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준영 기자] 국내 약제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5배 높아 국민들과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지속되면서 약값을 낮추기 위한 성분명 처방 법제화가 추진되고 있다. 성분명 처방이 법제화 될 경우 8조원 가량 절감될 전망이다.
11일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소위원회를 열고 복제약(제네릭) 약가를 낮추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제네릭 의약품의 기본 약가는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53.55% 수준인데 이를 40%대로 낮추는 방안이다. 지난해 11월 복지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제네릭과 특허만료 의약품 약가 산정률을 40%대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도 제1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더불어민주당 장종태 의원이 대표발의한 약사법 개정안과 의료법 개정안을 심의하고 있다. 해당 법안들은 의약품 수급불안정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품절 등 수급이 불안한 의약품은 처방전에 의약품 명칭 대신 성분명을 기재하도록 하고, 정부가 생산·수입 명령을 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정부와 국회가 복제약가 인하와 상품명 처방을 추진하는 것은 우리나라 약값이 다른 나라들보다 높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눈에 보는 보건의료 2025'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약제비는 2023년 구매력평가(PPP) 기준 969달러(약 142만원)로, OECD 평균 658달러보다 47.3%나 많았다.
나영균 배재대 보건의료복지학과 교수가 이날 더불어민주당, 무상의료운동본부 등이 연 국회 토론회 '대한민국 약제비 구조의 개혁방안'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한국은 국민의료비에서 약제비로 20.5%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OECD 평균 14.4%보다 높다. 일본 16.3%, 독일 14.3%, 프랑스 13.1, 영국 11.8% 등이다. 한국 약품비 지출은 2011년 13조1000억원에서 2024년 27조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우리나라 약값이 주요국들에 비해 높은 원인은 상품명 처방과 복제약 산정률이 꼽힌다. 의사가 성분명이 아닌 특정 브랜드명으로 처방하는 상품명 처방으로 약사가 동일 성분이면서 더 저렴한 복제약으로 교체할 수 없는 구조다. 선진국 대부분은 80% 이상 대체조제율을 달성해 제네릭 가격 인하를 유도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 대체조제율은 0.79%로 사실상 대체조제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복제약 가격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 현행 약사법상 대체조제를 하려면 처방 의사에게 사전 동의를 받거나 사후 통보해야 하는데, 현실적인 소통 어려움과 약사들의 의사와 관계 악화 우려로 대체조제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에 제네릭 약가가 산정률인 53.55%에 고정돼있고, 제약사는 마케팅·리베이트에 의존하는 비효율적 시장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제네릭이 오리지널의 53.55%로 일괄 책정돼 제네릭 간 가격 경쟁이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못하게 만드는 '동일성분-동일가격' 제도와 해외보다 많은 외래방문 횟수, 의사들의 과다 처방도 약값 비중이 높은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 제네릭 약가는 OECD 평균 2.14배 수준으로 분석된다.
나영균 교수는 "상품명 처방 관행, 고가 제네릭, 과다 외래진료, 동일성분-동일가격 제도 등이 서로 연결돼 약제비가 높아져 건보 재정을 압박하고 혁신 신약 접근성을 저해한다"며 "성분명 처방 의무화, 참조가격제 도입, 제네릭 경쟁입찰제를 도입해 약제비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 가지 방안을 함께 시행하면 현행 약품비의 절반 수준인 13조5000억원을 한 해 절감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참조가격제는 동일 성분과 동일 약리, 동일치료 효과 등으로 약품을 묶어 최저가 약품 기준으로 보험 상한가를 설정하는 방식이다. 환자가 더 비싼 약을 선택하면 차액을 본인이 부담해 제약사 간에 자발적 가격 인하 경쟁을 유도한다. 건보공단 주도 경쟁입찰은 최저가 상위 5개 제품을 건보 급여 목록에 등재하고 나머지는 비급여 전환해 동일성분, 동일효능 기준으로 가격 경쟁을 촉진하는 방안이다. 실제로 뉴질랜드는 국가 단일 입찰제로 제네릭 약가를 95% 절감했다. 독일도 참조가격제 등으로 40% 줄였다.
의사 단체 등은 반발하고 있다. 이날 대한의사협회는 성분명 처방 법제화에 반대하며 국회 앞에서 ‘성분명 처방 저지 궐기대회’를 열었다.
의협은 성분명처방을 법제화하면 의약분업 체계를 흔들고 환자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법안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의사는 진단과 처방을, 약사는 조제와 복약지도를 담당하는 것이 의약분업의 대원칙"이라며 "만약 성분명 처방이 강행된다면 우리는 이를 의약정 합의 일방적파기로 간주하고 의약분업 제도 자체의 전면 백지화를 선언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처방은 의사의 고유한 진료 행위"라며 "동일 성분이라도 임상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특히 소아와 고령자, 중증질환자 및 수술 또는 장기 이식환자 등에 치명적 결과로 이어질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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