어린 노력에 무임승차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명동의 짝퉁 굿즈 숍들을 뿌리 뽑기 위한 더욱 근본적이고 강력한 대책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