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지금은 곁에 없는 친구들과의 행복했던 한때를,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영화 촬영 현장을, 우연히 들어간 극장에서 다른 관객들과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걸 담은 '극장의 시간들'이다. 작품은 극장과 관련된 모든 것들에 러브레터를 보내면서 저마다의 기억을 자극하고 영화와 극장의 가치를 되새기게 만들며 짙은 여운을 선사한다.
오는 18일 스크린에 걸리는 '극장의 시간들'(감독 이종필·윤가은·장건재)은 이종필 윤가은 장건재 감독이 만든 3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앤솔로지(독립된 에피소드들을 하나의 주제 아래 묶은 작품) 영화로, 함께 웃고 울고 꿈꾸며 언제나 변치 않는 친구가 돼 준 극장과 영화에게 보내는 시네마 러브레터다.
작품은 이종필 감독의 '침팬지'로 시작된다. 배경은 2000년의 광화문으로, 고도(원슈타인 분) 모모(이수경 분) 제제(홍사빈 분)가 등장한다. 영화를 사랑한다는 공통점으로 단짝이 된 세 사람은 헌책방에서 발견한 신기한 침팬지 이야기에 빠져들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동물원에 간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영화감독이 된 고도(김대명 분)는 홀로 광화문을 걷다가 다시 침팬지 이야기를 만나고 그때 그 시절을 영화로 만들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소중했던 시간을 추억한다.
이어 고아성이 감독으로 분해 이끄는 윤가은 감독의 '자연스럽게'가 펼쳐진다. 한여름의 현장에서 어린이 배우들은 동네 곳곳을 뛰어다니며 신나게 노는 장면을 연기 중이고, 이를 바라보는 감독은 계속 더 자연스럽게 연기해달라고 말한다. 이에 배우와 스태프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를 보고 있는 관객들은 자연스러운 연기가 대체 어떤 것일까라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고아성이 연기한 감독은 자신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으면서도 어린아이들을 끊임없이 이해하고 배려한다. 이는 결국 윤가은 감독이 어린아이들이 있는 현장을 어떻게 대하고 이끌고 있는지, 또 아역 배우들의 현장은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는지 생생하게 바라볼 수 있다.
또한 영화 안에서 영화를 찍는 '자연스럽게'는 마지막에 윤 감독이 실제로 등장해 배우들에게 디렉팅을 하는 장면이 담겨 현실감을 불어넣는다.
마지막은 장건재 감독의 '영화의 시간'이 장식한다. 보통 엔딩 크레딧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든 사람들의 이름을 시작 부분에 배치하고 이를 직접 읊는 내레이션이 삽입돼 신선함을 안긴다.
춘천에 사는 영화(양말복 분)는 오랜만에 광화문을 찾고 정동과 광화문 곳곳을 걷다가 극장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수십 년 만에 청소 노동자로 일하는 여고생 동창(장혜진 분)과 재회한 영화는 그의 배려로 한여름의 꿈 같은 영화 한 편을 만난다.
물론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잠이 들어서 작품의 내용을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경험이 있을 테니 더 공감이 된다. 여기에 그런 영화를 나무라지 않고 다정하게 깨우는 동창의 행동은 왠지 모를 따뜻함을 더한다.
이렇게 독특한 세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극장의 시간들'은 관객 감독 배우 등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다양한 시각에서 극장이라는 공간을 조명하며 장소가 주는 독특한 경험과 기억을 환기시킨다.
무엇보다 작품은 영사 기사의 하루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고 세 편의 단편이 전개된 후 젊은 영사기사가 그 배턴을 이어받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이를 비롯해 극장 안이지만 또 밖과 같은 곳에서 묵묵히 일하고 스태프들과 매표소 직원, 청소 노동자 등 다양한 인물들을 담으며 저마다의 러브레터를 보낸다.
'극장의 시간들'은 대한민국 대표 예술영화관 씨네큐브가 개관 25주년을 맞아 제작한 것으로, 세 감독은 저마다의 이야기로 극장과 영화의 미래에 새로운 도전과 희망을 제시한다. 반드시 씨네큐브에서 봐야 하는 건 아니지만 영화를 보고 상영관을 나와 스크린에 담겼던 현실의 씨네큐브를 다시금 바라보는 걸 추천한다.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안정적인 연기력을 보여줬던 배우들의 활약은 이번에도 인상적이다. 특히 이번 작품을 통해 첫 연기에 도전한 원슈타인도 신선한 목소리와 비주얼로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코로나19 이후 침체기가 계속되고 있는 한국 영화계다. 흥행작은 나오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온전히 집중해야 하는 극장이 아닌 스마트폰이나 TV로 콘텐츠를 즐기는 것에 편함과 익숙함을 느끼고 있는 부분도있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간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만큼, 왜 여전히 극장이 존재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극장의 시간들'은 전체관람가이며 러닝타임은 94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