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보르길리'의 0.009초 대역전극...김길리, 밀라노 아쉬움 씻은 1000m 金


15일 올림픽 1000m 銅 아쉬움 딛고 세계선수권 정상
특유의 막판 아웃코스 스퍼트로 0.009초 차 짜릿한 역전승...임종언도 金

람보르길리 김길리(가운데)가 15일 2026 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1000m에서 대역전극으로 우승을 차지한 뒤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왼쪽은 은메달리스트 산드라 펠제부르(네덜란드8초 852), 오른쪽은 3위 엘리사 콘포르톨라(이탈리)./몬트리올=AP.뉴시스

[더팩트 | 박순규 기자]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간판 김길리(21·성남시청)가 불과 한 달 전 올림픽 무대에서 삼켰던 아쉬움을 완벽한 금빛 대역전극으로 털어냈다. 자신의 별명인 '람보르길리(람보르기니+김길리)'의 진가를 전 세계에 다시 한번 증명한 폭발적인 레이스였다.

김길리는 15일(한국시간) 캐나다 몬트리올의 모리스 리처드 아레나에서 열린 2026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1000m 결선에서 1분 28초 843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2위 네덜란드의 산드라 벨제부르(1분 28초 852)와는 단 0.009초 차,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찰나의 승부였다. 3위는 엘리사 콘포르톨라(이탈리아·1분 28초 920)에게 돌아갔다.

이번 우승은 김길리 특유의 짜릿한 역전 승부 본능과 영리한 레이스 운영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물이었다. 가장 불리한 외곽 5번 레인에서 출발한 김길리는 초반부터 선두 싸움에 체력을 소모하지 않았다. 3바퀴를 남길 때까지 하위권에 머물며 앞선 선수들의 동선을 파악하고 에너지를 비축하는 '숨 고르기'에 집중했다.

진짜 승부는 결승선을 2바퀴 남겨둔 시점부터 시작됐다. 웅크리고 있던 김길리는 스포츠카가 기어를 변속하듯 순식간에 폭발적인 스피드를 뿜어내며 전매특허인 아웃코스 추월을 시도했다. 순식간에 3위로 치고 올라온 그녀의 가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마지막 코너를 빠져나오며 앞선 공간을 날카롭게 파고든 김길리는 결승선 직전 혼신의 힘을 다한 '왼발 날밀기'를 시도했고, 비디오 판독 끝에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음을 인정받았다. 하위권에서 단숨에 선두를 집어삼키는 '람보르길리'의 폭풍 질주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역전 승부를 노린 김길리(왼쪽)가 앞서가는 산드라 펠제부르(오른쪽)의 틈을 보며 추월에 나서고 있다,/몬트리올=AP.뉴시스

무엇보다 이번 금메달은 지난달 막을 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의 아쉬움을 씻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김길리는 밀라노 올림픽에서 1500m와 3000m 계주 정상을 차지하며 2관왕에 올랐지만, 주 종목인 1000m에서는 치열한 접전 끝에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다관왕의 위업 속에서도 가슴 한편에 남아있던 1000m 금메달의 한(恨)을, 세계선수권 무대에서 가장 극적인 역전 우승으로 통쾌하게 풀어낸 것이다.

한편, 남자부에서도 짜릿한 역전 우승 낭보가 전해졌다. 임종언(18·고양시청)이 남자 1500m 결선에서 2분 14초 974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임종언 역시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대역전극을 완성했다. 레이스 중반까지 침착하게 기회를 엿보던 그는, 강력한 우승 후보 윌리엄 단지누(캐나다)가 혼자 넘어지는 변수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마지막 바퀴를 남기고 앞선 선수들이 거칠게 몸싸움을 벌이며 주춤하는 틈을 타 영리하게 외곽으로 빠져나왔고, 그대로 선두를 탈환하며 한국 선수단의 두 번째 금메달을 장식했다.

올림픽의 영광과 아쉬움을 뒤로하고, 통쾌한 대역전극으로 다시 한번 세계 빙판을 호령한 태극전사들의 질주는 한국 쇼트트랙의 저력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고 있다.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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