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투표제 앞두고…제약바이오 '지배구조 재정비' 속도


정관 개정 나서…이사회 구조 선제 정비
소액주주 영향력 확대 대비…거물급 사외이사 영입·경영권 방어 전략 병행

제약바이오 업계가 상법 개정에 따른 집중투표제 도입을 앞두고 지배구조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뉴시스

[더팩트ㅣ조성은 기자] 오는 9월 집중투표제 의무 시행을 앞두고 제약바이오 업계가 지배구조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주요 기업들은 정관 개정과 이사회 인선 강화 등을 통해 제도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다. 소액주주 권한이 확대되는 만큼 기업 투명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경영권 방어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제기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유한양행, GC녹십자, 대웅제약, SK바이오사이언스 등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이달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선임할 때 1주당 1표를 행사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선임 예정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예컨대 이사 3명을 선출할 경우 주주가 가진 1주당 의결권은 3표가 되며, 이를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다. 소액주주가 표를 집중하면 대주주 의사와 관계없이 자신들이 추천한 후보를 이사회에 진입시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동안 국내 제약사들은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 정관에 집중투표제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배제 조항을 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상법 개정으로 자산 2조원 이상 대규모 상장회사는 향후 이 조항을 유지할 수 없게 되면서 기업들이 정관 정비에 나선 것이다. 기존 배제 조항을 삭제하면 내년 주총부터 집중투표제가 적용될 수 있다.

기업들은 단순히 정관을 고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사회 구조도 함께 손질하고 있다. 사외이사 인선에 전문성과 상징성을 동시에 갖춘 인물을 영입해 이사회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이 대표적이다.

유한양행은 검사장 출신 법조인을 사외이사 후보로 내세웠고, SK바이오사이언스는 규제기관 수장 출신 인사를 영입했다. GC녹십자 역시 글로벌 제약사 출신 전문가를 이사회에 합류시키는 방안을 추진하며 전문성 강화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인선이 향후 소액주주 추천 인사가 이사회에 진입하더라도 이사회 내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보고 있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행동주의 펀드나 소액주주 연대가 특정 후보를 밀어 이사회에 진입시키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산 규모 확대에 따라 제도 적용 대상이 되는 기업도 늘고 있다. 대웅제약과 HK이노엔 등은 최근 자산 2조원을 넘어서면서 대규모 상장사 규제를 적용받게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기업들은 집중투표제의 영향력을 완화하기 위한 다양한 대응책도 검토 중이다. 대표적으로 이사 임기 만료 시점을 분산하는 '시차 임기제'가 거론된다. 한 번에 선임하는 이사 수를 줄이면 특정 후보에게 표가 집중되는 효과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상법 개정에 포함된 '합산 3% 룰'도 변수다.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할 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하는 제도로, 오는 9월 이후 열리는 주주총회부터 적용된다. 이에 따라 일부 기업들은 이번 정기주총에서 감사위원 선출 구조를 미리 정비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자본시장에서는 이번 제도 변화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바이오 산업 특성상 장기 연구개발 투자와 신속한 의사결정이 중요한 만큼 이사회 내 이해관계 충돌이 커질 경우 경영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집중투표제 도입은 소수 주주 권리를 강화하고 의사결정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동시에 경영권 분쟁이나 이사회 갈등 가능성이 커질 수 있어 기업들이 다양한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pi@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