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리·임종언 '세계선수권 2관왕 합창', 30년 세대교체 '완성' [박순규의 창]

한국 쇼트트랙의 세대교체 선두주자 람보르길리 김길리(가운데)가 15일(현지시간) 2026 ISU 세계선수권대회 쇼트트랙 여자 1500m 결선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시상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몬트리올=AP.뉴시스

[더팩트 | 박순규 기자] 한국 쇼트트랙의 시계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15일(현지시간) 몬트리올에서 막을 내린 2026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는 한국 빙상의 위대한 유산이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를 완벽하게 증명한 무대였다. 21세의 김길리(성남시청)와 18세의 임종언(고양시청), 두 젊은 에이스가 나란히 2관왕에 오르며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활짝 열어젖혔다.

한국 쇼트트랙 세대교체의 30년 역사를 돌아보면 매 순간 굵직한 이름들이 빙판을 수놓았다. 1990년대를 호령한 전이경을 시작으로, 2000년대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 그리고 최근까지 빙상을 지배했던 '여제' 최민정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시대마다 걸출한 에이스의 등장에 열광하며 빙상 강국의 자부심을 느꼈다.

최근 최민정이 은퇴를 선언하며 짙게 드리웠던 에이스 공백에 대한 우려는, 이번 세계선수권대회를 기점으로 완벽하게 씻겨 나갔다. 전이경에서 시작돼 안현수와 최민정을 거쳐 김길리로 이어지는 이 눈부신 계보는 한국 쇼트트랙이 왜 30년 넘게 세계 최강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가장 완벽한 서사다.

여자부 1500m와 1000m를 석권한 김길리의 레이스는 선배들의 전성기를 그대로 빼닮아 있었다. 1500m 결선에서 5바퀴를 남기고 보여준 폭발적인 스퍼트와 바깥쪽을 파고드는 과감함, 그리고 캐나다와 네덜란드의 집중 견제 속에서도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가는 노련함은 21세의 나이를 무색하게 했다. '포스트 최민정'이라는 수식어를 넘어, 이제는 온전한 '김길리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짜릿한 선언과도 같았다.

남자 1000m 금메달을 목에 걸며 세계선수권 2관왕에 오른 한국남자 쇼트트랙의 희망 임종언(가운데)./몬트리올=AP.뉴시스

남자부의 새 희망 임종언의 발견 역시 이번 대회의 쾌거다. 18세의 나이로 처음 출전한 성인 세계선수권에서 1500m와 1000m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1000m 결선에서 보여준 드라마틱한 승부는 그의 남다른 강심장과 품격을 증명한다. 막판 선두 다툼 중 캐나다 윌리엄 단지누의 반칙에 은메달로 밀려날 뻔한 아찔한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상대에게 다가가 먼저 축하를 건넸다. 비디오 판독을 통해 정당한 금메달을 되찾은 이 장면은, 과거 빙판 위를 지배했던 선배들이 보여주었던 실력과 매너를 겸비한 '월드클래스'의 품격 그 자체였다.

이들의 성과가 더욱 값진 이유는 얼마 전 막을 내린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의 뜨거운 열기와 중압감을 견뎌낸 직후에 나왔기 때문이다. 큰 무대를 거치며 지치기보다는 오히려 한 단계 진화했다. 선배들이 닦아놓은 압도적인 체력과 스퍼트라는 유산 위에, 현대 쇼트트랙에 필수적인 정교한 코스워크와 거친 몸싸움 능력, 그리고 강인한 멘탈까지 완벽하게 장착한 모습이다.

비록 남녀 계주에서는 불운과 반칙 판정으로 아쉬움을 삼켰지만, 20대 초반과 10대 후반의 젊은 에이스들에게는 이마저도 더 큰 성장을 위한 값진 자양분이다. 일찌감치 차기 시즌 국가대표 자동 선발이라는 혜택까지 거머쥔 두 선수는 이제 더 먼 미래를 내다보며 기량을 완성할 여유를 얻었다.

세대교체의 30년 역사는 성공적으로, 그리고 쉼 없이 다시 쓰이고 있다.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두 명의 젋은 스케이터가 엮어갈 한국 쇼트트랙의 내일은, 과거의 어느 때보다 든든하고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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