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유병철 전문기자] # 지난 2월 27일 대한체육회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유승민 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체육회장 직선제'를 위한 정관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바로 ‘제24조 대한체육회장 선출기구(선거인단) 변경에 따른 조문 개정’입니다. 대한체육회 측은 직선제가 대체로 공감대를 형성했으나 추가적인 숙의 요청이 있어 관련 절차를 거친 뒤 6월 임시총회에서 재상정하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관련기사도 대부분 같은 톤이었습니다. 앞서 대한체육회는 2025년 9월부터 첫 토론회를 시작으로 공문발송(2회), 회원단체 임직원 대상 설명회(7회), 국회공청회, 유튜브 토론회 등 직선제 도입을 위해 그간 애를 써왔습니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과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feat. 사우디의 동계아시안게임 반납과 관련된 두 분의 대화)도 이 직선제에는 공감을 표했습니다.
# 한국에서 ‘직선제’라는 단어의 뉘앙스는 강력합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로 압축되는 1987년 민주화 운동의 핵심이 대통령 ‘직선제’였고, 이것이 관철되며 한국의 민주주의는 뿌리를 내리게 됐죠. 직선제는 곧 민주주의이고, 반대급부로 간선제는 구악(舊惡)이었습니다. 대한체육회가 일찌감치 꼼꼼하게 준비해왔고, 정치권력도 반색한 체육회장 직선제가 왜 현장에서 제동이 걸리며 연기됐을까요? 대통령 직선제와는 달리는 대한체육회장 직선제는 구조적이면서도, 복잡한 사정이 있기 때문입니다.(제발 부탁인데 위정자들이 체육계를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 일단 한 나라의 체육단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올림픽운동을 담당하는 국가올림픽위원회(NOC)가 있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국가별 조직이죠. NOC 외에 각각 전문체육 / 생활체육 / 학교체육 등을 담당하는 기관이 있는데 그 구체적인 형태는 나라마다 다릅니다. 여기서 정부조직이 담당하거나, 미국의 특수성(NFSH, NCAA)이 작동되는 학교체육을 제외하면 이해가 보다 쉽습니다. 문제는 NOC / 전문체육 / 생활체육, 3개의 조합인데, 이게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각 NOC는 해당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할 것을 요구 받습니다. 이를 어기면 IOC가 올림픽 참가 및 국기 사용 등을 제한합니다. 반면 전문체육과 생활체육은 막대한 세금이 투여되고, 정부 정책과 관련이 깊습니다. 당연히 통제와 감시를 받아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충돌하는 구조입니다.
# 한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NOC / 전문체육/ 생활체육이 모두 통합된 형태입니다. 영국은 NOC+전문체육 / 생활체육으로 구분됩니다. 호주, 캐나다, 일본은 NOC / 전문체육+생활체육의 조합입니다.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지만 각기 장단점이 있죠. 확실한 것은 2016년 통합된 우리네 방식이 계속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생활체육 때문에 전문체육이 손해를 본다’, 거꾸로 ‘생활체육 예산을 전문체육이 가져다 쓴다’ 등 볼멘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인적갈등도 발생합니다. 정부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체육회는 통제를 받으면서도 독립성을 지켜야하기 때문입니다. 이기흥 회장 때 대한체육회는 ‘체육자치’를 내세워 주무부서(문화체육관광부)와 노골적인 갈등을 보였습니다. 어쨌든 통합 대한체육회 출범 이후에도 스포츠혁신위원회,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 등 전문가그룹은 2016년 통합의 잘못됨을 지적하며 KOC(NOC) 분리안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 이런 상황에서 체육회장 선거의 직선제는 난제입니다. 이번 정기총회에 올라온 해당 정관개정안을 보면 선거인단 확대, 즉 직선제를 위해 기존의 복잡한 상세조항을 삭제하고 ‘회원단체의 임원, 대의원 및 체육회 등록시스템에 등록된 경기인’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시스템에 등록된 경기인은 ‘1인1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죠. ‘등록 경기인’은 전문체육도 쉽지 않지만, 생활체육은 정말이지 공정하게 판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또 종목별 가중치도 어렵습니다. 대한체육회는 NOC를 겸하기 때문에 IOC 규정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려면 회장선거에서 올림픽 종목(하계 24개 + 동계 7개)의 선거인이 과반이 돼야 합니다. 올림픽 종목의 경기인은 종목당 평균 1,000명으로 환산하면 3만 1,000명입니다. 그런데 향후 투표에 나설 대한체육회 등록 경기인은 총 40~70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 결정적으로 체육단체장을 대대적인 직선제로 선출하는 나라가 없습니다. 체육단체의 구체적인 거버넌스 형태가 어떻든 독일, 미국, 호주, 일본 등 스포츠선진국들은 별도의 위원회를 구성해 복수의 후보를 추린 후 이사회나 총회에서 결정합니다. 요란한 대형선거는 없습니다. 한 체육계 원로는 "굳이 직선제로 체육계 수장을 뽑으려고 한다면 KOC를 분리해 KOC위원장을 그렇게 뽑을 수는 있을 것이다. 지금의 통합 대한체육회는 그렇게 하기도 쉽지 않고, 실익도 없고, 오히려 그 과정에서 큰 혼선이 빚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현대 민주주의 국가는 선거가 많습니다. 선거로 인한 사회, 경제적 비용도 상당합니다. 혹시 우리 체육계가 듣고 보기에 좋다고, 그래서 치적쌓기에 제격이라고 해서 회장 직선제를 밀어붙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노파심이 듭니다. 정치권력은 디테일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격은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