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졌던 골퍼 이미향 이정은6 '우승', 재기 서사의 '감동' [박호윤의 IN&OUT]


3,143일만의 우승 이미향, 긴 침묵을 깨다
엡손투어 챔프 이정은6, 또 다른 '부활 스토리' 쓰나
추락을 이겨낸 위대한 생존

이미향이 블루베이LPGA에서 우승, 8년8개월만에 투어 3승째를 기록했다. 사진은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는 이미향./LPGA

[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사람들은 늘 새로운 스타의 탄생에 열광한다. 골프의 경우 지난해 10월, 황유민이 비회원 신분으로 출전한 하와이 롯데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순간이 바로 그랬다. 단숨에 LPGA투어 정상에 오르며 신데렐라 스토리를 만들어낸 그의 등장에 팬들은 강렬한 환희를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면 사람들의 기억에 더 오래 남는 이야기는 결이 다르다. 화려한 등장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시련과 고통,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집념의 승리’다. 최근 LPGA투어에서 나온 이미향의 블루베이 LPGA 우승이 바로 그 사례다.

3,143일.

이미향이 다시 LPGA투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2017년 ISPS 한다 스코티시 여자오픈 이후 8년 8개월 만이다. 1988년 구옥희(스탠다드 레지스터클래식)를 시작으로 지난해 황유민까지 LPGA투어 우승을 경험한 52명의 한국 선수(교포 제외) 가운데 가장 긴 우승 공백이다. LPGA투어 전체로 봐도 1970~90년대 활동한 데일 에글링(14년 11개월), 셸리 햄린(13년 5개월)을 제외하면 2018년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6년 9개월 만에 우승한 안젤라 스탠퍼드보다도 긴 기다림이었다.

이미향이 블루베이LPGA 최종라운드 18번홀에서 세번째 샷을 핀에 바짝 붙인 뒤 우승을 확신하며 환호하고 있다./LPGA

골프에서 이렇게 긴 시간이 흐르면 많은 선수들이 사라진다. 부상과 슬럼프, 자신감 상실이 이어지며 조용히 투어를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긴 침묵을 견뎌내고 다시 정상에 오른 이미향의 승리가 더욱 가치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나는 인생에서 수없이 실패했다. 그래서 성공할 수 있었다"고 했고,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은 "성공은 끝이 아니고 실패는 치명적인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계속하는 용기"라고 말했다. 또한 "골프는 얼마나 좋은 샷을 치느냐가 아니라 나쁜 샷 이후 어떻게 회복하느냐의 스포츠"라는 말도 있다. 모두 이미향의 이번 우승을 설명하는 문장처럼 들린다.

과정 역시 극적이었다. 블루베이 LPGA 최종일, 3타 차 선두로 출발한 이미향은 전반 9홀에서 더블보기를 두 개나 범하며 무너지는 듯했다. 그러나 후반 들어 안정을 되찾았고, 마지막 18번 홀 버디로 ‘부활 스토리’를 완성했다.

LPGA투어에는 이미향처럼 긴 시간을 견디며 다시 정상에 선 선수들이 적지 않다. 지난해 은퇴한 지은희는 2009년 US여자오픈 이후 3,024일(8년 3개월)만인 2017년 스윙잉스커츠 타이완 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통산 13승의 김세영 역시 12승 이후 지난해 BMW챔피언십에서 다시 우승하기 까지 약 5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또 우승 공백은 아니나 최운정은 데뷔 후 6년 7개월, 157경기 만에 첫 승을 거두며 긴 기다림을 견뎌냈다.

이들의 공통점은 시련과 좌절, 그리고 정상에서의 추락이라는 고통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았고 끝내 다시 일어섰다는 점이다.

이정은6가 2부투어인 엡손투어 IOA클래식에서 우승한 뒤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는 모습./LPGA

이 흐름 속에서 또 한 명의 이름이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 든다.

2019년 US여자오픈 우승으로 또 하나의 신데렐라 스토리를 썼던 이정은6. 2017, 18년 KLPGA투어에서 6승을 몰아치며 2년 연속 상금왕과 평균타수 1위를 기록, 국내 최강자로 군림했던 그는 LPGA 진출 첫 해 메이저 우승과 신인왕을 차지하며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다.

그러나 이후 몇 년간 부진을 겪으며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고, 올해는 LPGA 2부 투어인 엡손 투어에서 다시 출발했다. 그리고 지난 16일 IOA 골프 클래식에서 마지막 날 6언더파를 몰아치며 우승, 부활의 첫 단추를 끼웠다. 이 우승으로 ‘레이스 투 더 카드’ 1위에 올랐고, 이번 주 먼데이 퀄리파잉을 통해 정규 투어 포티넷 파운더스컵 출전권까지 확보하며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이정은6가 2019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 LPGA투어 데뷔 첫 승을 메이저로 장식한 뒤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AP.뉴시스

이미향 역시 한때 먼데이 퀄리파잉을 전전하며 ‘사투(?)’를 벌인 적이 있다. 우승을 경험했거나 상위권에서 활동하던 선수에게 새벽부터 이름 없는 선수들과 단 두 장의 티켓을 놓고 경쟁하는 과정은 가혹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그 길을 통과했다. 그리고 지금 이정은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2부 투어 우승이 곧바로 복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정은이 다시 경쟁을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골프에서 커리어는 직선이 아니다. 굴곡이 있는 곡선이다. 어떤 선수는 정상에 머물고, 어떤 선수는 내려왔다 다시 올라간다. 이미향은 긴 침묵 끝에도 다시 정상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화려한 시작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다시 일어나는 순간이다. 넘어질 때마다 툴툴 털고 다시 일어나 걷는 선수들. 이런 진정한 의미의 승리자들에게 박수와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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