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신진환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해협에 한국 군함을 파견해달라고 요구한 데 대해 정치권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청와대의 고심이 깊어지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데, 일각에선 반대 의견이 나오고 있다. 과거 사례에서 파병은 국론 분열의 뇌관으로 작용해왔던 점을 비춰볼 때 정치권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당 차원의 입장은 내지 않고 있다. 중동 정세가 날로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만큼 워낙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한미 간 채널을 가동해 상황을 자세히 검토하고 신중하게 대처하겠다는 청와대와 보폭을 맞추며 최대한 논란의 불씨를 만들지 않게 조심하는 듯하다. 당정 간 긴밀한 소통 속에서도 지금은 정부의 시간이라는 인식이다.
당 일각에서 파병 자체에 대해 반대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이기헌 의원은 전날 군 함정 파견에 반대 의견을 밝히며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출신인 김병주 의원도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란과 관계와 한미동맹, 우리 상선과 파병부대 군함의 안전을 다 검토해야 하기에 적극적으로 파병에 동의하는 건 반대"라며 "우리가 아주 보수적으로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아덴만에서 활동하는 청해부대를 호르무즈해협으로 배치하는 문제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며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 가능성을 차단하고 나섰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중대한 외교 안보 사안일수록 정부는 국회와의 충분한 협의와 합의를 바탕으로 대응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우리 헌법은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 또는 외국군대의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의 주류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포함한 일본과 중국 등에도 함정 파견을 요구한 것을 두고 호르무즈 해협에서 연합 군사 작전이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따라 우리 해군 함정의 파견 문제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여야 모두 국회 비준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다만 국회사무처 측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헌법 규정을 개별 사안에 적용하기는 어렵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파견하는 문제는 상당한 난제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거부한다면 안보와 통상 압박이 거세질 수 있다. 정치권도 이 부분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 그렇다고 미 행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자칫 미국과 이란의 전쟁에 휩쓸릴 수 있는 부담이 따르는 동시에 우리 군의 생명과 안전도 위협받을 수 있다. 이미 진보 진영에서 함정 파견에 반대하는 집회를 잇따라 열고 있어 향후 국론분열의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딜레마를 고려해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시간을 끌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오는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의 결단에 따라 함정 파견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 특히 실제 군함을 파견하는 것으로 결정된다면 정치권 안팎이 들끓을 수밖에 없게 돼 정치권이 격랑 속으로 빨려들 공산이 크다. 2003년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 문제를 두고 극심한 혼란에 휩싸였던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야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채 관망하는 태도다. 민주당 관계자는 통화에서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당장 간 소통을 이어갈 것"이라며 원론적인 반응을 보였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통화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한 바는 없다"라면서 "우선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보는 게 순서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정치권 한 원외 인사는 "호르무즈 함정 파견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 전쟁 부담을 다른 국가와 나누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는 문제"라며 "석유와 가스 등 우리 경제와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중동 국가들과 관계와 한미동맹의 사이에서 (정부가) 실용적이고 중립적 판단을 우선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반대와 반발이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회 차원에서 논의하는 것이 분열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방안일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