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5만원→3천원…PBR 0.2배에도 소각 없는 크리스에프앤씨


자사주 10.97% 보유에도 현물배당 선택
저평가 해소 방식 두고 시장 의문

골프웨어 대장주로 불리던 크리스에프앤씨가 자사주 소각 대신 현물배당과 교환사채(EB)를 활용하며 주주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더팩트 DB

[더팩트|윤정원 기자] 골프웨어 대장주로 불리던 크리스에프앤씨가 주가 급락과 실적 둔화 속에서 자본정책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2022년 5만원대를 웃돌던 주가는 최근 3000원대까지 내려앉았고,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22배 수준까지 떨어졌다. 장부가치와 비교해도 극단적인 저평가 구간에 들어선 셈이지만, 회사는 자사주 소각 대신 현물배당과 교환사채(EB) 활용에 나서며 시장 기대와는 다른 선택을 하고 있다.

저평가 국면에 들어선 상장사라면 통상 자사주 소각이나 보다 공격적인 배당 확대 등 직접적인 주주환원 정책이 기대된다. 그러나 크리스에프앤씨는 자사주를 소각하는 대신 배당과 자금조달 구조에 활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자사주를 실제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쌓아두기만 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총발행주식 수를 줄여 주당가치를 끌어올리는 소각과는 결이 다른 선택이라는 점에서 시장에서는 주주환원 강도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크리스에프앤씨 주가는 지난 2021년 11월 5만900원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후 골프웨어 시장이 빠르게 식으면서 주가는 꾸준히 내려왔고, 6일 오후에는 3800원대까지 밀렸다. 크리스에프앤씨는 과거 골프 인구 증가에 따른 대표 수혜주로 꼽히던 종목이지만, 지금은 업황 둔화의 충격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가 됐다.

실적 역시 주가 흐름과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크리스에프앤씨의 연결 기준 매출은 2022년 3809억원에서 2023년 3493억원, 2024년 3313억원으로 감소했다. 외형 감소 폭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지만 수익성 악화는 훨씬 가팔랐다.

영업이익은 2022년 785억원에서 2023년 333억원, 2024년 121억원으로 줄어 2년 만에 80% 이상 감소했다. 당기순이익 역시 2022년 611억원에서 2023년 92억원으로 급감한 데 이어 2024년에는 251억원 순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업계에서는 코로나19 시기 급증했던 골프 수요가 정상화되면서 재고 부담이 커졌고, 할인 판매 확대에 따른 마진 훼손이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신규 브랜드 투자와 판관비 부담까지 겹치면서 이익 체력이 빠르게 약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크리스에프앤씨의 지분 구조를 보면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40%대 초반이다. 최대주주인 우진석 대표가 약 38%대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는 지난해 3분기 기준 257만44주로 지분율 10.97% 수준이다.

상장사에서 자사주 10%는 적지 않은 규모다. 주주환원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고, 반대로 자금조달이나 전략적 재무정책에 활용할 여지도 있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이 정도 규모의 자사주를 보유한 기업이라면 저평가 구간에서 소각이나 보다 명확한 주주환원 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하지만 실적 둔화 이후 크리스에프앤씨가 선택한 방식은 소각이 아니라 현물배당이었다. 회사는 지난 2월 26일 결산배당으로 보통주 1주당 총 320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이 가운데 현금배당은 200원, 현물배당은 120원이다.

현물배당에는 회사가 보유한 자기주식 59만8933주가 활용된다. 보통주 1주당 0.28710772주를 배당하는 구조이며, 현물배당 금액은 이사회 전 영업일인 2월 25일 종가 4180원을 기준으로 산정됐다. 현물배당 규모는 약 25억원, 현금배당까지 포함한 총 배당 규모는 약 66억원 수준이다.

현물배당이 이뤄지면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 규모는 그만큼 줄어든다. 다만 소각과는 효과가 다르다. 자사주 소각은 총발행주식 수 자체를 줄여 주당가치를 직접 높이는 방식인 반면, 현물배당은 회사가 보유한 주식을 주주에게 넘기는 구조여서 발행주식 수 자체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실제 회사는 보유 자사주 257만44주 가운데 교환사채 발행으로 처분된 주식 197만1111주를 제외한 59만8933주를 이번 현물배당에 활용하기로 했다. 시장에서 "자사주를 활용하기는 했지만 저평가 해소에 가장 직접적인 방식은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불거지는 이유다.

동종 업계와 비교하면 이런 차이는 더 분명해진다. F&F는 자사주 취득과 소각을 병행하며 주주환원 정책을 이어 왔고, 영원무역 역시 안정적인 배당 정책을 유지해 왔다. 각 회사의 사업 구조와 현금창출력, 투자 계획이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저평가 국면에서 자사주 소각이나 배당 확대를 통해 시장과의 신뢰를 유지하려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크리스에프앤씨의 자본정책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현물배당 역시 주주환원의 한 방식인 것은 맞지만 지금처럼 주가가 장부가치 대비 크게 할인된 상황에서는 자사주 소각이 훨씬 강한 메시지가 된다"며 "회사가 저평가 해소에 얼마나 적극적인지 보여주기에는 현물배당만으로는 다소 부족하다고 시장이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의 불만은 자사주가 배당뿐 아니라 자금조달 구조에도 활용됐다는 점에서 더 커졌다. 회사는 2024년 전환사채(CB)와 교환사채(EB)를 발행했는데, 이 가운데 EB에는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가 기초자산으로 활용됐다. 일부 물량에는 콜옵션도 설정됐다.

회사 입장에서는 일반적인 자금조달 방식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할 수 있지만, 시장에서는 이를 단순한 재무 전략 이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자사주가 사채 구조에 편입될 경우 향후 교환이나 전환 과정에서 유통 물량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존 주주 입장에서는 잠재적인 오버행 부담으로 인식될 가능성도 있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현물배당이나 EB 활용 자체를 문제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지금처럼 주가가 장부가치 대비 크게 눌린 상황에서는 시장이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회사가 자사주를 어떤 철학으로 운용할 것인지 보다 명확한 메시지를 내놓지 않으면 자본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에프앤씨 측은 현물배당 및 EB 관련 질의에 대해 "내부 확인 후 답변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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